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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May 10. 2023

지저분한 흔적을 멋진 개성으로 만드는 주문, 프라이탁!

 버려진 트럭 방수포, 차량용 안전벨트, 자전거 튜브로 만든 가방이 있다면 구입하시겠습니까? 그 가방이 20~70만 원으로 비싸다면요? 아무도 안 살 것 같겠지만, 이 가방이 2019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700억 원어치 팔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위스 가방 “프라이탁” 이야기입니다.  


 프라이탁을 모르는 분들은 재활용 재료로 만든 가방이 비싼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재료 선별, 세척, 재단, 디자인, 가방을 만드는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방 자체가 멋집니다. 물론 멋진 디자인만으로 가성비를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트럭 방수포로 만든 가방, 환경을 위한 가방, 공장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만든 가방, 이러한 좋은 가치와 이야기가 가방에 담겨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에도 프라이탁을 구입합니다. 그리고 프라이탁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가방이라는 점입니다. 재활용 천을 사용하기에 천의 색감, 질감, 패턴, 사용감이나 흔적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만들어진 가방은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 됩니다.


 얼마 전 이 멋진 가방을 실제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오빠가 아내 생일 선물로 프라이탁 가방을 사준다고 해서, 함께 매장에 갔었거든요. 그런데 가방을 실제로 보고 약간 충격받았습니다. 생각보다 가방이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디자인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냥 더러운 흔적이나 낙서로 보였습니다. 그때 아내가 흰색 가방을 골라서 제게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디자인은 역시 예뻤습니다. 다만 가방에 녹색 줄이 가 있었고, 군데군데 지저분한 흔적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너무 지저분한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프라이탁은 원래 그런 거라면서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아내는 괜찮은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만약 집에 있는 아내의 하얀 가방을 6학년 딸이 빌려서 학교에 갔다가 아내가 보여준 프라이탁 가방에 있는 것처럼 녹색 줄을 만들고, 군데군데 지저분한 것을 묻혀 왔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으로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딸을 칭찬할까? 더러워진 그 가방을 딸에게 주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내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 가방을 구입했습니다.  



 제 눈에도 프라이탁 가방은 멋집니다. 가방이 담고 있는 가치와 이야기는 더 멋집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결코 인정되거나 멋지다고 할 수 없는 더러운 흔적이 프라이탁 가방에 있다고 해서 멋진 디자인이 되는 점은 영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왜 이것이 가능할까? 나는 왜 이것이 불편할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문득 제 불편함의 정체를 만났습니다. 부러움이었습니다. 저는 뭘 잘 묻힙니다. 밥 먹으면서 옷에 음식을 묻히고, 가죽가방에도 물을 묻혀서 얼룩이 있고, 운동화는 물론 구두도 늘 더럽습니다. 2년 전부터 고양이 둘과 함께 살고 있어서 외출복에 늘 고양이 털이 잔뜩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제 흔적과 사용감을 멋지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어른이 칠칠맞다고 쯧쯧 거리기만 합니다. 프라이탁 흔적에는 너그러운 아내가 물로 얼룩 진 제 가방을 보고는, 비싼 가죽가방 사줬더니 그게 뭐냐며 혼을 냅니다. 제 물건의 흔적이나 프라이탁의 흔적이나 생활 사용감으로 별다르지 않은데, 프라이탁만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 되고, 멋진 디자인이 되는 것이 부러워 시비 걸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저는 늘 단점을 숨기려고 발버둥 칩니다. 상처와 실패를 감추기 위해서 애씁니다. 괜찮은 사람인척, 깨끗한 사람인척 과장하고 기만하고 외면합니다. 그런데 저와 달리 프라이탁은 상처와 실패를 당당히 드러내고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시킵니다. 단점이 분명하지만, 장점으로 단점을 이겨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가방을 시기하고, 가방에 시비 거는 제 자신이 한심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처럼 당당하고 자유롭게 빛나는 프라이탁이 부러운걸요. 


 제 자신의 부러움을 보고 나니, 집에 함께 온 프라이탁 가방의 녹색 줄도 나름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프라이탁(독일어로 금요일이라는 뜻)을 저만의 주문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낡고 흔적 가득한 물건을 향해 프라이탁! 외치고, 그 물건들을 세상에 하나뿐인 멋지고 쿨 한 물건으로 만드는 것이죠. 저의 단점, 부족함, 상처를 향해 프라이탁! 외치고 세상에 하나뿐인 멋지고 쿨 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도 함께 외쳐보세요. 프라이탁!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멋지고 쿨한 생을 살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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