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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May 04. 2023

어린이날은 어린이에게 선물 주는 날이 아닙니다.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 저자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날이 선물 받고, 외식하고, 학원 안 가고, 놀러 가는 날에 그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4월 말 즈음부터 무슨 선물을 받을지 고르고, 어디로 놀러 갈지 상상하는 어린이들이 들으면 펄쩍 뛸 만한 이야기입니다. 선물 받고, 맛있는 음식 먹고, 놀러 가는 일 말고 어린이날에 해야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김소영 작가는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밝고 화사하고 웃음 가득한 어린이날에 “해방”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주제 같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날을 만든 처음의 운동가들은 어린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어린이날을 만들었습니다. 1923년 첫 어린이날이 5월 5일이 아니라, 5월 1일이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노동자를 위해 만든 5월 1일 노동절에 어린이날을 시작한 일은 우연이 아닙니다. 노동자가 해방되어야 하듯이, 어린이도 해방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정한 일이었습니다.(참고: 어린이라는 세계 / 첫 어린이날은 5월 1일이었다가, 5월 첫 일요일로 변경되었고, 해방 뒤에 5월 5일로 정해졌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1923년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교육, 위생, 안전, 건강, 자유 중 그 어떤 것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린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힘들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발버둥 쳤습니다. 다만 큰 어른들의 발버둥은 눈에 띄지만 작은 어린이의 발버둥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어른들의 외침은 잘 들렸지만, 작은 어린이의 외침은 침묵과 다름없었습니다. 상황을 무시하고 어린이들을 특별대우하자고 어린이날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어린이의 일과 이야기가 어른의 일과 이야기와 다르지 않고,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2023년 대한민국 삶의 풍경은 1923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어린이의 말과 일이 어른들의 말과 일보다 작게 여겨지고 외면당하는 점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2023년 어린이날에도 해방이 필요한 것이죠. <어린이라는 세계> 책 뒷날개에 쓰인 소개 글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공공장소에서도 어린이는 마땅히 ‘한 명’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배제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쪽으로 어른들이 지혜를 모으는 게 옳다. 어린이는 그런 공간에서 배우며 자랄 것이다.


 어린이 해방을 위해 과격한 투사가 될 필요 없습니다. 어린이도 어른인 나와 같은 한 명의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됩니다. 특별대우가 아니라 동등하고 평등하게 대하면 됩니다. 어린이의 일이라고 무시하고 작게 보지 말고, 어른의 일과 같은 무게로 중요하게 대해야 합니다. 어린이가 하는 말을 어른이 하는 말처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린이들을 존중해서, 어린이의 일과 목소리가 커지면,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천국에 가까워집니다. 뭐 그렇다고 천국까지 되겠냐고요? 네! 천국이 열립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태복음 18:4) 


 우리가 자신을 낮추고, 어린이와 어린이처럼 작은 자들을 높이며 살아가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천국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우리도 천국에서 살게 되겠지요. 그 안에서 우리 자신도 억압된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겠지요. 그러니 해볼 만한 일 아닙니까? 어린이와 작은 자들을 해방시켜 줍시다. 그래서 우리도 해방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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