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인간이 아무리 개인이 유일무이하고 굉장한 자유 의지를 가졌다 한들, 사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너무도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창밖에 이렇게 소복소복, 사락사락 눈이 내리는데 저 눈을 바라보면서 마음 한 켠이 어찌 아련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새삼스레 감사하다.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이 공간, 시간이. 이십 년을 넘게 남쪽 끝에 살았던 나는 이런 눈이 오는 순간을 맞이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 북쪽으로 와서도 이렇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리는 눈을 혼자 즐길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올 겨울에는 유난히 자연이 관대하다. 걱정될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가 아닌, 눈이라 부르기 애매한 진눈깨비도 아닌, 사락사락 내리는 눈. 너무도 가벼워 보이는 눈이 바람을 따라, 공기를 따라 천천히 나부낀다. 그렇다고 여러 방향으로 마구 나부끼는 것은 아니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다. 그렇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려앉는 것 같다. 손바닥을 펼쳐 받으면 그 결정이 그대로 보일듯한 모양이지만 손의 열기가 이내 해쳐버릴 모습. 가지려 하지 않아야만 볼 수 있는 온전한 모습.
이렇게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은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