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여신

트리니티(시어머니, 며느리, 아들)

by Vittra

위 그림은 본인 대학교 3학년 때 그린 페인팅 작품




3년 만에 본 그녀의 얼굴에 살이 조금 오른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그녀는 오늘도 언제나처럼 행복해 보였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녀와 내가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온 때였다.


나는 AI로 만든 그림들을 프린트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프로젝트를 하는 상황이었고, 그녀의 귀국 소식을 들은 나는 그녀에게 그림 선물을 주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위 사진은 그 프로젝트 당시의 사진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엄청 말라있었다.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와 프랑스식 볼 뽀뽀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전 남자친구와의 헤어짐을 알렸고


현재 밤낮으로 일해 연봉 8000 정도를 벌지만, 세금으로 3000 정도가 떼인다고 했다.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고깃집으로 장소를 옮겨 대화를 이어나갔다.


처음 그녀와 친하게 지내게 된 계기는 그의 남자친구가 나에게 타투를 받으면서였다.


유럽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만난 첫 한국인 손님이었고, 그 커플은 나에게 타투도 받고, 돈도 주고, 무지한 나에게 여러 가지 유럽 문화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과 나는 종종 만나 안부를 묻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어쩌다 단 둘이 가지게 된 술자리에서 난 그녀의 인생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새 가정을 꾸리시면서, 완전 가정으로부터 독립했다.


말도 안 되는 할머니의 잔소리와 집안사정에 지쳐 떠나온 프랑스.


그녀는 아주 똑똑했고, 영리했다.

그녀는 영어, 불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했고, 아름다웠으며, 생기발랄했다.


그리고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낸 자신을 칭찬이라도 하듯 항상 해맑았다.


그녀는 나중에 그녀의 이름과 닮은 바나나 타투를 자신의 팔에 새겼다.


그녀도 오랄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처음 타투를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새로운 독립을 위한 시작을 나에게 알렸다.


그의 남편은 운동선수들의 휴식과 재활을 돕는 센터를 운영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전직 프로 야구선수였으며, 현재는 후배들의 건강을 위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준비하며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독립의 여신답게 시어머니와의 대결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 에피소드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나열되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승기를 놓치지 않았으며, 그의 어머니에게서 그를 완전히 독립시켰다.


난 박수를 쳤다.


역시 그녀다웠다.


나는 솔직하게 그녀에게 고백했다.


나의 독립의 여신이 이제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정말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2년 정도 결혼식을 보이콧한 상태였지만, 그녀의 결혼식은 꼭 가고 싶었다.


나는 조울증 이후 결혼식을 거의 보이콧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난 결혼식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입버릇처럼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30 중반까지 한 30번 정도의 결혼식을 간 것 같은데, 그곳의 결혼식은 날이 갈수록 지루했다. 결혼식은 그저 주변 지인들의 안부를 묻기 위한 자리.


주인공 얼굴은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피로연이니 뭐니 하는 시스템으로 커버하려고 하지만, 그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재밌는 결혼식 2~3번이 끝나면, 나머지는 거의 재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결혼식 보이콧을 선언하고, 결혼식을 가지 않았다. 사촌 결혼식에만 잠깐 얼굴을 비추고, 가족행사에도 거의 참여하지 앉았다. 난 나만의 결혼식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결혼식 따위는 필요 없다. 내 삶은 이미 일반적인 모노가미들의 삶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피카소의 삶, 앤디 워홀의 삶, 반 고흐의 열정, 레이디 가가의 퍼포먼스, 마이클잭슨의 사운드, 지드래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나는 일반적인 운명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난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다른 결혼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여러 도시에 여러 가정을 꾸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난 윤종신의 삶보다는 정우성의 삶을 지지한다.


난 여러 도시에 명상센터를 짓기 위해서, 그곳에서 가정을 꾸릴 생각이다.


한국은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가정을 꾸리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데려간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나는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러 도시 여러 인종 여러 국가의 여성들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녀들과 내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다 죽을 것이다.


마지막에 누구와 잠들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죽을 때까지 퍼트리고 죽을 계획을 막 시작했고, 그 성과는 놀랍다.


나는 자본주의 끝자락에서 태어나 다음 헤게모니를 담당할 사상가들을 길러낼 계획이고, 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우리 존재의 이유


사랑


다음 주제는 사랑이다.


아직은 이야기하기에 섣부른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에 대해서..

남녀 간의 사랑을 제외한


모든 사랑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