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던 나는 현실적인 이유로 붓을 꺾고,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기계를 도구로 삼아 예술 작업을 이어나갔다.
학창 시절부터 대학원 졸업을 하기까지 페인팅, 조각, 설치, 3D프린트, 비디오, 인터렉티브, 텍스트, 퍼포먼스 등 내가 상상 가능한 미디어들을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난 내가 벌어들이는 모든 자본을 내 예술세계를 현실화하는데 소비했다. 20대 초중반에 에너지 넘치고, 똘똘한 청년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은 벽화나 디자인 등의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무엇으로 내 예술작품을 알릴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나는 학생 때부터 활발하게 지역 예술계에서 활동해 왔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자연스레 지역에 선배 예술가들이나 동문 선배들과 친분이 유지되었고, 학과에서 나의 입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학교 선배들의 수많은 만행을 목격하며, 그들의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갔다. 대한민국 대학에는 이상한 좆같은 전통이 하나 있는데, 학과 엠티를 가면 같은 학과를 졸업한 동문 선배들이 방문해 맛있는 음식과 술, 선물이나 돈 등을 전달하는 전통이었다.
뭐 취지는 좋았다고 치자, 선배 예술가들이 후배 예술가들을 위해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을 써서, 그들의 입학을 축하하러 온 것이고, 엠티에 참석한 학생들은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즐기면 끝나는 일이 갓 성인이 된 신입생 여자애들을 옆에 앉혀, 마치 술집여자처럼 술을 따르게 한다거나, 가라오케에서 술을 먹다가 같이 춤을 추자고 제안한다던가, 심하면 성추행까지 일삼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동문 선배들은 누가 봐도 동네 아저씨와 아줌마들… 그들은 나이와 선배라는 권위를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데 이용했다.
더러운 인간들… 그래도 그들도 욕망의 인간들이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 때였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내 귀에 들릴 때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나같이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동네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인간의 대표적 인물.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나는 모두가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인간이 3명 이상 모이면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갈등을 학교에서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경험 했다.
학교생활은 군대생활보다 재미가 없었다. 나는 대학교 장학생으로 들어간 학교에서 1학년에만 2학기 전부 F를 받았다. 마지막엔 예술병에 걸려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2 연속 F라니… 난 계절학기를 꽤 오랜 시간 다녀야 했다.
예술을 가르치는 강사나 교수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학생들을 가르쳤다.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미대는 다 사라져야 한다.
미대는 제2의 바우하우스 하나면 충분하다.
대학 강사나 교수들도 그냥 그들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교육자의 길은 아마 자신의 교육의 의지보다는 현실 타협의 성격이 강했을 것이다.
중간중간 인상 깊은 강사들의 수업이 있었으나, 수업은 대부분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는 국가를 키워낼 말 잘 듣고 똘똘한 인재들이 필요했고, 당시 사회발전에 필요한 것은 예술이나 철학 같은 인문학적 인재보다는 기계와 공업 중심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인문대와 공업대의 지원 규모의 차이는 꽤나 심각했다.
이러한 시류를 거스르고, 교육에 대해 비판하고, 대학의 진짜 기능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한 선인들은 학교를 세워 나라를 굳건히 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기능은 어느 정도 유지되다 어느샌가 본질이 점점 퇴색되어 갔다. 정치나 교육, 예술 등이 돈에 의해 본래의 기능을 잃어갔다.
한국과 세계는 어느새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류에 저항 한번 못해보고 점령당했다. 자본주의를 일찍 겪은 선진국들은 다른 대안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성공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은 오랜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지혜나 문학 지식, 예술 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교육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우리만의 교육방법과 공동체 유지를 위한 여러 교육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으나, 서양의 근대화 바람은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데 충분했다. 이성과 효율을 추구하는 서양의 사고방식은 지금은 많이 동양적인 사고방식과 융합되었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그들은 질보다는 양, 디테일보다는 크기가 중요한 시대에 접어들었고, 인간의 감정이나 영성보다는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 여겼다.
이성주의의 등장. 우리는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산업화와 근대화는 남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여성의 사회적 입지를 줄여나갔다.
노동시간이 늘어난 남자 노동자들은 엄청난 생산력의 레버리지 작용에 의해 부가 쌓여갔다. 동네에서 조금 머리 좋다고 소문난 가문이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돈을 복사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에 축적했던 부가 신흥 패권국들에게 흘러 들어가 축적된 잉여자본들이 인간의 모든 삶을 향상하는 중이었다.
서양사회는 곧 엄청난 고점을 찍는다.
과학은 발전하고, 식재료는 넘쳐나고, 도시는 점점 깔끔해지고, 예술가들이 길거리를 횡보한다. 어떤 골목에는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공연을 보는 아이들로 가득 차있고, 어떤 골목에는 난쟁이 어른과 10살짜리 어린이가 공놀이를 하고 있다. 걱정도 후회도 내일도 없는 삶.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먹고 하고 쌌다.
서양인들이 상상하는 유토피아가 거의 완성될 때쯤 유한인들의 부를 질투하는 무리들이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본가와 노동가들의 영향력과 목소리는 커져만 갔고, 신과 신의 대리인 그리고 신하들로 이루어진 국가들이 사라지고, 왕과 귀족의 하나의 유흥 거리였던, 귀족놀이는 어떤 사건 이후로 지구에서 모습을 감췄다.
급격한 부의 이동과 권력의 이동은 수많은 사건들을 낳았다.
이성주의가 유행하면서, 힘과 군사력이 중요시 여겨지던 전쟁의 시대보다 남성에게 더 많은 권력이 쏠렸다. 이성과 감성, 남과 여, 신과 인간의 조화가 무너졌다.
이성중심의 사회, 부의 레버러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질서들이 세워졌고, 그 과정에서 생긴 권력의 쏠림현상으로, 신과 여성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서 간접 경험할 수 있는데, 특히 대표적인 작품이 ‘타이타닉’이다.
타이타닉은 화려한 캐스팅, 상업적 성공이라는 많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나에게는 이성주의의 몰락을 예고하는 중요한 영화였다.
영화는 화려한 미장센과 화려한 배우들에 훌륭한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가 있지만, 거기서 대비되는 상징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성성 : 배, 자본, 힘, 물리적
여성성 : 여자, 예술, 사랑, 비물리적
영화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대치되는 상징들이 나열된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대가들의 페인팅들과 그 시기에 생성된 많은 사상과 철학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남성들은 그것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돈.
한국 사람의 관심사는 오로지
남성을 상징하고, 이성의 요새였던 타이타닉은 자연의 힘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우린 다 알고 있다.
우린 자연 앞에서 한없이 미약한 존재.
그러나 남성중심의 사회는 자연을 복종의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처음 인간은 강을 중심으로 해와 달의 사이클 그리고 자연환경의 형태와 특징들을 바탕으로, 문명을 발전시켜왔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 중이다.
산만한 건물등이 등장하고, 강과 천은 인간의 편의에 따라 형태와 기능이 바뀐다. 자연의 특징을 살린 건물들과 도로 등은 힘을 가진 패권국이 소비하기 쉬운 스타일로 바뀐다. 세계의 풍경은 한때 유사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 달랐지만, 지금은 다 비슷비슷하다.
지금 남성주의 혹은 이성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역사나 정치 등에 감정을 싣지 않는다.
난 내가 느낀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고, 그 텍스트의 결과는 남성주의가 세계를 이지경으로 만들었다가 아니다.
우리가 이성주의로 빠지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알면, 돈과 이성이 중심이 된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
이성주의 이전은 아까도 언급하였지만, 신과 신의 대리인의 시대였다.
솔직히 말해
자본주의 시대와 남성주의 사회가 아무리 부작용이 많
다 하더라도, 신의 시대 마지막 자락의 상황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상황이다.
신의 가호 아래 해프닝 정도로만 일어나던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신을 빌미로 한 인간들의 탐욕, 돈으로 영생을 파는 교회, 고립된 교회들의 타락,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사람들의 폐륜아짓, 전염병의 반복, 종교전쟁 등 천국과 지옥을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이 지구는 지옥이 되어버렸고, 특히 여성의 지위는 인간에서 자산, 심지어는 악마의 하수인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인간은 신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해야만 했다.
신은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남성에게 권력을 쥐어주었다. 사실 남성이라기보단 노동자에 가깝지만..
전쟁과 신의 시대에서 노동과 산업의 시대가 되면서, 다행히 지옥은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주의가 생성하는 부작용들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하루하루 발전해 나가는 인간사회를 보며, 부작용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첫째. 성과가 너무 좋았다.
설명을 꼭 해야 할까?
나는 지금 태국 방콕에 커피숍에 앉아 아이폰으로 브런치 어플을 켜 글을 적고 있다. 글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은 내가 맞춤법 검사라는 기능으로 조금 더 프로페셔널한 작가가 된다.
10년 전 이것이 가능했으리라 보는가?
비행기를 타고 호텔을 잡고, 아이폰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계에 전기 신호를 통해, 데이터가 인터넷으로 브런치라는 어플로 전송된다. 게다가 인공지능 혹은 빅데이터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는 맞춤법검사
이 단순해 보이는 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수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신의 시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의 성과는 상상이상이다.
두 번째. 죽음을 극복하고, 수명을 연장시켰다.
이것도 굳이 설명이 필요 없지만,
죽음을 극복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숙명이 뒤바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인간의 이성은 인간의 가장 두려워하던 ‘죽음’을 극복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축복 같은 일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질서를 파괴하는 강력한 도전자가 된 셈이다.
탄생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순수한 생명활동이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이미 죽음을 극복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만 에너지를 쏟다 보니, 그 극복의 방법을 잊어버렸다.
답은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인간의 이성은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지만,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죽음을 극복한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