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세상에는 우리의 이성이 이해할수 없는 동의어들이 있다.
죽음과 삶
죽음과 삶은 동의어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구분하려 애쓴다.
인간의 시간에서 탄생과 죽음은 다른 시간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탄생과 죽음은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세상은 양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탄생과 동시에 죽는다.
그러나 3차원에 살고있는 우리는 시간이라는 4차원적인 공간을 이해할수 없기때문에, 3차원으로 우리의 인생을 묘사한다.
그러나 4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에서는 우리는 그저 점일 뿐이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 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인간은 이때까지 다른 생명들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모든 짓을 저질렀다.
동족을 죽이고, 다른 종들을 멸종 시키면서까지 생존해왔는데, 우리의 마지막은 무
우주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곧 사라진다.
도데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생존하여, 서로 지지고 볶고 있는 것일까?
난 답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있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우리는 이미 그 답 안에 살고있다.
그러나 해석하게도 인간은 다른 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불사? 우주정복?
아무런 의미가 없다.
평생 살아서 뭐하겠는가. 우주를 정복한들 우리는 행복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아주 우연스럽게 아주 초창기에 읽게 되었고, 나는 그 책을 거의 일주일만에 다 읽었다.
내가 인간의 역사에 대해 이러한 인사이트를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그의 책이 술술 읽힌다는 점보다 그의 책의 결론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는 인간의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했는데, 마지막 결론은 이것이었다.
물질적 부, 가난과 질병을 극복, 우주여행이 가능한 기술을 가진 현 인류는 행복한가?
그는 마지막에 행복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관념을 남긴채 책을 마무리했다.
재밌게 읽던 책은 마지막에 엄청난 화두를 던져놓고 사라졌다.
그 책은 나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작년 어느 가을, 친분있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가의 젊은 여성 어시스턴트에 입에서 이런말이 흘러나왔다.
요즘 행복하세요?
나는 당시 조울증 극복 프로젝트의 중간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지만, 그 질문의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하세요라고 하는 질문의 이유는 현재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
행복하면 행복을 물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현재 나는 지금 행복하다. 행복의 이유는 다양하고, 본질은 단순하다.
그저 사랑을 이해하고, 실천하면 되는일. 이미 예수가 가르치고, 실천한 일.
자신만의 형태로 사랑을 실천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행복하다.
우리는 그래서 그를 아직까지 기억한다.
그가 부활했다는 사실은 그의 사랑을 신화한 것 뿐이다.
그는 부활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동양에서 태어났다는 점이고,
내가 우리 부모님을 만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이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처음에는 장로회의 일반적인 교회였지만, 가정상황이 안좋아지면서 부모님은 다른 믿을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신천지라는 한국에서 악명높은 사이비를 믿게 되었다. 부모님은 살기 위해, 현실을 버리고, 영의 세계를 선택했다.
나의 학창시절은 부모님과의 영적 전쟁. 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억지로 끌려다니던 신천지교회는 내가 성인이 되면서부터 점점 멀어졌다.
부모님은 끈질기게 날 설교했지만, 난 듣지 않았다.
난 신, 점, 영적세계, 샤먼 등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경험과 믿음이 없었다.
사는데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고, 난 부족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썼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믿음이 없다는 것
이 것은 큰일이었다.
나는 믿을 구석이 없었다. 신도 믿지 않았고, 부모님도 믿지 않았다. 난 나를 믿어야했다.
나는 나를 찾으려고 부던히 노력했다. 진심으로 난 한순간도 열심히 안산적이 없었다.
번아웃이 몇번 찾아왔다.
두번째 번아웃에서는 정신병이 찾아왔고, 나는 회복과정에서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깨달을수 없다는 깨달음
우리는 안다고 생각할 때 추락한다.
우리는 성공했다고 생각할 때 실패하며,
우리는 잘한다는 생각이 들때 항상 실수를 한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내가 삶을 순환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동의어들이 있다.
상승과 하락
성공과 실패
선과 악
등
우리가 아무리 나누려 시도해도 나누어 지지 않는 개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단한가지 사실은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난 대학교육과 한국교육을 비판했지만, 사실 기억에 남는 수업들이 꽤나 있다.
저번시간 소개했던 타이타닉에 대한 인사이트는 창원대의 최철규교수의 수업에서 얻은 것이다. 지금은 졸업한지 오래되서 그 수업의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의 이름은 기억한다. 그는 전형적인 지식인 스타일. 난 그의 수업을 한번도 빠지지않고 들었다.
그리고 대학원 때 죽음에 관한 수업이 있었다.
서울에서 환경미술을 하고있는 이 작가는 적당히 유명하고 적당히 활동하는 작가였고, 그의 첫수업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단 하나 뿐이라고 설명했다.
죽음
우리는 다 죽는다는 사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어쩔수 없는 사실.
다른 대학원 생들은 당황했지만, 나는 기뻣다. 드디어 대화할 수 있는 예술가가 나타난 것이다.
사실 그때의 나는 그분과 죽음에 대해 논할만큼의 지식과 인사이트가 없었다. 나는 그냥 적당히 나의 의견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그의 강의를 주의 깊게 들었다.
수업은 더이상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부모님이 선물해준 신의 세계에 대한 화두와 수업을 통해 죽음에 세계에 대한 화두를 얻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쉽사리 결론 짓지 못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 화두들을 20년동안 매일매일 머릿속에서 질문했다.
답은 찾지 못했지만, 답의 그림자의 형태를 관찰할 수 있는 인사이트가 생겼다.
곧 불혹이 되는 나이
1년 혹은 2년 후면, 난 불혹이 된다.
불혹이 되면 그림자의 형태를 그릴수 있을까?
본론으로 돌아가서.
인간은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죽음의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릴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개념과 형태가 존재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천국과 지옥.
우리는 죽으면 천국과 지옥 둘중에 한 곳을 가게 된다.
왜 이러한 개념이 생겨났을까?
사실 이건 개념이 아니라 사실이다.
우리는 죽으면 천국과 지옥 둘 중 한 곳을 가게 된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도 사실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만난 지인과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44세의 뮤지컬배우로 크리스쳔에 서울사람이다.
그의 외모는 파리지앵 정재형과 내가 아는 지인을 쏙 빼닮았다. 거의 반반을 섞어놓은 형상이다.
그는 진보성향에서 보수성향으로 전향한 배우였고, 그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혐오 때문에 새로운 정치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자리를 잃었다.
나는 정치에 감정을 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여느 주변의 보수 청년들과 비슷한 태도로 일관했다.
난 상관없었다. 난 현재 정치에 감정을 싣지 않는다.
난 그에게 질문했다.
천국과 지옥 중 어디에 가고 싶으세요?
나는 먼저 대답했다.
난 지옥에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