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연습

by 지니











“뭐 먹을 거 있어요?” 라며 일주일 후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이 묻는다. 아니 맨 날 먹는 밥 그 밥에 그 반찬이지. 저 질문은 ‘새로운 것을 찾고 입맛 당기는 그 무엇’을 요구하는 말투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먹거리를 준비하고 기본만 챙겨놓는 것도 힘든 일상이다. 식구들의 입맛은 다 제 각각이고 원하는 것도 다 다르다. 공통점을 가지고 모두가 매번 만족할 만한 메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왕이면 메뉴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최근에 먹은 것, 구체적으로 어제 먹은 것 오늘 먹은 것에 차이를 두고 영양에 균형을 맞춘다면 금상첨화리라.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만들어 바쳐야 하는 것이 엄마의 운명이다. 기본 멸치볶음이나 새우볶음, 김치 그리고 양상추 샐러드. 밥, 국이 있다. 하지만 아들이 먹을 마땅한 것은 없다. 김치는 먹지 않고 멸치볶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야채와 채소는 잘 먹질 않는다. 몸에 좋다는 추어탕을 사놓은 게 있어 국 대신 끓여주었다. 당연히 아들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나는 한숨을 쉬며 한마디 뱉었다.

“군대 가야 정신 차리고 편식이 없어지지! 이런 식으로 편식하면 너 병든다. 가서 음식 때문에 고생 좀 할 거야!” 이 말을 듣던 옆에 있는 남편도 한마디 거든다.

“거기선 너 먹을 거 하나 없을걸. 엄마가 입맛 맞춰 다 해주니 버릇이 고쳐지질 않는 거지. 지금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 하지만 군대는 군대야. 얼른 가서 정신 차려야지. 쯧쯧”

“가면 다 적응해요. 배고프면 다 먹겠지! 아들아 계란말이 지금 막 했으니 얼른 먹어봐!”하며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식탁에 올려 주었다. 다섯 개의 계란을 깨서 우유를 조금 넣고, 명란젓과 파와 치즈를 잘게 썰어 풀어진 계란 위에 올린 후 포인트의 돌김 한 장을 그 위에 깔은 다음 약한 불에 둘둘 말아 한 접시를 내준 것이다.

“아. 엄마 맛있어요. 역시 엄마 계란말이는 내 입맛에 딱이야!”

편식으로 걱정스럽고 문제로 보였던 아들의 한마디에 문제는 사라지고 기분은 좋아졌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고마워 바라보고 있는데 밥 먹다 말고 옷을 후다닥 챙겨 입고 급히 자전거를 끌고 외출을 한다. 밥 먹다 말고 어디 가냐는 나의 말에 아들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사라졌다. 무슨 급한 일이 길래...

그리고는 이틀이 지나갔다. 새벽 2시가 다되어 자려다가 아들 방을 보니 불이 켜져 있다. 군대 가면 6시 기상이라는데 얼른 자라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루틴을 만들어야 고생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이 녀석이 나를 책상 의자에 앉히더니 선물이라며 물건을 건넨다.

“이게 뭐야!” 물었다.

“엄마. 나 군대 간 뒤 울지 말고... 엄마가 좋아하는 글 어디서나 편히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편히 볼 수 있도록 준비한 거예요.”하며 상자를 건넨다.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 울컥해진 내 맘을 주체하느라 의자에서 일어섰다.

“당근 마켓 통해 샀어요. 새것을 저렴하게 팔길래 엄마에게 주고 싶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큰맘 먹고 샀어요” 아들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울기는 왜 울어! 애 셋이 복작대는 것도, 밥해주는 것도 늘어지게 게으름 피우는 것도 보기 싫다’고 누누이 말했다. ‘얼른 군대 가서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고, 고생 좀 해봐야 부모 맘 아는 거‘라고 떠들어 댔었다. 절대 울지 않을 거라 호언장담했던 약속은 사라지고 아들이 건네준 태블릿 피시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이 나왔다.

“너무 고맙네. 글이 잘 써지질 않아 포기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된다. 정말 고마워.” 나는 상자를 들고 나왔다. 방문을 닫고 안방까지 걸어오는 열 발자국 걸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것이 관계이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기도 하고, 연인으로 만나기도 한다. 만남의 관계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짧은 만남이든 긴 만남이든 헤어짐을 하기 위해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에서 헤어짐의 아쉬움만을 뺀다면 세상의 문학 작품과 시들은 어쩌면 반은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과 나의 빈자리는 어쩌면 헤어진 이후에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나는 널 부러진 빨래를 보며 대신 개 주고, 무거운 것을 들어주고, 심부름을 했던 아들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아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보쌈을 해주고, 고기를 구워주고, 계란말이를 해준 엄마를 그리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리워도 참고 고마워하고 견디어내고, 허전함을 참는 것이다. 우리는 묵묵히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리움이 성장하여 소중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