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버지가 사랑한 이름

by 지니

사촌 언니 딸이 결혼한다 하여 잠실에 있는 예식장에 다녀왔다. 식장에 가보니 용갑이라는 조카 이름이 수지로 바뀌어 있다. 내게 이미 익숙한 용갑이가 수지라니, 씩씩하고 호탕한 용갑이에게 수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낯설기 짝이 없다.

한편 생각해보니 호적의 이름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지어진다. 자신의 이름이 만족스럽지 않고 오히려 원망스럽다면 이름을 바꾸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가 일도 들어있지 않은 데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과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면 마치 혹부리 영감 턱에 붙어 뗄 수 없는 혹과 같은 가혹한일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맘에들지 않는 이름이 운명에 개입된다고 생각될 때는 개명을 해서라도 운명을 바꾸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연예인이 아니어도 요즘은 다양한 저마다의 이유로 주변에서 개명하는 경우가 심심찮다. 혹 개명이 아니더라도 요즘 같은 메타버스 시대에 별명과 애칭 그리고 나름의 다른 이름을 갖고 생활하는 일은 다반사다.

하지만 나는 어지럽다. 닉네임의 홍수 속에서 다양한 많은 이름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풍겨져나오는 기대감이 충만해보일지라도 나는 나의 본명을 인터넷상에서 거의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나 또한 스스로 내가 지은 빛나는 이름 하나를 갖고 싶었다. 김춘수의 시에서 나오는 것처럼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로서 듣기만 해도 ‘온전한 나를 나타내 주고 보여줄 수 있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한번 들어보면 “오우, 기가 막힌 이름이네! 의미 전달이 좋아, 잘 어울려”등 멋진 이름을 갖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작명가처럼 이름을 지으며 며칠을 보낸 적도 있다. 하지만 쉽게 맘에 드는 이름을 정하진 못했다. 그 어떤 이름도 내가 가진 나를 온전하게 보여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이름을 지었다 할지라도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타인 같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늘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왜 그런지 가만히 멈춰 나를 들여다 보았다.

내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아버지는 다정다감하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아버지를 살뜰히 챙겨주지도 효도를 다하지도 못했다. 준비되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뒤늦게 서야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깨달았다. 어릴 적 6남매에게 자주 빵을 만들어 주셨고, 햇살 가득한 주말 오후면 바로 마당 앞 텃밭에서 열무를 뜯어와 커다란 양푼에 고추장과 참기름, 밥을 넣고 최고로 맛나게 쓱쓱 비벼 주셨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맛있게 먹고 배부른 돼지처럼 행복해하며 불룩 솟은 배를 토닥거렸다. 아버지의 자상함은 내가 결혼해서도 이어졌다. 해마다 손주 손녀에게 방패연과 팽이를 만들어 주셨고. 때마다 제철 농산물을 챙겨 택배를 보내주셨다. 상자 안에는 총각김치며 파김치, 고들빼기가 들어 있었고 다진 마늘과 참기름, 들기름도 있었다. 엄마는 바지런히 김치를 담그셨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농사일로 두툼해진 거친 손으로 잘 여문 마늘을 얇은 속살까지 벗긴 다음 꼭지와 상처 난 곳을 자른 뒤 마루에 앉아 종일 남매들이 먹을 마늘을 찧으셨다. 믹서기에 가는 것은 맛이 없고 손수 찧어야 더 좋은 맛을 낸다며 고집스럽게 정성을 다하셨다. 택배 상자 위에는 "던지지 마시오. 취급주의" 가 매직으로 씌어있었고 안에는 한 글자씩 마음이 담긴 소중한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편지안 첫 머리에는 정체로 눌러쓴 내 이름 “아무개 보아라”로 시작해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모르고 편지는 버리고, 해마다 코끼리가 과자를 받아먹듯 음식만 날름날름 달게 받아먹기만 했다. 그렇게 15년의 대가 없는 희생과 사랑의 물질 공세를 부어주신 아버지. 내 이름을 지어주고 다정하게 불러주신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 나의 이름은 '마흔네 살 김혜진'으로 살아왔고, 나와는 오십 년을 넘게 살아왔으니 지금까지 잘 버텨온게다. 이 이름은 온전히 나를 나타내 주며 나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왔다. 내 이름에는 나만의 숱한 사연들과 추억 어린 경험들이 풍성하고 가득가득하다. ‘다른 이름이면 어때! 익명성이 보장되니 더 좋을 수도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불러줬던 내 이름이 나는 좋다. 좋다 못해 아버지의 사랑이 묻어있어서 소중하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순 없지만, 내 이름 세 글자 속에는 커다란 의미의 아버지가 들어와 거대하게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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