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책상 서랍에서 어떤 산문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글을 잘 정리하여 모아 놓은 묶음을 발견해서 책으로 펴낸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책이다. 딸 호원숙 씨가 찾아낸 원고들이다.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따뜻하고 정직함이 묻어나는 글들의 모음이다. 여든 해 가까운 삶과 나날의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가 되기까지의 역사를 밝힌 자전적 공백에서부터 일상 속의 깨달음이 묻어나 있다. 나는 왜 소설가인가?
나를 달구었던 것은 창작욕이 아니라 증오였다. 복수심과 증오는 세월의 다독거림으로 위무받을 수 있을 뿐 섣불리 표현되어선 안된다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다.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증오가 연민으로, 복수심이 참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다...(22p)
고통스럽던 병자의 얼굴에 잠시 은은한 미소가 떠오르면서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아기의 발바닥이었다. 포대기 끝으로 나온 아기 발바닥의 열 발가락이 ‘세상에 예쁜 것’ 탄성이 나올 만큼, 아니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수명을 다하고 쓰러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병자도 지금 그런 위로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83p)
그렇게 많은 책을 냈음에도 아직 출간되지 않은 글들이 많다는 것을 안 순간, 반가움과 기쁨보다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저려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책을 통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바란다 말한다.
노년의 작가가 쓴 글이 다가올 나의 노년을 생각하게 한다. 이 사회, 나의 아이들 그리고 나의 뒷모습을 책임질 누군가에게 잘 정리하고 좋은 것만을 남겨 줄 수 있도록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