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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Feb 16. 2022

11.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 웅덩이로 텀벙텀벙 가는 길 >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한 번의 제사를 위해 하와이를 찾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모든 가족의 심 시선이라는 연결 고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 이야기인 것이다.  모인 그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심 시선의 십 주기 제사.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필요 없는 일이고, 사라져야 할 관습이며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이니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놓았던 심 시선의 한 번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두 번의 결혼, 서로 다른 성씨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윗트가 있고 밝으며 긍정적이다.  정세랑 작가는 이래서 좋다.  가족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성품과 포기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새와 바다를 사랑하는 다정한 시선. 나아가 식물을 사랑하기까지 한다.   테러 이후의 삶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는 마음, 그들의 하나하나를  찾아가다 보면 심 시선이 있는 것이다.

딸이 사놓은 책인데 나도 덤으로 읽게 되는 호사스러운 시간을 누렸다.  소설을 읽고 나서 모녀인 우리는 똑같이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생각했다.  만약 영화로 만든다면 윤여정 배우가 제격일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시선은 모계중심의 가족이라는 말처럼 딸들과 손녀들이 중심적인 이야기를 끌고 나가며 여성으로서의 생활과 사회에 대한 시선이 나타난다.  윤여정 배우의 이미지처럼 자신의 할 소리를 강경하게 나타낼 힘이 있고,  여성과 남성의 편견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당차며 책임감 있다.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 주지, 그러면 안 된다고. 배우가 편하면 보는 사람은 기분 나쁜 연기가 된다고, 한 신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윤여정-


비극적인 천재화가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인연은 심 시선을 문제적 여성으로 만들었다.  많은 예술가가 그랬듯 젊은 심 시선은 뮤즈로서 소비되었고, 그의 얼굴과 몸은 그림 속에 갇혔다.  그러나 한국 전쟁 당시 경험한 학살, 인간의 저열한 악의와 폭력, '모난 돌'인 그는 살아있는 예술가가 되는 길을 택했고, 많은 말과 저서와 작품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자연스럽게 떠났다.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돌아보면 아득한 시간을 지나 '휘적휘적하지만 다정한 허수아비'같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세상을 향해 계속 자신의 말을 전한다.(김효선)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331p)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으니,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또 죽을 것이다.  도중에 가슴이 터져 죽어버리지 않은 것을 어린 자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먼저 죽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 이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로는 친구들에게 져 술래가 된 것이다.  편을 먹고 내게 미룬 채 먼저들 가버렸다.(239)


일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길들여지지 않는 괴물 늑대와 같아서, 여차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주인을 물 것이었다.  몸을 아프게 하고 인생을 망칠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조금만 사랑하자니, 유순하게 길들여진 작은 것만 골라 키우라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소소한 행복에서 의미를 찾자.  바깥의 평가보다 내면이 충실한 삶을 택하자는 요즘의 경향에 남녀 중 어느 쪽이 더 동의하는지 궁금했다.  내면이 충실한 삶은 분명 중요한데, 그것이 여성에게서 세속의 성취를 빼앗아가려는 책략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성취를 하려니 생활이 망가지고, 일만 하다가 죽을 것 같고....


우윤이는 약해 보이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왔지.  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할 거야.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331p)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 인생에 대해 평가하며 느낄 것이다. oo라면 어떻게 말해줬을까?  어떻게 이겨냈을까?  등등..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받은 만큼 그립고 또 추억한다. 사랑과 물질과 지혜를 어떻게 받아왔고 어떻게 이겨냈고, 어떻게 살아왔고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시선의 인세로 인해 화합은 자연스럽게 엮어졌을 뿐 아니라 유대감을 한층 강화시켰다.  가족의 사랑과 유대감은 그 어떤 것 보다도 의미 있고 그 이상의 무엇이다.  심시선 만큼이나 사랑을 베푼 아버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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