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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18. 2022

20. <김훈의 칼의 노래>

< 외로운 두 남자 >

     

한산도 야음


한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책 소개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루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었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랑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인으로 적을 맞으리, (2001년 봄 김훈)   


임진왜란 중 명장 이순신 장군(1545년 음력 3월 8일생)의 ‘백의종군’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2년여의 이야기이다.  동인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한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당대의 영웅이자, 정치 모략에 희생되어 장렬히 전사한 명장 이순신의 생애를 그려내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선들 앞에 초라한 숫자의 배를 몰고 나가 세계 해 전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승을 거둔 명장.  한 국가의 운명을 단신의 몸으로 보전한 당대의 영웅이며, 정치 모략에 희생되고, 장렬히 전사한 인물을 인간적이고 개인적으로 풀어냈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이순신은 어떤가?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임진년 개전 이래,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믿었다기보다는 그렇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숨 막혔다. (31p)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121p)


살려주자, 살게 하자, 살아서 돌아가게 하자....  내 속에서 나 아닌 내가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울음이 내 몸속에 서 양쪽 다 울어지지 않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가장 괴롭고 가장 선명한 길을 칼은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165p)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총알은 임진년의 총알보다 훨씬 더 깊이.  제자리를 찾아서 박혀 있었다.  오랜만에 갑옷을 벗은 몸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눈물겨웠다.  팔다리가 내 마음에서 멀어졌다.  몸은 희미했고 몸은 멀었고 몸은 통제되지 않았다.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341p)....


나는 적의 육상 기지 후방 가까운 산속의 사찰과 암자에 진지를 구축하고 승군 僧軍 정탐 부대를 보강하였다. 그 이유는 적의 철군 결정을 아는 이상 적들이 빠져나간 그 빈 바다의 삼군 도통사 지위와 존재를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최소한 며칠에서 일주일 걸리는 척후 정보라면 적들에게 길을 활짝 열어 방치하는 무책임 때문이었다. 그래서 견딜 수 없는 바다의 적막보다 더 서늘한 임금의 칼에 죽는 편이 오히려 아늑할 듯싶었다. (310p)


 최후 적들은 조선인 중 극소수 외에 해안 진지에 배치하고 남은 포로들과 부상자 500명을 죽여 광양만에 버리고 철수 준비를 하였다. 적의 군량은 보급이 전혀 없자 바닥이 나서 약탈과 심지어 쥐를 잡거나 진흙을 물에 타서 먹는 유령이 되었다. 교신도 끊기었다. 그래서 먼저 나는 모든 전선과 경선, 화약, 군량, 무기들을 고금도 덕동 수영으로 집결시켰다. 그리고 읍진의 군사와 군수물자가 도착하던 날 나는 종사관 김수철을 데리고 군사와 장비를 검열했다. 그날 저녁 토방에 걸린 면사첩을 불 아궁이에 던졌다. 그 이유는 이제 자연사 외에 길이 없어 적탄에 쓰러져 죽는 것도 자연사가 아닌가 하고 철수하는 적들 앞에 스스로 나아가기로 다짐하였다. (314p)  


노량 해는 사나운 물결로 소리 지르고 있었다. 적들은 살기 오른 노도처럼 바다를 뒤덮고 달려들었다. 광양만을 떠난 검은 깃발 순천의 적들이었다. 남해도에서 발진한 붉은 깃발 적 육군의 보충대였다. 두 깃발 사이로 흰 깃발 사천의 선단이 돌격대형의 장사진을 펼치며 다가왔다.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

바람은 적의 편이었다. 적의 종심은 수평선이 보이지 않게 길게 대열을 이루었다. 나는 종심의 저 끝까지 찔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위험한 근접 교전을 피할 수 없었다. 적의 대열을 토막으로 끊어낼 수밖에 없었다. 

“불화살을 올려라! 북을 울려라!”

섬 뒤의 복병 선단들이 섬의 날 뿌리를 돌아 나와 적의 대열 옆구리를 찔러 토막 내기 시작하였다. 나는 함대의 주력으로 적의 선두를 부수어 나갔다. 적병의 얼굴이 보이자 복병 선단 수졸들이 수십 단의 마른 볏짚을 적선으로 던졌다. 적들은 내 수졸들에게 조총으로 쏘며 볏짚을 물 위로 던졌다. 내 사부들이 볏짚을 던지는 적병들에게 활과 볏짚에 불화살을 쏘아 부었다.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이 파선의 불구덩이 속에서 삐져나와 물 위로 쏟아져 내렸다. 적들은 근접 교전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적의 선두 주력이 넓은 바다로 방향을 틀 때 내 앞쪽에 우현이 노출되어 총통으로 집중시켜 함몰시켰다. 내 사부 한 줄이 적의 조총에 맞아 물 위로 떨어졌다. 예비 병력으로 다시 전투 위치에 늘어섰다. 적들은 주력을 빼돌리기 위해 전선 수십 척의 화력을 일시에 집중시켜 내 함대의 화력을 돌려놓으려 하였다. 나는 함대를 물려가면서 적 주력의 항로를 차단했다. 밤중에 전투는 소강이었다.

다시 날이 밝았다. 적들은 계통을 잃고 개별적 철수를 시도했다. 우리 전선이 깃발 신호를 받지 못해 함대 전체를 통제할 수 없게 되어 나는 중군만을 인솔하고 각 방면별 수령들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전투는 난전이었다. 불붙은 적선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달려들며 내 대장선의 고물을 들이받고 깨어졌다. 이렇게 사방에서 또 다른 적선들이 달려와 들이받고 깨어졌다. 다시 날이 저물었다. 백여 척의 적들은 퇴로가 없는 물목 관음포 항로로 달아났다. 

“관음포로 가자. 관음포가 급하다.”

난간에 늘어선 적들이 일제히 무더기로 쏘아댔다.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선실 안으로 송희립이 나를 안고 옮겼다.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북을…. 계속……. 울려라. 관음포……. 멀었느냐?”

송희립은 갑옷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북을 울렸다.

난전은 계속 중이었다.  싸움의 뒤쪽 아득한 바다 위에서 노을에 어둠이 스미고 있었다.  적선을 태우는 불길이 바다 곳곳에서 일었다.  등판으로 배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격군들은 관음포를 향해 저어 가고 있었다.

싸움터를 빠져나가 먼바다로 달아나는 적선 몇 척이 선창 너머로 보였다.  밀물이 썰물로 바뀌는 와류 속에서 적병들의 시체가 소용돌이쳤다.  부서진 적선의 파편들이 뱃전에 부딪혔다.  나는 심한 졸음을 느꼈다.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 냄새와 내 젊은 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 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공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칼과 노래 사이의 그것이다.  그 둘은 역사적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그림으로써 첨예하게 빚어진 역사와 개인 사이의 대극이다.  그 셋은 순순한 문체의 힘만으로 항잡한 세상과 맞선 데서 솟아난 이야기와 문체 사이의 대극이다.  이 세 극단의 장력을 최대치로 높이고 긴 밀히 상응시킴으로써 작가는 구국 영웅의 무훈 담을 마음으로 세상을 버린 자의 단단히 응고된 울음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그 울음을 투명한 독백의 악기로 탄주함으로써 음표의 표기가 불가능한 음역의 노래로 재창조하였다.  이 노래 속에선 음률이 곧이 야기니, 어떤 해석도 완벽히 그 가사를 배길 수가 없을 것이며, 또하 이 노래 속에선 마음의 풍경만이 곧 강렬한 사건이어서, 어떤 열쇠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체, 오직 존재함의 숭엄한 비극만이 통째로 독자의 가슴팍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 전혀 예고된 적 없는 새로운 세계의 출현은 자발적 유배를 택한 작가의 장인적 정신의 승리이자, 오랫동안 반복의 늪속을 부유하고 잇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 할 것이다.(심사위원)


이공동체와 역사에 책임을 져야할 위치에 선 자들이 지녀야 할 윤리, 사회 안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신은 신인데 위대한 신은?  이순신

신은 신인데 못 신는 신은?  귀신

어렸을 때  책을 읽고 언니와 놀면서 장난친 말들이 생각났다. 칼의 노래는 김훈이라는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글을 쓴 작가 김훈과 시대라는 이름의 거대한 적을 향하여 좌충우돌하다가 마침내 시대에 의하여 살해되는 짧은 생애의 비극적 장관을 이룬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다.  외로운 두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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