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친구들이 나를 연애 이론 석박사라고 놀렸다. 실전 경험은 없으면서, 상담은 나서서 해줬기 때문이다. 설계하느라 공부하느라 늘 바쁘기도 했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시간은 언제든 낼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자타공인 연애 고자, 짝사랑 전문가였다. 나도 그런 내가 답답했다. 1학년 때는 2학년 때 생기겠지, 2학년 때는 3학년 때 생기겠지, 3학년 때는 4학년 때 생기겠지, 4학년 때는 5학년 때 생기겠지. 늘 그런 식이였다. 내가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나르시시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진지하게 들었다. 눈이 높은 건 물론이고, 연락하고 지내는 남사친은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 나를 좋다고 해도 나는 기어코 그 사람의 결점을 찾아내고 말았다, 마치 연애하지 않겠다는 청개구리처럼. 그러다 가끔 이유도 모르고 급작스럽게 짝사랑이 시작되곤 했는데, 그 감정이 괴로웠다. 나는 한 없이 작아지고,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난 후에 당당하게 고백하고 싶다는 열등감만 커졌다. 스칠 때마다 심장이 빨라지고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게 되는 바보 같은, 그래서 차라리 들키지 말자는 오기로 정색을 하고 싫은 척을 하며 피해 다녔다. 아마 그들을 내가 2년 넘게 짝사랑했다는 걸 아무도 모를 거다.
[ 끔찍했던 결혼 정보 회사 상담 ]
삼십 대가 되도록 별 다른 재미를 못 봤다. 오히려 결혼 적령기가 다가오니, 로맨스보다는 조건이 중요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척 시늉을 할 수도 없었고, 지인들의 결혼 소식이 잦아질 때쯤부터 나는 혼자인 시간이 많아졌다. '차라리 조건이라도 신명 나게 따져보자!' 하루는 답답한 마음에 결혼정보회사를 찾아갔다. 근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담 실장님이, 부모님이 공장과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돈 많은 '백수'를 엄청나게 포장해서 소개를 시켜 준다. 알부자라고는 하는데, 나는 왜 갑자기 배 나온 대머리 아저씨를 상상했는지 모르겠다. 순간, 졸부 같은 집 안에 시집가서 애 넷을 줄줄이 낳느라 커리어가 끊기고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나를 상상을 했다. 길었던 상담 시간 동안 '내 삶의 주도권을 사랑도 없이 타인이게 뺏기다니, 미친 짓이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거부감에 결혼 정보 회사의 연락을 전부 차단했다. '삼십 년 동안 별 볼일 없는 나였지만, 이제는 진짜 사랑을 찾을 때야, 못 할 건 또 뭐야.' 다시 한번 다짐했다.
[ 만화책을 찢고 나온 남자 ]
회사 선배가 이제 막 입사한 신입 사원을 소개해줬다. 멀리서 걸어오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슬로 모션처럼 순간이 느리게 느껴졌다. 코로나가 터진 지 얼마 안돼,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하얀 얼굴에 선량한 눈이 대충 봐도 훈남이다. 지극히 평범한 옷차림인데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나는 시선을 뺏겼다. 버릴 옷을 입고 페인트 칠을 하고 있던 꼬질꼬질한 나는 긴장감에 속이 비틀렸다. '아,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올 거면 누가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억울했지만 마스크와 안경이 내 쌩얼을 가려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마스크를 뚫고 나온 잘생김에 나는 그가 미남일 거라고 확신했지만, 그날은 마스크를 서로 벗지 않고 잠시 있다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그를 포함한 직원들과 중국집에 갔는데, 마스크를 벗으니 갸름한 턱선과 쏙 들어가는 보조개가 너무 청순했다. ‘결혼하자.’ 속으로 주접을 떨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으려고 연기를 해야 했다. 거의 매년 짝사랑을 해왔지만, 첫눈에 충격적으로 반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비밀을 다 터놓던 사이의 선배에게 말을 해버렸다. “나 오늘부터 그 애를 (짝)사랑하기로 했어.”
[ "원래 그렇게 무뚝뚝한가요?" ]
그는 말이 없어도 정말 너무 없었다. 내가 열 마디를 하면 한두 마디 정도의 단답이 돌아왔다. 물론 다 회사 메신저로 하는 업무 이야기였다. 일 핑계로, 나 혼자 횡설수설 말을 다 해놓고는, 나를 싫어할까 봐 식은땀이 나고 눈치가 보였다. '내가 너무 말이 많았나? 추했나? 그냥 내게 관심이 없는 거야...' 내 마음만 들켰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1년 동안 그냥 조용히 지냈다. 어차피 부서도 달라 볼일도 없었다. 잘됐지, 뭐.
[ 송정의 타로 공부하는 여인 ]
인간의 결핍이 중독을 만든다고 한다. 실제로 모든 인간은 크던 작던 결핍과 중독을 앓고 있다. 31살의 나는 아마도 쓸쓸한 애정 결핍. 단 한 명이라도 진정으로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친구를 달라고 기도했다. 연인이면 좋겠지만 그게 안되면 친구라도 달라고 간절하게 매일. 근무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송정의 작은 원룸에서 혼자 TV를 보며 배달음식을 시켜 먹던 나는, 뭔가 온전하지 못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은 남아돌고, 헛헛한 마음을 뭘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직장인 취미 모임에 나가 봤지만, 의미 없는 대화에 재미는커녕 지쳐갈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타로를 접하게 됐는데, 위로도 되고 신기하기도 해서 계속 듣게 됐다. 금전운, 연애운, 결혼운, 승진운, 주제는 무궁무진했고, 절대 망할 거라는 식의 해설은 없었기에, 타로 말대로 진짜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중에는 답답해서 내가 타로 카드와 해설서를 직접 사서 읽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냥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 "아니, 그래서 좋아하냐고요." ]
당연히 가장 궁금한 것은 ‘그 사람 날 어떻게 생각하나요?’였다. ‘혹시 저를 좋아하나요.’ 질문을 할 때마다 카드는 열받는 대답을 했다. “그 사람은 지금 너무 바빠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연애할 상황이 아니네요. 여자한테 관심이 아예 없거나 이미 여자가 있네요.” 역시 아니겠지. 나를 보던 차가운 눈빛, 단답형의 말투가 기억났다. 남자들은 관심이 있는 여자한테 차 사줄까, 밥 사줄까, 데리러 갈까, 한다는데. 그 사람은 전혀, 그냥 나를 돌 보듯이 봤잖아. 그렇지만 나는 그냥 습관적으로 해리포터에 나오는 트릴로니 점성술 교수처럼 질문을 던지고 카드를 뒤적이고 해설서를 읽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유튜브 타로도 많이 봤다. 나의 다음 연애 상대는, 나의 신랑은 어떤 사람, 내가 듣게 될 고백,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이어질 홍연은. ‘분명 카드가 일관되게 말하는 누가 있는데... 어딨는 거야, 내 남편은 도대체!’ 슬슬 화가 나고 답답해졌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사람, 요새 어떻게 지내요?’라고 물어봤는데, 타로 카드가 그 사람이 요즘 너무 힘들단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위로의 메시지를 써서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알아보고 눈치채 주길 바랬다. 마음을 담은 그림과 편지와 일기를 매일 올렸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데 봐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그 사람이 읽기를 기다릴 뿐이다.
[ “그냥, 예쁘다고 말해줘.” ]
심리학에서 ‘정체성’이란 ‘타인이 보는 내 이미지’를 뜻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경험한 평가, 대우, 인기, 반응, 태도, 칭찬, 비난, 질투, 과시, 비교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구축한다. 그리고 나는 20대까지 자신을 못생긴 편이라고 생각했다. 각진 턱을 갸름하게 깎고 싶었고, 빽빽한 주근깨를 지우고 싶었다. 조울증 약 부작용으로 뱃살도 심했다. 사람들이 내 턱과 주근깨, 뱃살을 본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이 떨어졌고, 코디나 화장을 할 의욕도 별로 생기지 않았다.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칠해 주근깨를 가리고, 턱에는 쉐딩을 진하게 칠했고, 뱃살 때문에 검은 바지 만을 고수했다. 콤플렉스를 가리기 급급했지만, 여전히 아무도 내게 예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한 날은 유튜브에서 ‘내 매력은 무엇일까?’라는 타로를 보게 됐다. 사실은 1번부터 5번까지 나쁜 말은 없다. 심지어 예쁜 나를 짝사랑하는 남자도 많다고 아부하는 카드도 있었다. 최면에 걸린 듯, 거울을 보면서 아름다운 나를 모두가 사랑하는 상상을 했다. 결핍감은 잦아들고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나의 아름다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눈 화장을 안 해도 크고 맑은 눈, 니트가 어울리는 넓은 어깨, 와이드 팬츠가 어울리는 골반, 얇은 팔찌가 어울리는 가는 손목. 그렇게 내 장점을 강조하고 단점을 커버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굳이 타인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니 꾸미는 게 재밌어졌다. 무리한 운동 대신 식단 조절로 변비와 뱃살이 해결했다. 이제는 내 아름다움을 내가 먼저 발견하는데 익숙해졌다. 아무도 내게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던 시절, 타로는 내게 ‘항상 네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친구였다.
[ 성격이 이상해 친구가 없다 ]
"네가 제일 이상해."
"네가 더 이상해!"
- 보건교사 안은영 중에서 -
나는 참을성 없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예민하며, 고집이 세다. 거절을 두려워하고, 욱할 때는 직설적이라 종종 언쟁을 한다. 사람들은 나의 독특한 아우라에 이끌려 왔다가, 부담스러워서 달아난다. 나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런 악순환의 반복. 졸업을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면서, 이직을 하면서, 이런 내게 남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한테 기대하고 의지하는 게 부질없다는 실망감이 팽배했다. 예전에는 외골수 같은 나를 인정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언젠가 나와 비슷한 또라이를 만나면 즐겁게 얼싸안을 수 있지 않을까. 주치의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조울증과 성격장애는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생각해보니 조울증을 겪기 전에도 나는 성격이 특이했다. 그럼 이건 치료도 안 되는 건가? 과연 나도 남들처럼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올까?
[ 관계를 잃는 조증 에피소드 ]
짝사랑을 하면 심장이 위험하게 뛰고 열등감에 속이 탄다. 입도 못 떼보고 끝난 기억들, 패배감에 젖는다.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상황, 나는 '조증 에피소드'를 연상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말이 많아지고 공격적여지고 감수성에 젖고 거만해지고 사치가 심해지는 시기. 나는 첫 조증을 겪으면서 수많은 사람을 순식간에 잃었다. 옛날 기독교에서는 정신질환을 ‘마귀’에 씌었다고 표현한 것처럼. 마치 귀신이 씐 것처럼 했던 상식 밖의 행동들, 상처를 주는 말들을 쏟아냈고, 심지어 아주 충격적인 부분들은 기억이 안 난다. 지금 와서 사죄를 하고 관계 회복을 바라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에피소드 상태에 빠진 나는 매번 엉망진창이었다. 머릿속에는 항상 ‘죽기 전에 용서를 구해볼 사람’ 리스트가 빙빙 돌고 있다. ‘내가 조울증이니 당신들이 이해해라.’가 아닌, ‘아픈 환자의 이상 행동과 무례에 대해 진심으로 매일 후회했다.’는 사죄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런 내가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나는 몰래 혼자 사랑하는 편이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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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말을 들으려고 타로를 봤다 ]
다 잘 될 거라는 말이 듣고 싶을 때
미래를 점쳐 보는 타로 카드
취미로 모으다 보니 이 지경으로 많다
그런데 타로에 무조건 100%란 없다
'운이 크다', '운이 작다' 정도지.
'조금만 노력해도 되겠네요.'
'좀 많이 노력해야 되겠네요.' 차이.
근데 야속하게도 그게 진실이다.
모진 운세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태도뿐이다
내가 친절과 감사를 잊는 순간,
쉽게, 빨리, 혼자 가려고 하는 순간,
주도권을 놓고 요행만 바랬던 순간,
인생은 더 처절하게 부서져 내렸다
마치 강형욱 훈련사나 오은영 선생님이
강아지나 아이가 태도를 고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것처럼
그런 못난 마음 버리고 정신 차리라고
신이 나를 기다려 주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태도, 생각, 마음, 의식
변화의 시작도 태도, 생각, 마음,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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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한 첫사랑에게 쓰는 편지 ]
안녕! 오랜만이야. 우리 실제로는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지? 네 앞에서 쫄보가 되느니 관심없는 척, 연기를 해야했어.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는 모습만은 보이기 싫었으니까. 그렇지만 뒤에서는 너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어. 실례인줄 알면서 네 생각도 많이 했어. 꿈에서도 같이 놀았어. 이렇게 너에 대한 글과 그림을 올리는데, 정작 너한테 실제로 닿는지는 알 길이 없네. 네가 지금 너무 힘들다는 타로카드의 말에 응원을 표한다는 게 그만, SNS에 갖은 주접을 떨었지. 넌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 아니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그 때가 실제로 조증 에피소드 기간이었을지도 몰라. 불쾌하거나 곤란했다면 여러모로 정말 미안해. 네가 날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할까봐 너를 다시 볼 용기가 없어. 하지만 너만큼 좋아한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넌 나의 뮤즈고 첫사랑이야. 모두가 날 등질 때 네가 날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상상했어. 그 힘으로 괴롭힘도 견디고, 업무도 견디고, 집도 사고, 공사도 끝내고, 조울증 재발에도 휴직까지 버티고, 생활고도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아. 타로카드를 보며 키득거리는 조울증 환자의 상상일 뿐이겠지만, 그 믿음이 나를 구했어. 근데 여전히 나는 널 잘 모르잖아. 네가 청순하긴 한데, 왜 이렇게까지 좋은지 몰라서 힘들어. 그리고 아무 표정도, 말도, 힌트도 주지 않는 너는 너무 잔인했어. 네가 나를 싫어한다고 확신해. 네가 나를, 내가 나를 완전히 용서한 날에 다시 얘기하자. 당분간 안녕!
영화 [ 중경상림 ]
영화 [ 중경상림 ]을 보고
아미는 만우절날 223에 이별을 통보하고
223은 통조림 파인애플을 모으고
663은 물건과 대화하면서 편지는 뜯지 않고
아비는 633을 몰래 그의 집을 헤집어놓고
처음에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시절 홍콩 영화의 팬이 아니었어서
분위기나 감수성에 젖기는 애매했다.
말이 되나? 왜? 구지? 뭐하는거지? 응?
반복하면서 딴짓하면서 끝까지 보긴했다.
몽유병인지 꿈인지 회상인지 상상인지
흔들리는 화면과 혼돈스러운 연출 탓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삶도, 사람도, 사랑도, 외로움도, 밤도, 새벽도
거짓말, 편집증, 집착, 강박, 관음, 광기, 일탈
어떤 증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 어쩌면 내가 마츠코였을지 모른다 ]
"인간의 가치란 건 누군가에게 뭘 받았느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뭘 해줬냐는 거겠지."
- 영화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중에서 -
가족에게,연인에게, 친구에게, 조직에지고지순한 사랑을 받치며 기대하며인정받길 간절히 원했던 마츠코는그럴수록 더 잔인하게 버림받는다.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그녀의 마음은이용당하고 탁취당한다.결코 자신을 위한 것도 건강하지도 않은그런 삶에 미쳐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그것은 잔혹 동화처럼 화려하지만 부질없다.얼핏보면 마츠코의 일생이 불가피한비극의 연속처럼 보이지만사실은 그녀의 어리석은 마음이자초한 최악의 시나리오다.그녀의 순수한 사랑과 이타심 뒷면에는분명 어떤 못난 마음이 숨어있다.기대고 있는 곳이 해로운게 분명하다면댓가를 치르더라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기꺼이 용기를 내고 홀로 서야 할 것이다.
"너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인정해줘!"
라고 사랑을 구걸 하느니 차라리
"너에게 인정받으려고 최선을 다한게 아냐!"
라고 당당하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외로웠을까? 깨달았을까? 잠깐? 계속? 마츠코는 이해할 수 없었다.계속 "난데?(왜지)?"를 되내였다.그리고 기댈 사람을 찾아헤맸다.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괜찮은 사람인데, 본인만 그 사실을 철저하게 몰랐기에자꾸 엉뚱한 곳으로 도망치고엉뚱한 사람을 부둥켜 안는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마츠코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찜찜해졌다. 그래서 내 음지의 짝사랑은 종결이 났다.26개월 간의 호감, 16개월 간의 짝사랑은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충분히 따뜻했고 충분히 빛났고 충분히 더웠고 충분히 따가웠지만, 이제 그 사람은 나의 태양이 아니다. 비록 전해지진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고, 나도 평생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주는 성장통을 겪었다. 나의 광합성은 이거면 충분하다.오늘부터 나의 태양은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