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사촌이 고등학교를 자퇴한다고 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촌은 학교에서 시간을 뺏기는 게 수능 정시 준비에 불리하다고 했다. 하지만 소속 없이 사회와 단절되는 고립감을 뼈저리게 느껴본 나는, 입시를 떠나서 그런 결정을 말리고 싶었다. 나도 학생 때는 학교에 가기 싫었고 직장인일 때는 회사에 가는 게 싫었지만, 사촌이 또래와 완전히 격리되어 공감대를 상실하고 세대의 접점을 잃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사촌은 천편일률적인 형태로 사람을 재단하는 입시 제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21살, 조금은 정적이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내가 취업 준비할 때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자주 찾게 된다.
[ 77 사이즈가 사라진 세상 ]
백화점 구경을 갔다가 스파 브랜드에서 남자 정장 바지를 구경했다. 어제 사촌에게 운동복 바지를 싸줬는데, 슬랙스는 사이즈가 없어서 못 사줬기 때문이다. 매장에 있는 제일 큰 바지가 36 사이즈, 사촌은 최소 40은 입어야 하는데, 스판끼도 없는 저 바지가 들어갈 리가 없겠다. “혹시 온라인 몰에도 36 보다 큰 건 없나요?” 직원은 온오프라인 최대 사이즈가 36이라고 했다. 사촌이 딱히 뚱뚱한 몸도 아닌데, 요즘 옷가게에는 비쩍 마른 모델 옷만 있는 것 같다. 한 층 내려가서 스포츠 의류 행사 매대를 구경했다. 제일 큰 슬랙스를 찾으니 41과 38을 보여주신다. 신축성도 있어서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38 검은색과 41 남색을 사서 사이즈 확인 후에 교환하러 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내가 조울증 약 부작용으로 10kg이 급격하게 찌고 변비 때문에 배까지 볼록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끝이 보이지 않던 무기력한 암흑의 취업 준비생 시절. 백화점에는 맞는 옷이 없었고, 나는 더 집에만 있게 됐다. 거식증 모델들이 표준이 된 패션 업계가 정상이 아니라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내 몸이 비만이니 내 탓이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 휴학 백수네 집에 놀러 간 휴직 백수 ]
“사촌아, 문 열어~.” 사촌이 문을 열었다. “옷 입어봐, 38 검정 먼저.” 38은 확실히 작았고, 41은 딱 맞아 다행이었다. 오늘도 사이즈가 안 맞았으면 민망할 뻔했다. “시중에는 멸치 같은 사람들 입을 옷 밖에 없다. 뼈만 남은 아이돌도 아동복 입고 무대 하잖아. 네가 풍채가 좋으니까, 브랜드를 잘 골라서 가고 사이즈는 기억해둬야겠다. 근데 더는 찌면 안 되겠다, 지금 딱 맞아서. 누나도 백화점 가면 맨날 사이즈 없어서 남자 옷 산다. 너 다음에 옷 살 때 나랑 같이 가자.” 위독하신 할머니의 장례식을 염두해서 옷장에서 셔츠와 코트, 운동화도 같이 골라봤다. 확실히 기본 아이템이 별로 없어, 코디하기가 곤란했다. “너 지금 체형에 맞게 계절별로 상황별로 기본 아이템을 좀 사야 할 것 같다. 여름 셔츠, 겨울 셔츠, 여름 슬랙스, 겨울 슬랙스, 여름 청바지, 겨울 청바지...” 상담을 좀 해주니, 사촌이 웬일로 밀 키트로 밥을 차려준다. 반찬도 꺼내 같이 맛있게 먹고 커피도 마셨다. 나는 사촌에게, 남아도는 시간에 대한 내 생각,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는 방법, 머리가 복잡할 때 훌쩍 떠나는 여행, 글쓰기의 효능 등 자질구레한 이야기보따리를 펼쳐놨다. 그러면 사촌도 언젠가는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사촌은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그래, 뭐 그런 시기도 있지. 그럴 때 나는 스스로한테 계속 질문은 해. 너 뭘 원하니? 이게 네가 원했던 거야? 그리고 일기를 써. 그러고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 한 뼘씩 가까워져 있더라.” 사촌은 믿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그건 진심이었다.
[ 교환하러 다시 백화점으로 ]
백화점으로 몇 시간 만에 돌아가니, 직원분이 나를 기억하시고 교환을 바로 도와주셨다. 아까 바지는 담이 든 겨울 바지라, 이번에는 얇은 걸로 추천을 부탁드렸다. 얇은 바지를 보여주시는데 하나 남은 41 사이즈라고 하신다. 역시 큰 사이즈가 잘 없구나. 나는 사계절 내내 반바지를 입고 다니던 사촌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전화로, 아까와 비슷한 디자인의 여름, 가을 바지를 발견했다고, 사다 줄지 물으니 좋다고 고맙다고 한다. 집안 행사 날에도 똑같은 옷만 입고 다녀 잔소리를 듣던 사촌, 이제 날씨에 맞게 상황에 맞게 센스 있게 입도록 내가 계속 신경을 써줄 것이다. 나는 돈은 없지만 안목과 센스는 있는 누나니까.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사촌을 보며, 나는 그의 외모나 성격이나 능력 면에서 장점과 가능성을 늘 발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사촌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사촌이 잔소리처럼 들을까봐 늘 속으로 삭히는 말이 있었다. '사촌아, 우리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서 풍요롭게 살아보자.'
[ 지나온 조울증 '경험'의 자본화 ]
책 '아비투스'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특성과 경험(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을 자본으로 활용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울증이라는 경험은 내게 어떤 자본으로 작용했을까.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에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기는 하다. 조울증을 계기로 시작한 다양한 힐링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명상은 내가 평생을 외면해온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인정하고 내려놓게 했다. 힘을 다 빼고 자신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화해는 스스로에게 큰 위로가 됐다. 이후로는 불안할 때면, 나의 결핍과 욕구를 더 경청했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록하고 실천했다. 더 정리되고 단단해진 마음을, 필요할 때마다 탐사할 수 있게 된 지금에 만족한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세상을 대하는 내 태도가 겸손해진 것이다. 조울증은 내가 겪는 에피소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스스로를 더 이해하게 됐고, 세상의 ‘소수자’나 ‘혐오’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체감하게 됐다. 나 먼저, 똘레랑스(관용)를 그냥 유행어처럼 남발할 게 아니라, 내 울타리를 넓히고 낮춰 다양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매일 체크하는 에피소드 ]
내가 들뜨고 말이 공격적여지면 조증 에피소드 상태에, 무기력하고 말수가 줄면 울증 에피소드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주치의 선생님께서 3주마다 면밀하게 관찰해서 약을 조정해주시는데, 가끔은 '미친 상태인지 아닌지를 판단 받는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지만, 조증도 울증도 아닌 평균 상태를 유지하려면 이게 최선이다. 완치를 해서 약을 끊는 게 아니라, 기분을 평균 상태로 유지하며 예방 약을 계속 복용하는게 중요하다. 나는 최악의 울증 에피소드 기간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나친 죄책감에 죽을 궁리만 했다. 반대로 첫 조증 에피소드 기간에는 활기가 넘치고 공격적인 말투에 거만해지고, 통제되지 않는 지출에 허황된 사업계획을 세우다 모든 걸 잃는 경험을 했다. 에피소드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장한 나를 사랑하지만, 그런 에피소드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에피소드 상태에 놓이지 않게끔, 나는 매일 단련과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증이나 울증에 치우치지 않는 기분과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며, 지금의 항상성과 평화에 만족한다.
[ 조울증은 나의 ㅇㅇㅇ ]
"조증 에피소드 상태에서는 더 예민하고 더 용기가 생기고 더 감수성이 커져요. 그걸 제 성격이자 정체성이라고 여기고 사랑해야겠죠?" 주치의 선생님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여셨다. "'A person who is bepolor disorder' 보다는 'A person with bepolor disorder'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정체성이라며 한 질병을 한 사람과 동일시하기보다는, 한 개인이 가진 특징, 일시적으로 겪는 사건에 가깝다고 봐야해요. 성격장애와 정신질환은 조금 다릅니다. 조증 상태는 주혜씨의 본모습보다는 아픈 상태에서 나오는 순간의 이상 행동이라고 보면 돼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조울증을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여 사랑하자고 생각한지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하긴 에이즈에 걸렸다고 그 사람을 에이즈와 동일시하고 에이즈로 정의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조울증을 이겨낸 후 성장한 나를 사랑한거지, 조울증을 사랑한 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조울증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다면 조울증은 나의 정체성? 친구? 페르소나? 일부? 약점? 기생충?어떤 단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선생님, '정체성'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했네요. 에피소드는 어떨까요? 제가 종종 겪는 에피소드." 선생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좋네요, 에피소드, 경험, 증상, 잘 이겨낸 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