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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마음 Oct 27. 2022

22년 10월, 휴직 백수의 쓸모

[ 무한한 힘을 상상하는 우주 먼지 ]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 영화 [ 기생충 ] 중에서 -


아무것도 안 하고 이불 속에서 폰만 보는 날은 시간이 다섯 배는 느리게 간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공간의 왜곡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무기력의 늪에서 발버둥 조차 포기한 날이 많아졌다. 평소에는 몸이 상할 정도로 일에 목숨 걸지만, 슬럼프가 오면 손가락도 꼼짝하지 않는 내 극단적 성향이 피곤하다. 내가 '우주의 먼지'처럼 느껴진다. 복잡한 결핍이나 욕구에 이끌려 아등바등 살아봐도, 별 다를 게 없을 거란 허무주의에 자주 빠진다. 지금 내게 없는 체력과 정신력, 경제력과 포용력을 상상한다. 6시간만 자도 끄떡없는 체력, 타인의 무례함을 웃어넘기는 정신력, 어려운 친구에게 선뜻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경제력, 이기적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포용력. 그런 '' 미리 비축해놔야 필요할 때 쓸 수 있을 것이. 인스턴트가 아니라 건강한 슬로우 푸드를 차려 먹고 싶다. 종일 TV를 볼 게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푸른 산책로를 달리고 싶다. 진정으로 내 일을 즐기고 균형 잡힌 여가 시간을 즐기며,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 해로운 것들로부터 벗어나,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 내가 생각하는 성공과 행복이다.  과정에서 이 시간은 다소 느슨할 지언정, 꼭 필요한 변곡점일 것이다. 아마 체력과 정신력을 다질 시기일거라며 추측하 다. 우리의 인생 계획이라는 게 항상 미시적일 수는 없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우주에  질문을 던지고 한참을 기다려본다.


[ 길거리를 떠도는 미물의 쓸모 ]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해서, 다른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휴직 백수가 된 직후, 나의 마음의 여유나 재정적 여유는 급속도로 쪼그라 들었다.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같고,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일처리를 할 수 없을 것처럼 무능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남아 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와중에, 내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와중에, 내가 으쓱대며 신나게 해내는 일이 있다. 바로 길에서 난처해하는 사람들을 나서서 돕는 것이다. 타겟은 대체로 할머니다. 지하철에서 길을 헤매는 할머니를 환승하는 길을 바래다 드리고, 실업 급여를 못 받았다는 할머니의 노여움을 달래드리며 고용복지센터에 데려다 드리고, 짐이 많아서 엉거주춤 계단을 내려가는 할머니의 짐을 두손 가득 들어드리고, 병원을 못 찾는 할머니를 위해 지도앱을 보며 같이 걸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랬던 시간을 떼우기 위한 취미였지만, 나중에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내가 댓가를 전혀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돕는 건, 내가 세상에 진심 어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에너지를 나눈 날에는 하루 종일 마음이 푸근했다. 어쩌면 내가 나를 도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할애하고 에너지를 쓴다는 것은 내게, 지구인으로서의 공생을 의미했다. 나는 그 즐거움에 흠뻑 젖어서 오늘은 도와줄 사람들이 없는지 사방을 살피며 걷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잃어버린 지갑과 폰을 줍는 일도 많아졌다. "아이고~ 복 받으소. 너무 고맙소~. 진짜로 고맙소.~" 그런 할머니들의 건강을 비는 것으로 선행은 종료된다. 나는 그런 불특정 다수가 주는 '살아있는 느낌'을 좋아하게 됐다. 지금 이 시간의 쓸모, 나라는 사람의 쓸모, 세상의 쓸모, 모든 것들은 연결되있다는 기분이 든다.


[ 뜻하지 않은 가족의 날 ]

7월부로 휴직이 시작된 이후, 손꼽히게 바쁜 하루였다. 오늘은 여러모로 가족들을 챙겨야 할 일이 많았다. 워크홀릭인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 짜증이 났을지도 모를 날. 실리주의와 개인주의 사이 그 어디쯤, 원래 나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타인에게 뺏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었다. 더군다나 우리 가족은 화목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나는 가족 행사를 싫어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할머니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고, 친척 단톡방이 심각한 분위기였다. 오늘도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동아대 병원 입원실 1112호,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할머니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헐떡헐떡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할머니, 주혜 왔어. 할머니, 사랑해. 할머니, 힘들어? 할머니, 괜찮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 말이 들리긴 할까. 할머니는 어떤 말이 듣고 싶을까. 얼마나 두려울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산소호흡기가 할머니의 숨을 붙잡는 게 고마우면서도 잔인했다. 순서대로 사촌동생들도 면회를 마쳤고, 우리 모두 비슷한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어디로 가는 걸까?’



[ 그제 왔던 생선구이 집 ]

그제 오전에 병원 로비에서 삼촌과 아빠를 만났는데, 아빠는 화가 잔뜩 나있었다. 더는 손 쓸 수 없는 임종을 앞둔 할머니를 동아대 병원에서는 퇴원시키려 했고, 우리 가족은 진통 치료를 지속하기 위해 이송을 거부하는 중이었다. 아빠가 식사를 걸렀을까 봐 이미 엄마가 음식을 해서 온 걸 모르고 나는 꼬마 김밥을 내밀었고, 삼촌은 밥이라도 먹고 다시 얘기하자며 아빠를 다독였다. 우리는 조금 걸어 근처의 생선구이 집에 갔다. 나는 꼬마 김밥을 먹은 직후라서 생선구이 정식은 2인분만 시켰다. 다행히 8천 원짜리 정식 치고, 꽤 때깔 좋은 생선이 네 종류나 나왔다. “와, 여기 맛집일 것 같더라.” 하면서 우리 세 사람은 잠시 이야기 화제를 전환했다. 맛있는 식사와 가벼운 대화로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아빠, 파이팅.” 볼이 핼쑥해진 아빠가 먼저 병원으로 들어갔고, 나는 삼촌과 좀 더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 사촌들과 다시 그 식당에 와서, 셋이서 3인분을 시켰다.



[ 다시 태어나는 우주의 먼지 ]

죽음의 문턱까지 가본 경험이 있던 사촌이 말했다. “내가 죽기 직전일 때 나는 다른 말은 다 필요 없고, 천국에 갈 거라는 말이 듣고 싶었어. 너무 무서우니까.”

그렇지, 곧 있으면 뼛가루가 되어, 흙먼지가 되어 우주로 흩날릴지 모르는데, 사라지는 그 기분이 무섭지. 나는 말했다.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내 영혼을 영원히 지켜주고, 사랑하고, 아껴준다는 믿음. 그 믿음 자체가 절망에서 한 사람을 구하지. 육신이 사라질 뿐, 영혼은 현생에서 사랑했던 능력만 다음 생에 들고 가서 다시 태어날 거야.”

사촌을 안심시키면서도 나는 아빠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생선구이를 먹은 아빠. 정작 본인도 림프암 3기와 싸우고 있는 아빠. 그리고 아빠를 생각하며 생선구이를 먹는 나. 되풀이되는 삶과 죽음. 짧은 인생과 어쩔 수 없는 순리.


[ 백수 사촌과 남포동 구경 ]

두 사촌을 먼저 보내고 조금 있다가 다른 사촌이 왔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군대를 미루고 있는 백수 사촌. 처지가 비슷해서 요즘 자주 만나긴 했지만, 얼굴을 또 보려고 일부러 기다렸다. 사촌이 면회를 하는 동안 고모는 내게 푸념했다. 추운 날 임종 면회를 오면서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온 아들이 센스 없고 여러모로 답답하다고,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나는 전혀 그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고모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을 '문제아'라고 낙인 하면 안 된다고 해도 고모는 확고했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사촌 본인도 문제가 없다는데. 나는 사촌에게 남포동까지 걸어가서 바지를 사자고 했다. 가는 길에 밀면 집에 들러 사촌이 밀면 먹는 것을 기다려줬다가 7천 원을 내줬다. 그가 오늘 안과와 피부과에 가야 한다기에, 잘하는 병원을 카톡에 찍어주며 내일 가라고 했다. 그리고 핏팅이 자유로운 옷집에 데려가서 슬랙스와 셔츠, 맨투맨을 입어 보라고 하고 사촌에게 어울리는 옷을 알려줬다. 그리고 제일 편해 보이는 길고 따뜻한 바지를 골라서 사주고 부탁했다. “혹시나 누가 너 보고 넌 이게 문제야, 이것밖에 안돼, 이걸 고쳐야 돼!라고 하면 절대, 절대, 절대로 믿지 마. 그냥 너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당연히 할 수 있고, 너무 멋진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어야 해."


[ 62년생 엄마의 환갑잔치 ]

사촌과 헤어지고, 민락역에 가서 주문해둔 떡 앙금 케이크를 픽업했다. 급하게 산 만 팔천 원짜리 꽃다발과 나름 화사하게 잘 어울렸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초량에 고깃집으로 향했다. 할머니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 지지부진, 예약을 취소했던 생일 파티였다. 엄마는 할머니 임종에 폐가 될까 봐 생일을 가능한 조용히 넘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한평생을 희생한 엄마를 위해, 우리는 무슨 축하라도 하고 싶어 했다. 지하철에서 고깃집에 전화해서 혹시 6시에 가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된다고 하신다. 언니, 동생, 엄마, 아빠에게 차례로 연락을 돌려 예정대로 저녁을 먹자고 했다. 딸 셋에 사위들까지 어른 7명에 아기 1명, 웃음이 끊이질 않는 화기애애한 저녁식사였다. 조카인 아기 승우는 꽥꽥 소리를 질렀고, 낯선 어른이 다가갈 때마다 울었다. 외식비가 많이 나왔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될 때쯤에, 아빠가 조용히 40만 원을 결제하고 왔다. 엄마는 축하받는 걸 부끄러워하는 와중에도 내심 좋아했다.



[ 하루를 마무리할 때 생각난 뚜비 ]

거의 매일 집에만 있다 보면 내가 온 우주에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늘은 다사다난한 일로 가족들이 모이니, 좀 피곤했지만 많이 반가웠다. 내가 한참 모서리가 뾰족했을 때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기에 바빴는데. 지금은 모서리를 어느 정도는 내려놓은 것 같다. 어쨌든 휴직 백수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다니, 백수이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늦은 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급하다. “뚜비야~ 배고프지~?” 얼른 외투를 벗고 똥을 치워줬다. 한 번에 다 삼켜 체하지 않도록 숟가락으로 사료를 떠서 헌 옷가지 위에 여러 번 나눠서 뿌려줬다. 오늘처럼 귀가가 늦는 날은 뚜비는 산책도 못하고 공복 상태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어두워지면 산책을 가고 싶어서 낑낑대는데, 까먹고 불이라도 끄고 간 날에는 너무 미안했다. 밀린 글을 쓰느라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어~ 그래 그래, 기다려 기다려.” 하면서 산책 가자는 걸 입으로만 달래고 있다. 뚜비도 1인 1견 가구의 엄연한 가족인데, 항상 후순위라니. 얼른 글을 마무리하고 따뜻한 옷을 입혀서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그리고 형편이 나아지면 뚜비 친구 겸 둘째 입양을 알아봐야겠다. "뚜비야, 너도 가족이 있으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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