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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마음 Oct 25. 2022

intro: 휴직 백수의 마음 이야기

91년생의 인생 연표, 일상 아카이브

[ 이런 책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

이미 써버린 것 어떡하나. 이 책은 한마디로 나의 치부책(치부를 기록한 책)이다. 실패한 짝사랑, 영끌로 인한 채무 악화, 조울증 재발로 겪은 대인관계의 실패, 불독 뚜비를 비롯한 가족들과의 불화, 사건 사고들. 그리고 본능적으로 숨기고자 했던 마음들, 죄책감이나 소외감, 열등감이나 나르시시스트적인 자기애. 공개적으로 적나라하게, 나름 공들여 써놓은 내 아킬레스건을 읽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으나,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의식이 허용하는 한에서 최대로 솔직한 내용을 이미 다 토해냈다. 누가 이런 누추한 글을 읽어줄까 하는 두려움과 설렘. 한편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으니 홀가분하기도 하다.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던 것들이 좀 정리된 기분도 든다.


[ 간절함이 끌어당긴 사람들 ]

내 집 마련이라는 꿈으로 시작된 지난 1년 반의 이야기는, 누가 봐도 급진적이었다. 21년 7월 말에 부동산 스터디를 만들고, 책과 영상과 임장을 통해 아파트를 공부하고, 화명동에 밤낮으로 발도장을 찍고, 9월 초에 집을 계약하고, 무리한 대출을 감행하고, 22년 1월 중순에 3억 1500만 원의 잔금을 치렀다. 이어 마이너스 재정 상태에서 셀프 인테리어를 혼자 완성하고, 강아지 한 마리를 부양하며 조울증 재발을 견디고, 휴직 상태에서 생활고를 이겨내며 130분짜리 브런치 북을 완성했다. 울다가 잠든 날이 많았던 고비를 무사히 넘겨준 자신에게, 포기하지 않고 견뎌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31살 여름부터 시작된 나의 롤러코스터 같은 도약의 뒤에는 사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스터디 모집 공고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우리는 열심히 양질의 생각과 정보를 나눴다. A급지 아파트가 너무 비싸서 고민이라는 내게 스터디 친구는 화명동을 소개해줬고, 지금이 대출받기 좋은 타이밍인 것을 알려줬다. 밤 임장 중에 길을 헤매다 들어간 치킨 집 사장님은, 바로 옆의 아파트와 부동산을 소개해주셨다. 좋은 매물을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표하니 매도인과 중개인께서 500만 원을 깎아주시는 호의를 베풀어주셨다. 휴직 전 감정 기복으로 힘들어할 때 부서의 또래 친구들이 웃긴 농담을 하며 좋은 기운을 나눠줬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말에 처음 본 아저씨가 귀한 불독을 선뜻 소개해주셨다. 생활고에 지치는 날이면 엄마는 맛있는 고기를 사주셨다. 내 이야기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나를 브런치로 인도했다. 그리고 작가와 독자라는 친구들을 만들어줬다. 나의 간절한 기도와 열린 마음은 빠른 속도로 귀인을 끌어당겼다. 지금의 나를 있게 도와주신 모든 귀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 스쿠버다이버와 서기관 ]

20대 중반의 나는 심해저처럼 깊고 어두운 마음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다. 처음 직면해본 발가벗은 마음들이 뒤엉켜 나를 짓눌렀다.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 내면의 치유를 해왔다. 어떤 표현이 적당할까, 마음을 버렸달까, 내려놓았달까, 깨달았달까.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나는 정말 많이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필요할 때마다, 스쿠버다이빙을 해서 낱장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유난히 힘든 날은 내가 알아채지 못한 마음이 있는지,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있는지, 눈을 감고 차분하게 뒤적거린다. 그럼 며칠이 걸리든 못난 마음은 실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내려놓게 된다. 사람과 상황은 버릴 수 없지만, 마음은 버릴 수 있다는 내 믿음이, 실제로 많은 마음을 내려놓게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음을 직면하지 못하니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짜고짜 마음공부를 추천하면, 그들에게는 교회 다니라는 설교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또한 사람마다 자신의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수 있기에, 그 마음의 무게와 깊이를 짐작해볼 뿐, 아는 척하지는 않는다. 오지랖 같은 조언을 늘어놓지도, 우울한 사람이라며 손절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기를 속으로 기도하며, 내 이야기를 먼저 늘어놓는다. 탐사에 난항을 겪었던 내 마음 아주 깊은 이야기. 그러면 사람들은 “어? 너 나랑 마음이 닮았구나.”라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은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이다. 내 마음을 거울처럼 보여줘서, 누군가가 몰랐던 자신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면, 나는 숨 가쁘게 스쿠버다이빙을 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서랍 속에 그 외로운 기록을 고이 담을 것이다. 혹시 언제든 이 글을 발견하게 될 마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 “명상이 종교랑 비슷한 건가?” ]

‘마음수련법’이라는 책을 놓고 고모와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힘들 때 해본 방법 중에 제일 좋았던 건 명상이야.” 나는 고모에게 명상을 하면서 경험한 변화를 설명했다. “그럼, 명상이 종교랑 비슷한 건가?”라는 고모의 질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뜸을 들었다. “음... 공통점은 있지.” 정신 수양, 자신과의 대화, 내면의 치유, 영적 성장, 힐링, 마음 탐구, 자아 발견... 어떤 단어가 적절할까. 여러 가지 표현들이 떠올랐지만 경솔한 단어를 썼다가는 사이비 교주 같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과 입원, 상담 및 약물 치료, 명상(참선), 기도, 글쓰기, 그림 그리기, 산책, 영화 감상, 책 읽기, 종교 이론 공부, 여행. 내가 정신 건강을 위해 했던 수많은 시도들은 사실 단 하나의 이유였다. 마음의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살기 위해. 마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실체를 직면해야 한다. 외부적인 사건들과 연이은 슬럼프를 계기로 나의 깊은 곳, 곪은 곳, 썩은 곳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는데, 결국은 그런 시간들이 치유와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 현재의 사람과 과거의 마음 ]

예민한 이웃이 아파트 주민 에티켓을 주변 이웃들에게 엄격하게 적용시켜, 불특정 다수를 앞뒤에서 비난했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이웃은 근처에도 오지 않은 강아지를 가까이 오지 말라며, 입마개를 하라며 무안을 주고 갔다. 어떤 이웃은 무리 중 유독 한 사람에게만 잘해주고, 다른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해 서열을 나눴다. 어떤 이웃은 인사치레를 못 들은 척하고, 짐이 무거워도 도움받기를 거절했다. 어떤 이웃은 논쟁거리가 생기면 갑론을박 시시비비 따지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가장 답답한 것은 이런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이상하게 마음을 쓰는 나 자신이다. 나는 그 이유를 과거의 내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야자 시간에 친구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작은 소리에도 짜증을 냈던 내가 기억났다. 강아지 에티켓을 어겨 단지에서 소문이 나 욕을 먹을까 봐 미리 걱정했던 기억이 났다.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강박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멀리하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낯을 많이 가려 같은 학교 사람들과도 왕래하기를 꺼렸던 기억이 났다. 업무 중에 문제가 생기면 잘잘못을 따져 상대를 몰아세웠던 내가 기억났다. 이웃은 못난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 불편한 마음도 버릴 수 있다면 ]

프로 불편러: 매사에 예민하고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해서 논쟁을 부추기는 유난스러운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


유튜브 살찐두부 채널에 ‘강아지 산책 3시간 최후’라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약간의 불편한 마음에 댓글을 보니 우려했던 반응들이 보인다. “비만인 노견을 억지로 3시간을 산책시켰냐. 헥헥대다가 숨 넘어가겠다. 발톱을 왜 그렇게 깎았냐.” 그러자 “3시간 중에 실제로 걸은 시간은 10분 정도이며, 집에서 미숙한 실력으로 발톱을 깎아 길어 보이는 것”이라는 해명 댓글이 올라왔다. 유튜브에는 견주를 몰상식한 강아지 학대범으로 몰아가는 댓글들이 많다. 검색만 해도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 속에서 누리꾼들이 자신의 지식을 맹신하며 잣대로 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식의 중심에 서있을 법한 강형욱 훈련사 조차도 사실은 그런 날 선 갑론을박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가 전파하는 훈련법이 표준에 가까운 것은 맞지만, 칼 같은 잣대를 갖다 대며 견주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은 누구라도 불편할 일이다. 어쩌다 누군가의 마음은 이렇게까지 예민해지고 누군가의 입은 이렇게까지 거칠어졌을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많은 마음을 쌓고 부딪힌다.


[ 문제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

누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주실까요? 아니면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할까요?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

만일 누군가 가족이 좀 더 가까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뿅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할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실까요?

- 영화 [ 에반 올마이티 ] 중에서 -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을 불행으로 내몰았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경제적인 위기는 단지 하늘이 우리 가족을 시험하기 위해 내린 숙제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10년이 넘게 서로를 미워하느라 엉뚱한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아버지는 IMF로 인한 실직과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폐업은 이후에는, 작은 소일거리에 도전하지 않으셨다. 다시 실패해서 가족들 앞에서 작아지고 싶지 않다는 위축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지 근로소득을 벌지 않을 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행복을 기도하는 것은 분명했다. 어머니는 회사 일이나 집안일이나 뭐든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고의로 가족들을 부양하지 않는다고 생각에 속상한 마음을 미운 말로 쏟아내고는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마음먹은 딸들은, 죽을 둥 살 둥 학업에 몰입하는 와중에 어머니의 말을 고스란히 주워 먹었다. 일을 쉬면 나쁜 사람, 아버지는 나쁜 사람, 아버지로 인해 힘든 엄마, 우리는 불행한 가족, 비난받아 마땅한 아버지. 그 세뇌의 끝은 가족 간의 멸시였다. 만약 그때 단 한 사람이라도 의미 없는 비난을 멈췄다면, 우리 가족의 위기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다.


[ 아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

아빠! 근로소득이 뚝 끊겨보니 살 맛 나지 않는 요즘이야. 내가 어렵다는 말을 꺼낼 때면 아빠는 백만 원씩 척척 꺼내 주고는 했지. 지금은 내 인생 최대의 위기이자 가장 혹독한 성장의 시간이야. 그런데 정말 감사한 점은, 이렇게 바닥으로 꼬꾸라졌을 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는 거야. 어리석었던 내가 바보같이 미워했던 사람들이지. 아빠라고 왜 근로 소득을 벌고 싶지 않았겠어. 엄마와의 불화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해. 그리고 어린 나는 엄마의 편을 드는 것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켰네. 아빠가 사회, 경제 활동을 멈춘 그때 우리가 그저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넸다면 아빠가 다시 일어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빠 입장이 돼봐야 이런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 돈이 다인 줄 알았던 나를 용서해. 그렇지만 앞으로는 돈 많이 벌어서 아빠 호강시켜드리고 싶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일어날 거고, 다시 내 자리를 찾을 거야. 비록 따뜻한 말 한마디 안 했던 가족들이지만, 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 알아줬으면 해. 아빠 림프암 치료할 때, 나도 많이 울었어. 나이 드니까 정말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네. 미워했던 마음을 다 지운 날에는, 모든 걸 용서하는 날에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남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가족이야.


[ 고생이 많았던 아름다운 엄마 ]

엄마 여전히 곱지만, 젊었을 때는 더 고왔지. 눈을 보면 엄마의 선량한 마음이 보여. 엄마의 주름에서 무거웠던 책임감도 느껴져. 어떻게 저렇게까지 헌신적일 수 있을까, 엄마를 볼 때면 신기한 생각이 들어. 나는 맨날 공부한다는 핑계로 일한다는 핑계로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고. 엄마는 그냥 묵묵히 듣고. 왜 그렇게까지 내가 모질었는지 몰라. 조울증 계기로 내가 내 마음을 다시 돌아보고, 언행을 조심하게 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엄마도 혹시 힘든 마음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내려놓고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어려운 마음이 있다면 솔직하게 내게 털어놔줄 수 있을까. 나의 성공에도 실패에도 엄마는 늘 겸손했고 침묵했지. 자랑하러 다니지 않고 부담 주지도 않고 나를 다그치지도 않고, 늘 그냥 기다려줬지. 나는 그런 엄마의 침묵을 좋아하면서도, ‘왜 엄마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날 사랑하지 않는가 봐.’ 생각한 날도 많았어. 어리석었지, 그냥 내가 먼저 표현하면 될 거를.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엄마 꼭 50년은 더 살아야 해. 내가 더 잘되고 더 행복하고 더 열심히 사는 거 꼭 지켜봐 줘. 올해 은퇴하면 가족 여행도 자주 가자.



[ 어쨌든 마음 얘기를 하려고 한다 ]

"마음을 외면하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 인스타그램 @limjuhye_0610 -


나의 첫 책 [ 휴직 백수와 아파트 갉아먹는 불독 ]은 결국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언제나 우리를 작동하는 마음, 때로는 우리를 행복에 겨워 춤추게 하는 마음, 순수한 사랑에 열이 나는 마음, 때로는 우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마음, 때로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마음, 때로는 우리를 짓누르고 괴롭히는 마음. 나는 늘 파도처럼 일렁이는 마음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표현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되어 서툴다. 어쨌든 마음은 내 인생 최대의 관심사이자 화두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바깥세상에서는 마음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가지 않는다. 마음을 얘기한다는 게 부끄럽고 약한 일일까?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그냥 소라게처럼 숨어서 어색하게 눈치를 보는 것뿐이다. 나는 제일 먼저 벌거벗은 내 마음을 쏟아낼 것이다. 혹시 마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일기장에, 댓글에, 친구에게, 이웃에게, 하늘에게, 브런치에, 반려견에게, 전문의에게, 어디든 좋다. 곪아 터지는 것보다는 털어놓는 게 가볍지 않나.


내게는 성경 같은 책, 너덜너덜할 때까지 읽을 책, 쉽고 실용적이다.


[ 어렵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다 ]

인간의 내적 갈등과 양면성을 풍부한 비유와 섬세한 묘사로 풀어쓴 헤르만 헤세와의 작품은 내게 너무 어려웠다. [ 데미안 ]을 읽을 때는 만연체와 번역투 때문인지, 난독증 때문인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고생을 반복했다. 아마 어떤 종교나  예술은 똑똑한 지식인이나 감각이 뛰어난 아티스트, 부유한 특권층만을 위해 행해졌을지도 모른다. 반면, 많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야하는 콘텐츠 영역이 있다. '내면 치유' 관련하여, 루이스 헤이의 책이 독보적인 이유는 그녀의 표현력과 전달력 덕분이다. 그녀는 영적인 실용주의자로, 문체가 간결하고 표현이 정확해 중요한 내용을 쉽고 빠르게 전달한다. '마음 이야기' 어렵게  필요가 없다. 어렵다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없다. 그것은 상처받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의 응급처치가 필요한 사람들, 무언가에 집중할 에너지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 어려운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해서 큰돈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을 비롯한 모두를 다독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화자로서, 더 소탈하고 친근한 말투를 쓰기 위해 여러 번 퇴고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단언컨대,  책은 아주 쉬운 책이다.


[ “굳이 왜 글을 쓰려고 그래?” ]

나의 인스타 감성글이 tmi라며 동생은 놀렸다. 브런치에 글을 쓰느라 힘들다고 하니, 힘들면 뭐하러 쓰냐고 묻는다. 내 글에서 마음도, 힘도, 가능성도 못 느끼는 것 같다. 이번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상금과 출판의 기회가 있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다. 그러게 말이다. 알아주는 사람도 읽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왜 힘들게 글을 쓸까. 실체가 없이 둥둥 떠다니는 마음을 가만히 써 내려가면, 그나마 비슷한 언어로 규정되고 정리가 된다. 난폭하고 유별난 마음이라 해도 일단 단어로 풀어놓으면,   선명하게 인지하게 된다. 문제가 분명해지고 감정과 분리가 되면, 한 발자국 떨어져서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 나를 휘둘렀던 마음을 멀찍이 놓고 바라보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그 마음을 떨쳐내게 된다. 물론 쉽지 않은 큰 덩어리도 있다. 몇 년을 말로, 글로, 그림으로 풀어내도 빠지지 않는 썩은 사랑니 같은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낱장으로 꺼내서 쉬운 언어로 풀어쓰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몰랐던 나를 알게 되고,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고, 고수하던 내 고집과 입장과 기준을 무너뜨릴 수 있다. 마음이 통째로 뭉쳐서 썩는 일을 방지할  있다. 얼마 전에는  글을 읽고 몰랐던 자신의 마음이 꿈틀거렸다는 독자의 희망찬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마음 이야기를 바쁘게 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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