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고양이가 콧물을 찔찔 흘리며 헤롱헤롱 걷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다 슈퍼 안에 있는 주인 일지 모를 남자 분을 발견했다. “혹시 떠돌이 고양이면 제가 데려가도 되나요?” 알고 보니 그 분은 반려동물 입양을 주선하시는 분이셨는데, 고양이가 독감이 심해 열을 식히는 중이라고, 며칠 내로 죽을 것 같아 입양은 곤란하다고 하신다. 대신 다른 동물을 알아봐 주실 수 있다고 하셨고, 그게 뚜비의 입양으로 이어졌다. 처음 사진으로 본 뚜비는 무뚝뚝하고 잠만 잘 것 같은 인상이었다. 프렌치 불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조금은 충동적으로 입양을 결정했다. 그리고 처음 데려온 날부터 심상치 않은 기싸움이 시작됐다. 뚜비는 생각보다 크고 무거워서 준비한 켄넬에 겨우 들어갔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공격적으로 짖어댔고 잠깐 들렸던 본가 할머니 방에 오줌을 쌌다. 우리 집에 데려오니 순식간에 거실에 오줌을 누고 물건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가만 놔두면 소파고 테이블이고 다 부술 기세였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TV프로에 자주 등장하는 ‘나쁜 개’를 내가 우리 집에 들인 건가, 싶어서 머리가 띵했다. 갓 리모델링이 끝난 소중한 내 집을 이 폭군이 갉아먹게 둘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삼일 정도는 뚜비를 화장실에 끈으로 묶어뒀다.
[ 울타리 주문, 공간 분리의 시작 ]
하루 종일 뚜비를 목줄로 묶어 놓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공들인 인테리어를 유지하고 싶었고 뚜비는 물어뜯고 파괴하고 더럽힐 공간이 필요했다. 결국 내가 우리 집의 절반을 포기했고, 서로 분리된 경계와 각자의 영역을 갖기로 했다. 본격적인 공간 분리를 시작했고, 게스트룸과 거실 화장실을 뚜비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울타리를 설치했다. 소품이 그다지 없던 게스트룸이었지만 침대와 카펫이 영 신경 쓰였다. 언제든지 뚜비가 똥, 오줌을 쌀 수 있었고, 실제로 싸기도 했다. 배변판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지만, 20%의 확률로 그냥 내키면 카펫에 오줌을 싸고는 했다. 이 때문에 정말 많이 화를 냈지만, 그런 바디랭귀지는 뚜비에게 공포감과 공격성만 심어줄 뿐이었다. 단 1%라도 배변 실수를 하면 침대와 카펫은 유지가 안 되는 걸 인정했다. 뚜비에게 적절한 환경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매트리스는 당근에 무료 나눔을 하고, 카펫은 버렸다. 속이 후련했다. 이제 아기 강아지가 배변 실수를 해도 화내지 않아도 됐다. 애초에 패브릭에 배변을 싸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욕심일 뿐이었다. “미안해, 뚜비야. 배변판에 싸고, 실수 가끔 해도 돼!” 그 뒤로 한 달 넘게 배변판을 자주 갈아주고, 배변판 사용 후 보상을 철저히 해주니, 뚜비의 배변 실수는 0%에 수렴하게 됐다.
[ 집 안 가득한 강아지의 온기 ]
사람의 체온이 36~37도 정도인 반면, 강아지의 체온은 38.5~39.3도 정도가 보통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뚜비를 품에 안으면 따뜻한 느낌이든다. 잠을 자다 막 깼을 때 꼬순내와 함께 올라오는 온기는 조금 더 따끈하다. 나를 제외한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던 다소 적막했던 방 3개 짜리 넓은 집. 사람이 두려워서 휴직을 했지만 다시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던 내게, 뚜비는 그런 따뜻함이었다.반대로 뚜비도 내가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한다. 산책 중에는 일부러 벤치에 올라가서 내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쓰다듬어 달라고 몸을 비비고는 한다. 이 강아지에게도 차가운 내 손이 따뜻하게 느껴질까.
[ 나를 살리러 온 천사, 뚜비 ]
어느 날 새벽, 뚜비가 유난히 시끄럽게 짖어댔다. 평소에 웬만해서는 잘 짖는 뚜비가, 어지간해서 잘 안깨는 주인을 깨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조용히 해! 조용히 해!" 잠결에 최대한 힘을 줘서 소리쳤는데, 뚜비는 멈추지 않았다. 이상해서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플라스틱이 타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이상해서 킁킁거리다가 핸드폰 유무선 충전기를 봤는데, 열이 심하게 나서 전기장판과 함께 녹아 서로 눌러붙고 있었다. 너무 놀래서 전기장판과 충전기 코드를 뽑고 찬물을 부었다. 중국산 충전기에 물 묻은 폰을 충전시키면서 이상이 생긴 모양이다.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날 새벽은 너무 잠이 와 창문을 열어놓고 다시 잤는데, 다음 날 생각해보니, 뚜비가 아니었으면 큰 불이 났을 거 란 생각이 들었다. 뚜비가 나를 지켜주기 위해, 우리의 인연이 닿은 걸까 싶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뚜비를 지키기 위해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 공격성이 사라질 때까지 불편 주기 ]
사실 입양하고 초반에는 뚜비가 경계심에 짖고, 내 손발 심지어 얼굴을 물어뜯고, 발톱으로 나를 할퀴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같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심할 때는 맴매도 해봤지만, 서로 간의 긴장감만 높이질 뿐 역효과만 났다. 그 때 강형욱 훈련사님의 영상들을 보고 블로킹과 목줄 제어를 따라해 봤다. 뚜비가 도를 넘는 공격성을 보이면, 나는 보폭을 크고 빠르게 이동하며 뚜비의 공간을 빼앗아, 서열을 확인시켜줬다. 그러자 깨갱 하더니 어느순간부터는 물지 않고, 물더라도 장난으로 엄청 살살 문다. 산책 나가서 뚜비가 돌발행동을 할 때 목줄을 위로 당겨 목이 살짝 졸리는 불편감을 주니, 행동을 즉시 자제했다. 그 상태로 '앉아'라는 명령을 내리면 모든 행동을 멈추고 앉았다. 큰소리나 체벌 없이, 공손한 태도를 갖출 때까지 불편을 주며 인내로 기다려 주는 것.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각인시켜 충성을 이끄는 것. 역시 강형욱 솔루션! 강 훈련사님은 전생에 정말 강아지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