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뚜비를 입양한 직후에 많은 사람들이 파양을 권했다. 유별나게 내 손발을 무는 걸로 보아, 끔찍한 물림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이를 예방하고자 서열 교육과 목줄 착용을 철저하게 했고, 어린이와는 거리를 유지했다. 덕분인지 적응 기간이 끝나자 무는 버릇은 사라졌다. 다음으로 게스트룸을 포함한 뚜비의 공간이 엉망진창 되는 게 두 번째 반대 이유였다. 뚜비는 에어컨 배관, 콘센트, 문턱, 데코타일 가리지 않고 물어뜯었다. 그 부분은 내가 양보를 했고, 뚜비의 영역은 적당한 파손과 비위생을 허용하기로 하며, 최소한의 유지보수만 하고 있다. 오히려 마당 있는 주택에서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뚜비가 답답할 것을 배려한 것이다. 세 번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낼 뚜비가 외로울 것이며, 반대로 내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뚜비는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빠른 시일 내에 경제력을 갖춰 둘째 입양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아기가 생기면 더 철저하게 공간을 분리해, 서로 피해가 없도록 할 것이다. 네 번째는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의 상실감이 꽤 충격적이라는 우려였다. 내 삶의 유일한 낙을 뚜비라고 여겨, 집착적으로 의존하지는 말아야겠다. 내가 항상 건강한 심신을 유지해서, 8년이든 12년이든 언제든지 보내줄 때가 오면 웃으며 보내줄 수 있도록 혼자 있어도 행복한 내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여러 이유에 깊이 공감했기에 나는 두배, 세배로 노력해서 우리의 인연을 지켰다. 뚜비가 여기서도 정착을 못해 훈련을 못 받으면 똥오줌도 가리지 못할 것이고, 파양을 반복할수록 인간에 대한 불신과 공격성만 커질 것이다. 엉뚱한 곳에 가서 부적응하거나 방치되는 것보다는, 어설퍼도 내가 키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충동적인 입양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이기적인 파양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고 다짐했고,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을 오랫동안 느끼게 됐다. 많은 반대와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지킨 반려견이기에, 더 애착이 가기도 한다.
[ "인생은 마라톤이야, 뚜비." ]
첫 한 달 동안 뚜비와의 산책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나는 체력이 약했고 뚜비는 체급과 활동량이 큰 편이었다. 뚜비는 항상 말을 안 듣고 이상한 곳으로 가려고 하고, 친구를 보면 과하게 흥분해서, 물림 사고가 일어날까 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또 뚜비가 과도하게 전속력으로 달리고 숨넘어갈 듯이 헥헥거리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좀 해보라며,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돌이켜보니 당시에는 산책 빈도와 시간이 불규칙적이어서, 뚜비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자유를 만끽하느라 초흥분 상태였던 것 같다. 하루 1회, 오후 3시와 같이 빈도와 시간을 고정하니, 전체적인 흥분도가 좀 가라앉았다. 기도가 짧고 석회질이 벌써 끼기 시작한 뚜비는 과호흡을 예방하기 위한 페이스 조절이 절실했다. 그래서인지 뚜비는 자주 벤치에 올라가 기다렸다가, 내가 앉으면 쓰다듬어달라고 몸을 내게 비비곤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같이 멍 때리는 시간이 중요했다. 뚜비는 숨을 고르고 나는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수 있어서, 우리의 페이스 조절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비교적 덥지도 춥지도 않은 타이밍에 산책을 나갔다. 한여름에는 자정, 겨울에는 세시 정도가 알맞다. 더운 날에는 산책량을 줄이고 자주 쉬고 많은 물을 먹였다. 겨울에는 따뜻한 옷을 입혔다. 비 오는 날에는 계단실과 처마 밑을 뺑뺑 돌았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친 후, 지금은 뚜비와의 산책을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 무리의 습격을 받은 뚜비 ]
뚜비는 도시에 흔치 않은 불독 혈통으로, 단두종 특유의 생김새와 단모종 특유의 냄새가 다른 강아지들과 다르다. 일종의 소수견인 뚜비를 보면 웬만한 강아지들은 뒷걸음질 쳐 주인 뒤로 숨거나, 으르렁대며 이빨을 보였다. 오늘도 그런 이질감과 배타심에서 비롯되는 공격과 물림 사고를 예방하고자, 목줄을 꼭 붙잡고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말티즈 같은 작은 강아지들이 15마리 정도 모여 어울리는 풀밭 밖에서, 뚜비는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들중 한 마리가 뚜비를 힐끗 보더니 눈치를 보다가 짖기 시작하고, 모든 개들이 다 같이 짖는다. 순식간에 행동대장이 달려와 뚜비의 얼굴을 물었고, 나는 바로 뚜비를 품에 안았다. 혼란한 상황 속에 누군가 “무는 걸 못 봤어요. 큰 개 트라우마 때문에 그래요, 미안해요~.” 거듭 사과를 하셨다. 나는 혼비백산이 된 뚜비를 품에 안고 현장을 빠르게 뛰쳐나왔다. 17개월 견생 뚜비가 이때까지 소수견으로 받은 푸대접과 차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 소외감과 갈등이 뚜비에게는 다시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을 보면 극도로 흥분하고 가끔은 공격적여지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추측을 해봤다. 불독 전국 카페에서 하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해서, 같은 혈통의 친구를 만들어줘야겠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둘째를 빨리 입양해야겠다.
[ 오후 세시의 개모임에 동참하다 ]
아무도 없는 평상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는 뚜비
뚜비가 나무 밑에서 유박비료를 먹은 줄 알았으나, 고양이 사료였다.
지난 번에 작은 개 때의 습격을 받았던 '장미공원'의 귀퉁이지만, 뚜비는 산책만 나오면 친구들을 보러 저기에 가려고 했다. 오늘은 다행히 텃세가 심한 친구가 없었다. 오후 세시부터 한마리씩 모이더니 들판은 금새 각양각색의 강아지로 가득찼다. '달콤'은 조용하다가 별안간 짖어댔고, '두부'는 과묵하고 온순했다. '보틀'은 낯을 가렸고, '덧찌'는 식탐이 많았다. '몽'이는 자기보다 큰 개를 경계해 짖어댔고, '꼬삐'는 백내장이 올 정도로 노쇠했지만 식탐이 많았다.
처음에는 10분, 15분 적응하려고 노력하던 것이, 오늘은 한시간이 됐다. 뚜비가 친구를 사귀는 동안, 나도 친구(어르신)를 사겼다. 처음에 몇 마리가 짖어댔지만, 뚜비가 선비처럼 동요하지 않으니, 작은 개들이 경계심을 조금 풀고 텃세를 멈췄다. 사람들도 뚜비가 양반이라며 성품을 칭찬했다.이대로만 하면 오후 세시의 개모임 고정 멤버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하다.
[ 진짜 사나이들의 모임은 따로 있었다 ]
작은 개의 견주들과 큰 개의 견주들 사이에는 특유의 경계심이 있다. 큰 개들이 과묵하고 순한 경우가 많은데, 작은 개들이 지레 겁을 먹고 짖어대거나 급작스럽게 공격을 할 때가 있다. 그런 대치 상황을 반복하다보면 견주들도 자연히 트라우마가 남고, 그룹이 나뉘어져서 서로 접촉 빈도를 줄이게 된다. 세시의 개모임 같은 경우에는 기존 멤버들이 소형견들이다보니, 아무래도 대형견이 갑자기 참여하거나 오래 머무는데는 이질감이 있었다. 뚜비도 사실 겉돌거나 거리를 두고 지켜보거나 내 품에 안겨 있는 시간이 많았다. 오히려 큰 개들과는 잘 어울려 노는 뚜비인데,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런 와중에 동네 산책 친구에게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게 됐다. 큰 개들의 모임은 '생태공원' 들판에서 토요일 세시마다 열린다는 것이다. 진짜 사나이들의 모임은 따로 있었구나! 어쩌면 뚜비도 환대라는 걸, 무리 생활이라는 걸 해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설레였다.
가족 사진 2022. 11. 15. (화)
[ 단정하기 힘든 가족의 형태 ]
영화 [ 어느 가족 ]에는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인 엉터리 가족이 나온다. 그들은 할머니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생활하지만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피도 섞이지 않고, 경제력도 부족하고, 번듯한 학교나 직장에 다니지는 않지만, 애틋한 감정을 느끼며 서로를 의지한다. 사회는 그러한 공존을 범죄로 해석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고 그들을 뿔뿔이 흩어놓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 가족보다 가족 같은 사람들을 보며, 가족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그제야 들었다.
뚜비와의 공생을 시작했던 때가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물림 사고와 짧은 수명, 대소변 등의 뒤치다꺼리를 이유로 뚜비를 파양 하라고 했었다. 당시에는 자존심과 죄책감에 동거를 이어나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뚜비는 내게 이미 가족이었다. 혼자였던 내게 뚜비가 주는 생명의 온기와 엉뚱한 사건, 사고는 언어를 초월한 원동력이었다. 나는 그런 힐링의 시간을 밑거름으로 성장해서, 또 다른 사랑과 또 다른 가족을 찾을 것이다. 뚜비는 그런 가족이었고, 그런 가족이며, 그런 가족일 것이다.
[ 뚜비가 꽃피운 일상 대화 ]
대단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그 점이 보통은 편리하지만 가끔은 정 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소속감을 느끼고 좋은 정보를 공유하려고 들어갔던 아파트 단톡방은 다소 살벌한 얘기가 오갔다. 부동산 가두리 매매에 대한 비난, 관리사무소에 대한 불만, 베란다에서 흡연하거나 이불 터는 사람에 대한 하소연. 사람 사이에 분란을 못 견뎌하는 나는 얼마 못가 카톡방을 조용히 나왔다. 층간 소음 문제로 위아래 집과 얘기를 나눈 걸 제외하면 이웃들과 교류가 크게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엘리베이터와 신호등에서 단지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네 주민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됐다. 그건 명백히 뚜비 덕분이다. 쭈글쭈글 억울하게 생긴 얼굴에 비해 눈은 초롱초롱 인형 같았고, 용맹하면서도 바보 같은 외모에 사람들은 넋을 놓았다. 할머니들은 돼지냐고 물었고, "고놈 참 많이 먹게 생겼다."라고 놀렸다. (뚜비는 얼굴이 크고 목이 굵어서 비만으로 오해를 많이 받지만 사실 몸은 말랐다.) 아줌마들은 몇 살이냐고 물어보며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무서워도 했지만 신기해서 쫓아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과는 여러 정보를 나누며 더 빨리 친해졌다. 뚜비는 처음 본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꽃피우게 하는 그런 힘이 강했다. 그래서 나는 연고도 없는 동네 사람들과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뚜비는 화명동 사람들과 나를 이어 주기 위해 찾아온 천사일지도 모른다.
[ 우리는 서로의 알고리즘 ]
뚜비가 여름부터 피부병이 심해져 탈모를 앓았다. 불독 카페에 들어가니 견주들이 좋다는 소독약이며 목욕법이며 치료법을 소개해주는데, 머리가 아파서 읽다가 말았다. 그저 뚜비 방을 청소하고 목욕 빈도를 낮추고 간식을 줄이라는 의사의 말만 따랐다. 목욕을 안 시키니 냄새는 났지만, 건조함이 줄어 탈모가 호전됐다. 그런데 어느 날은 산책하면서 보니, 가려움에 긁은 배에 피딱지가 보인다. “아이고...”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큰돈은 없지만, 무슨 조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런데 복순이라는 강아지와 뚜비가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를 하게 됐다. 복순이 견주님이 뚜비가 참 귀엽다며, 불독은 피부병 관리를 잘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알고 보니 애견 관리과 입양, 봉사 쪽 일을 하고 계신 전문가셨다. 우리는 3m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로 불독에 대한 여러 얘기를 나눴다. 주로 내가 질문하고 그분이 답을 하는 식이었다. 순한 샴푸, 약욕과 스파, 오일 같은 것을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사업자 가격에 제품을 2만 원 정도 싸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귀여운 불독을 키우는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정보와 호의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받아들일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주변 사람에게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최고의 알고리즘은 '이웃'일 것이다. (나는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꼭 중독적이고 불량한 것만을 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선한 영향력이 되기도 한다.
[ 우리 동네, 화명동이 정겹다 ]
사람들은 왜 연고도 없는 화명동을 택했냐고 물었다. 현실적으로 해운대, 동래, 수영에 아파트는 내겐
너무 비쌌다. 부동산 이론적으로, 내 개인 정서적으로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은 썩 내키지가 않았다. 나는 아직 비교적 저평가 상태인 서부산에서 젊은 인구가 많은 곳이 화명동이라고 판단했다. 어떤 방향이든 조금만 걸으면 공원이 나오고, 강아지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언제든 상가에는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과 말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아파트에서는 아랫집 찌개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다. 커피와 마카롱을 파는 가게, 강아지 옷과 간식을 파는 가게, 만두와 닭강정 또는 타코야끼를 파는 골목, 구석구석 볼거리 살 거리도 많다. 산책 중에 만난 사람들은 뚜비를 보고는 말을 갈어왔다. 뚜비가 귀여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용기를 내서 뚜비를 안고 얼굴을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보게 해 준다. 강아지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뚜비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뚜비를 정말 좋아한다. 뚜비도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렇게 얕든 스치든 이야기가 많아지면 나는 살아있다고 느낀다. 나는 그런 사람 사는 풍경과 냄새와 소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많은 화명동이 매일 더 좋아진다.
[ 뚜비에게 자유를 준다면 ]
도심에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기준에서는 뚜비의 행동을 제지할 수밖에 없다. 밤늦게는 짖지 못하게 혼을 내야 하며, 기껏 하루 한 시간 하는 산책 시간에는 도망칠까 봐 목줄을 꼭 잡아야 하고, 아토피 걱정에 사료 외에는 간식을 잘 줄 수 없다. 그런데 만약 뚜비가 가출을 감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떠돌이 개 서너 마리와 신나게 고깃집에서 동냥을 하고 공원을 뛰어다니지 않을까. 길에 떨어진 닭뼈와 초콜릿도 와구와구 먹을 것이다. 목을 옥죄는 줄이 없다는 그 자체로도 기쁠 것이다. 중성화를 했지만 여자친구를 사귈지 모를 일이다. 가끔 패싸움도 할 것이다.
반면 내게 자유가 주어진다면 난 무엇을 할까. 경제적, 시간적, 관계적, 마음적 제약이 없다면. 그 어떤 소속도 의무도 없다면.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슨 행동을 할까. 돌이켜보면 나는 거의 평생을 남이 시키는 일을 했고, 그 나이대의 해야 할 일을 했고, 확률적으로 유리할 것 같은 일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들이 자발적이거나 재밌지는 않았고, 그저 성취와 인정에 길들여졌던 것 같다. 스스로의 결핍과 욕망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뿐이었다. 그러니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면 오히려 불편한 것이었다. 원인 모를 불행함을 느낀다고 말할 때면 사람들은 “너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불행해? 넌 행복해야 해.”라고 했고, 나는 남들과 다른 내가 이상한 거라고 여겼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관계와 커리어에서 쓴 실패를 맛보고 조울증이 재발을 해 휴직을 하고 시작된 방황은, 오히려 내게 해답 같은 시간들이었다. 깊은 마음이 원하는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실현할 가치를 그제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 공기 인형 ]
[ 허기를 채우려 발악하는 사람들 ]
어제 밤 늦게 영화 [ 공기 인형 ]을 봤다. 인간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공기 인형 노조미에게 어느 날 마음이 생겨버렸다. 그녀는 순수한 마음으로 인간을 대하지만, 주변 사람의 민낯을 보고는 큰 상처를 입고 세상을 등진다. 아이 같은 노조미가 변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세상은 원래 난폭한걸까? 순수한 마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무엇부터 잘못된 걸까? 나를 이용했던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얼룩졌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토할 것처럼 속이 안좋았다. 그런 세상이지만 순수하게 살겠다는 의지는 형용하기 힘든 외로움이었다. 나는 매일 희망을 노래하는 글을 쓰는데, 사실은 부질없고 허망한 기분이 들어 뉴스를 시청하는 것 조차 힘들어한다. 말을 하고 싶지도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도, 그런 날도 있다는 걸 인정하며, 세상이 싫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뚜비 방 앞의 쇠창살 앞에 앉아서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엎드린 뚜비의 뱃살을 주물럭거렸다. 역시 나보다 1도 따뜻하다. 뚜비의 배에서 방구가 부루루룩 나왔다. 갑자기 웃음이 터지면서 속이 괜찮아졌다. 어쩌면 그냥 온기와 뱃살과 방구가 필요한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뚜비 덕에 위기를 모면하고 자고 일어나니 상쾌해졌다.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을 뚜비를 위해 음악 방송을 틀고 외출하기로 했다. 강아지 채널을 뚜비 방에 상영해주면 어떨까. 높게 달아야 물어뜯진 않겠지.
[ 2022.11.24.(수) 뚜비 집수리 ]
가수 션이 국가유공자의 후손을 찾아가서 집을 수리하고 지어주는 일을 한다고 유퀴즈에서 말하는 걸 보고 힘이 났다. 그래서 미뤄왔던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뚜비가 뜯어먹은 데코타일 아래로 시멘트 가루가 날려서 페인트로 덮었다. 벼르다가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했다. 옷이나 머리에 페인트가 묻지도 않았다. 뚜비 화장실 청소랑 빨래도 했다. 건조기에 먼지망에 뚜비털이 가득 찼다. 내친김에 욕실에 뚜비 묶어 놨는데 킁킁 댄다고 수염에 페인트가 묻었다. 페인트를 핥아먹지만 않았음 좋겠는데 안보는 사이 그러고도 남을 애긴 하다. 환기 시켜놓고 산책 오랫동안 했다. 그래도 완성된 거 긁거나 훼손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환기는 2~3일 더 시켜야 할 것 같다. 요며칠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예쁜 페인트가 조금 남아서 캔버스 몇개 바탕칠을 했다. 뭘 그릴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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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불독 뚜비가 주는 영감, 행복, 교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입니다.
불독은 평소 성격이 온순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공격성이 극대화 됩니다.
세척 완료한 쪼리를 제물로 받쳤습니다.
고구마를 사랑합니다.
눈앞에 먹을 게 보이면 공손해집니다.
플라스틱병과 싸웁니다.
계란판과 싸웁니다.
김 봉지와 싸웁니다.
빵을 좋아합니다. 아주 가끔 조금 줍니다.
양배추를 싫어합니다.
뚜비의 초상화입니다. 금방이라도 커피나무 방망이를 휘두를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뚜비의 방은 항상 너저분합니다. 주인 과실도 있고요.
뚜비가 수도꼭지를 튼 적이 있어 묶어놨습니다. 울타리 너머 데코타일을 뚜비가 뜯어서 그냥 마저 철거했습니다.
뚜비와 주인의 교감을 표현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은 통하고 있어요.
입질을 주먹으로 견뎌봤습니다. 대부분 일부러 살살 뭅니다. 눈은 왜 뒤집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얼굴 구멍이 택도 없이 작은 후드티, 입히려면 반항이 심해
리폼해서 강제로 입히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제 바지로 뚜비 숄을 만들어줬습니다
입마개 반대 시위입니다. 일명 '개 화남'
씌우다가 공격성이 100배 증가해서 포기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뚜비 상상화입니다.
길에서 본 시바견 우정 출현입니다.
우주를 나는 뚜비입니다. 언제든 저와 함께입니다.
스티치를 닮은 뚜비입니다. 우리 둘 같은 그림입니다.
핑크가 안 받던 뚜비, 유독 못생겨 보이는 건 비밀입니다. 그래서인지 저 조끼는 뚜비가 갈기갈기 찢어 소멸시켰습니다.
배변 시위하는 뚜비, 배변판 적응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책상 위에 올라가는 스릴을 즐기는 뚜비, 채식하는 싫어하는 뚜비입니다.
샤워를 하다 코에 물이 들어가서 삐졌습니다. 건조해서 탈모가 심해질까 봐 샤워를 안 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탈모는 사라지고 비듬이 생겼습니다. 청국장 냄새도 납니다.
벽에 몸통 긁기를 많이 해서 하네스는 진작 끊어졌습니다. 목줄도 여러 개 물어뜯어 부쉈습니다. 목이 조일까 봐 목줄을 여러 버전으로 리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