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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마음 Oct 25. 2022

21년 9월, 내 아파트를 계약했다.

어린 시절 사진


[ “반드시 내 집을 갖고 싶어.” ]

태어날 때부터 살았던 낡은 3층 주택은 겨울에는 코끝이 시렸고, 여름에는 바퀴벌레가 많이 나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사촌동생, 고모, 아빠, 엄마, 언니, 동생까지 어릴 때는 식구가 많은 게 즐거웠다. 방마다 날마다 이야기 꽃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아파트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나 확고했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친척 집에 놀러 가면 꼭 이틀을 자고 왔다. “여기가 내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 전단지에 평면도를 보고 또 보며, 방을 꾸미는 상상을 수 없이 했다. 내 방과 내 집을, 한 사람의 독립과 성공을 끊임없이 그렸다. 그런 간절한 바람 덕분이었을까, 평범한 월급쟁이였던 나는 31살부터 인생의 큰 변곡점을 맞이한다.


[ 사람들은 어떻게 집을 사나.]

28살 신입사원의 월급 실수령액은 크지 않았다. 전월세, 관리비, 외식비, 의류 구매, 자동차 유지비 등 각종 지출과 맞먹었다. 적금은커녕 신용카드 대금이 모자라 일부 금액을 리볼빙 하기도 했다. 이대로는 평생 1억을 모으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아파트는 억이 몇 개는 붙어야 산다는데.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처럼 한 달 벌어 한 달 쓰는 굴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잘못됐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야.” 집을 사기에는 ‘현금’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남아도는 ‘시간’을 활용해 ‘정보’를 최대한 모아보기로 했다. 주체적으로 정보의 우위에 서고 자기만의 투자 기준이 확고해져야 현명한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카더라’ 통신을 믿기보다는, 내가 확실히 아는 지식을 활용해 실거주성과 투자성을 모두 잡고 싶었다.


[ 유튜브로 먼저 얕고 넓게 ]

먼저, 유튜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짠순이가 한 달에 천만 원씩 모으는 이야기, 필요 없는 지출 줄이기 노하우, 상업주의와 소비 중독에 관한 이야기, 평범한 월급쟁이가 부자로 은퇴한 이야기, 부자가 되기 위한 사람들의 독후 감상, 내 집 마련과 대출에 대한 고민 상담,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자본적 가치, 빌라나 주택의 감가상각, 낡은 주택 리모델링, 돈과 자본의 속성에 대한 다큐, 대출을 일으킨 사람들의 후일담, 꾸준히 잘 나가는 부동산의 특징, 영끌하지 말라는 정부의 경고성 발표, 부동산에 대한 심리전, 부동산 투기로 돈 번 사람들 이야기, 재개발만 바라며 몸테크 하는 젊은이들 사연, 청약 당첨 노하우, 부동산 장세 분석과 예측, 특정 부동산에 대한 가치 평가 등. 편협하고 왜곡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정보의 바다를 열심히 헤엄쳤다.


[ “제발 이런 투자만은 피하세요!” ]

절대 하면 안 될 투자의 공통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첫 번째는 허영심이 깃든  충동적인 투자다. 큰돈을 버는 상상을 하며 널 뛰는 마음으로 내리는 결정에는 맹점이 있다. 환상을 깨고 최악의 경우를 냉정하게 계산해야 한다. 두 번째는 권유나 외부 정보에 의존한 투자다. 일명 ‘카더라' 통신으로, 누군가의 권유로 하는 투자는 특정 세력의 작전에 휘말리기 쉽다. 초반에는 짭짤한 수익을 내다가, 갑자기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세 번째는 모르는 분야의 분석 없는 투자다. 이해가 낮은 분야에서는 불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내가 부동산 재테크를 하는 이유는 실물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데이터의 신뢰도가 높으며, 세부 조건을 꼼꼼하게 비교할 수 있고, 전공인 건축 지식을 활용할 수 있어서다. 극단적인 예로 코인은 실체가 없으며 데이터 신뢰도가 떨어지고 따져볼 조건이 없고, 출처 모를 정보 외에는 공부하거나 분석할만한 부분이 없다. 결론적으로 요행을 바라지 않고, 정석대로 공부한 뒤, 자기 기준과 확신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Q. 나는 어떤 집단에 속할까?

  1. 자본주의의 원리와 본질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집단

  2. 외부정보에 의존해 유행 따라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집단

  3. 자본주의적 지식을 바탕으로 장기계획을 실천하는 집단

  4. 정보 비대칭을 이용해 선동하여 이익을 챙기는 집단


A. 나는 철저한 학습을 통해 1에서 3으로 이동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기초를 튼튼하게 다졌다. 4에게 당하는 2가 되지 않기 위해, 요행을 바라면 안 되며 공부는 필수다.


서재와 중고서점

[ 부동산 관련 학습자료 추천 ]

식재료를 보관하는 법, 유통기한을 읽는 법, 칼질하는 법, 가스불을 다루는 법을 모르고 복잡한 레시피를 따라 한다면 맛은 물론 안전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기초 지식과 거시적인 관점이 바탕이 돼야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한 나머지 홍수처럼 떠다니는 신뢰도 낮은 정보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SNS상에는 가짜 뉴스가 많고, 심지어 유명인이 합세한 사기극도 끊이지 않는다. 주식, 코인, 금테크, 펀드, 부동산, 어떤 분야든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 전에 생각하는 힘을 먼저 길러야 한다. 극단적인 하락론자의 말만 들을 필요도 없고, 극단적인 상승론자의 말만 들을 필요도 없다. 다 들어보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부동산 기본서 추천


요행만 바라다가 무너졌던 과거를 교훈 삼아, 뇌를 바쁘게 움직였다. 문외한이었던 나를 급성장시켜준 양질의 콘텐츠를 몇 가지 소개한다. 첫 번째로 EBS 다큐 ‘자본주의’를 추천한다. 대출의 원리, 금융상품의 비밀, 마케팅의 비밀, 자본주의의 위기, 노후준비와 같은 기초 이론을 단기간에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안다고 착각했던 내용들이 다시 정리되는 효과가 있다. 현재 유튜브에서 시청 가능하며 책도 있다. 두 번째는 책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다. 평범한 직장인이 종잣돈을 모으고 주택 마련과 노후 준비를 해가는 과정을 쉽게 풀어썼다. ‘월급쟁이 부자들 tv’라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서민들의 1주택 고민상담을 자세히 해준다. “신부가 5천만 원, 신랑이 1억을 모아놨는데, 둘의 월 수입은 600만 원, 월 지출은 300만 원인데, 어떤 아파트를 사할까요?” 와 같은 구체적인 상담도 흥미로웠다. 세 번째는 영화 ‘빅쇼트’와 ‘국가부도의 날’이다. 대공황이나 IMF와 비상사태에 금리와 집값이 격변하는 원리를 실감할 수 있다. 아파트 시장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네 번째는 책 ‘부동산 상승신호 하락신호’다. 굵직한 위기를 겪을지라도 결국 시장의 사이클은 반복된다. 침체기, 회복 준비기, 회복기, 상승기, 확산기, 급등기, 쇠퇴기. 미시 하락과 거시 상승이 반복됨을 알면 일시적인 뉴스에 동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외에는 여러분의 관심사에 따라 ‘대한민국 청약지도’, ‘대한민국 재건축 재개발 지도’, ‘공인중개사 이론서’ 등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한편, '국토개발계획' 등의 국가 공문서는 신뢰도 높은 최신 정보를 제공한다.


[ 괴소문을 대하는 중립적인 태도 ]

“금리가 오르고 대출 규제가 엄격해질 것이다.” “대구에 공급 물량이 쏟아질 것이다.” “판교 아파트 값이 폭등할 것이다.” 부동산을 둘러싼 난폭한 언론 보도는 쏟아지고, 실제로 군중심리를 움직여 가격 변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해관계 때문인지 또는 기자의 무지 때문인지, 보도 원칙을 지키지 않는 자극적인 타이틀도 많다. 혼란과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은 결정을 서두르고, 매매가 폭등 예고에 패닉 바잉까지 이뤄진다. 머리가 아프다며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침체기, 회복 준비기, 회복기, 상승기, 확산기, 급등기, 쇠퇴기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뉴스 하나에 일희일비를 반복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출 그 자체를 죄악시 여기고, 내 집 마련을 투기라고 단정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아파트를 투기 수단으로만 취급해, 신뢰도가 떨어지는 정보를 맹신하고 무리하게 많은 돈을 끌어서 투자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정보 편식에 의한 왜곡되고 편향된 관점이다. 극단적인 상승론이나 하락론에 배팅을 하기보다는, 부동산의 반복해온 사이클을 이해하고, 다양한 변수를 감안하며 양질의 물건을 고르고, 장기적인 재무 계획을 세워야 한다.


[ 실전 부동산 스터디 모집 ]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책 50권을 읽어라.”라는 말을 믿고, 기초 이론부터 최신 트렌드까지 다양한 부동산 관련 서적을 사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나 독학에서 한계를 느껴, 21년 7월에는 전문적인 이론 공부와 실전 임장을 병행하기 위한 부동산 스터디를 모집했다. 3 주택자, 법인 임대 사업자, 금융권 종사자, 경매 유경험자 등 부동산 쪽에서 나름 박학다식한 분들이 모이니, 상대적으로 초짜인 나는 많이 위축됐다. 초반에는 괜한 일을 벌였나 후회도 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저 경험도 현금도 없는 만큼 뭐라도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운전도 도맡아 하고 지도도 출력하고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인사도 열심히 다녔다. 우리는 일요일 오전에 모여서 단지 5개 정도를 임장 하며, 정보와 생각을 나눴다. 부산에서는 해운대구, 수영구, 동래구가 투자성이 좋았다. 남구는 실거주성이나 학군까지 좋은 편이다. 임장을 다니며 동네와 동네, 단지와 단지를 비교하며 모의투자를 하니, 조금씩 나만의 아파트 평가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다.


파이낸셜 뉴스 기사, 동아일보 기사,그래프 출처: 경실련

아파트 가격은 미시적인 예측이 불가능하다. 혼돈의 시기에 쏟아지는 뉴스를 맹신해 상승론자가 될 필요도, 하락론자가 될 필요도 없다. 미시적인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그 타격을 직격으로 맞지 않기 위해, 정보에 귀기울이고 매매에 신중할 필요는 있다. 화폐 가치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방면, 양질의 부동산은 거시 상승을 계속하기에, 부자들은 부동산으로 자산을 증식한다.


[ 한 건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

"집값 좀 오르지 않았어? 재미 좀 봤어?", "미쳤다, 집 값 폭락하는 거 아니야? 너 괜히 산 거 아니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와 하락에 대한 걱정은 번갈아가면서 매월 듣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파트 시세를 코인 시세처럼 자주 확인하지 않아서, 별로 대답할 거리가 없다. "단타도 아니고, 실거주 목적인데 뭐." 나는 폭등이나 폭락에 대한 여론에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 크고 작은 가격 변화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 미시 하락까지 모두 일희일비하면 부동산 보유는 정신 고문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이론 공부와 실전 임장을 바탕으로 구축한 내 투자 가치관에 입각해 이 집이 저평가라는 확신을 했고, 최선의 대출 조건을 맞춰 실거주를 목적으로 매수를 결정을 했기에, 어떤 후회도 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간다해도 이보다 나은 선택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언젠가는 사야했고, 최적의 타이밍이란 건 없고, 나는 그 시를 극적으로 앞당겼을 뿐이다. 내게 부동산은 사고 팔기를 반복하지 않는 장기투자 개념이라, 15년 후에 재개발이나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다. 그래서 입지를 노후도 보다 더 중요하게 보기도 했다.


부산의 A동네 B아파트 C평형 매매가가 1억 내렸다고 카톡방이 술렁술렁한다. 정책 혼란으로 실거래가 안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그런 1건의 매매가 군중심리를 들쑤시고, 심지어는 헐값에 내놓은 이웃에 분통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한 두건의 극단적인 사례를 강조해서, “부동산 활황과 투기, 이제는 종말이다.”와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기도 하지만, 실거래가가 내려간다고 시세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IMF, 대공황, 코로나, 전쟁과 같은 특수 상황 또는 정권 교체나 기준 금리 변동과 같은 돌발 변수로 사람들은 급매를 선택한다. 한편 시기와 상관 없는 개인적인 사우의 급매도 있다. 집값 폭등을 기대하고 영끌을 했다가 견디지 못한 사람들, 개인 사업이 부도가 난 사람들, 자영업이 어려워졌거나 실직을 당한 사람들, 가족의 치료비가 필요한 사람들, 코인이나 주식으로 큰 손해를 본 사람들, 사기에 휘말린 사람들. 그런 이웃이 대출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급하게 내놓는다면, 극단적인 가격 하락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매년, 매월 급매는 존재하지만 혼란한 시기에는 유독 자극적인 기사거리로 이용되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특히 실거주가 목적인 집이라면 가격을 끊임없이 확인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파는 시점의 가격이 중요한 것이니, 너무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다.


[ 대한민국 아파트의 자산 가치 ]

부동산은 구매 후 가격이 상승되는 ‘자본’으로 ‘지출’보다는 ‘자산 치환’에 가깝다. 여기에 대출이라는 제도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취득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집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으며 물가는 꾸준히 상승하기에 아파트 값은 미시 하락, 거시 상승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양파 값이 아무리 내린다고 한들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양질의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가격이 상승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파트 강대국으로, 편리한 주거 공간을 구축하는 데에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대형 건설사들이 오랜 세월 고집해 온 디자인이 다소 획일적이어서, 어디를 가나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그래서 몇 가지 조건이 붙으면서 아파트 서열과 가격이 매겨진다. 역세권 등 입지가 좋은,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평형이 넓고 구조가 잘빠진, 일조권이나 조망권이 좋은, 주변 학군이나 상권이 많은, 교통과 인프라가 풍부한 곳이 인기다. 또한 양질의 업무 단지, 상업 시설, 주거 시설이 서로 인접해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가 선호도가 높다. 신혼부부는 방 3개, 화장실 2개 정도, 초등학교를 낀 대단지를 선호한다. 반면 주택이나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불명확하며 호불호가 나뉘는 주거 형태이다. 세대수가 작으면 유지 관리에 어려움이 있고, 매도 시 큰 차익을 장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 단지 시세 차익 때문에 사나요 ]

종잣돈과 주택담보대출을 합쳐서 아파트를 사는 것은 매우 어렵고 중대한 결정이다. 구옥의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경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의 상환이 버거워지는 경우, 오랜 하락장이나 역전세난(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떨어지는 현상)을 맞는 경우, 과중한 세금 부담을 지는 경우, 계약이 잘못되는 경우, 치명적인 건축 하자가 발생한 경우, 급매나 패닉 바잉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 무서운 실패 사례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집 값이 폭락할 거라는 정부의 경고도 항상 있어왔다. 그만큼 내 집 마련에 신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1주택은 주거 안전성은 물론, 주택연금과 시세차익을 보장해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에 의존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차상위계층에게는 임대주택이라는 제도가 꼭 필요하지만, 청장년층은 노력으로 자가를 소유하고 부를 축적해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


[ “그럴 거면 주식, 코인을 하지.” ]

집을 산다고 말했을 때 실제로 들어본 반응이다. 집은 방석처럼 깔고 앉은 자산이라 벼락부자가 된 기분을 느끼기 어렵다. 애초에 부동산은 소액으로 일확천금을 얻는 주식이나 코인과 다르고, 내 집 마련은 평생에 걸친 장기 투자에 가깝다. 매월 90만 원씩 30년을 갚아나가는 식으로 상환 일정이 길기에,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계획을 짜고 지출을 통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생활비를 펑펑 쓰고 남는 돈으로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주거비를 제하고 남는 돈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월급을 패션이나 여행, 자동차에 쏟아붓는 욜로족에게는 그저 고리타분하고 불가능한 일일수 있다. 또 순식간에 수억을 벌어들인 주식, 비트코인 계의 신흥 부자에게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을 느낀 사람들이 원하는 ‘수익성’에는 못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피 같은 젊은 날의 돈을 순간적인 쾌락에 탕진하거나, 타인이 결정하는 운에 맡기기는 싫었다. 삶의 뿌리가 되는 공간, 그 자체의 소중함을 계속 상기하며 요행을 기대하지 않고 꾸준히 움직일 뿐이다. 드라마 같은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 투자성과 실거주성의 타협 ]

집을 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수중에 현금은 없어 답답했다. 고민을 털어놓으니 스터디 사람들이 몇 가지 대안을 추천해줬다. 첫 번째는 재개발 선진입으로 낡은 구옥을 싸게 사서 재건축, 재개발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 및 정치 관계자들만 주시하며, 출처 모를 정보를 맹신하고 장담할 수 없는 결과를 기도하는 것은, 철저하게 주도권을 뺏긴 게임이다. 어쩌면 단열이나 수질 같은 실거주성도 포기하며 긴 시간 발을 동동 구를지도 모른다. 투자비가 저렴할 뿐, 최악의 경우 투자성과 실거주성을 모두 놓칠 수 있다. 두 번째는 2년 정도 목돈을 모으며 꾸준히 청약을 넣는 것이다. 그런데 청약은 좀 괜찮은 단지면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이었고, 별로인 곳은 실거주 의무 등 발목 잡는 조건이 많이 붙었다. 당첨운도 참을성도 없는 내게는 너무 막연했다. 세 번째는 영끌해서 B급지, 2군 브랜드, 관리 잘된 구축을 저평가 급매로 알아보는 것이다. 당시 부산에서 A급지, 1군 브랜드, 신축이라면 소형 평수라도 6억은 넘었기에 나름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을 실천하기로 결심하고는 혼자 매일 임장을 다녔다.


[ 무엇을, 언제, 얼마에 살 것인가 ]

자산적 가치를 떠나서, 나는 ‘집’이라는 공간을 평생 동안 간절히 원했다. 전월세를 전전하면서 남의 공간을 빌려 쓰는 게 불편했고, 오직 나를 위한 안식처를 마련하고 싶었다. 나는 명품 가방을 사거나, 해외여행을 가거나, 비싼 차를 모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집을 갖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내할 의지가 있었다. 다만 무엇을, 언제, 얼마에 사느냐가 어려운 결정이었다. 대출 규제, 기준 금리, 공급 물량, 장세 등의 외부 상황뿐만 아니라, 개별 물건의 가격에도 주목해야 했다. 매일 슈퍼에 들려 양파 가격이 100원 올랐나, 50원 내렸나 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양파의 저평가 타이밍을 가장 먼저 알아챌 것이다. 집은 더욱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음료수를 챙겨, 참새처럼 드나들고 명함을 나눴다. 그 와중에 스터디에 있던 은행권 지인이 대출 금리가 오르고 한도가 줄어들고 정책이 불리해질 거라고 귀띔을 해줬다. 나는 서둘러 대출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 새벽 임장, 밤 임장, 랜선 임장 ]

화명동에는 연고가 없었는데 유동인구와 매매 수요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는 호기심에 임장을 나가봤다. 잘 나가던 부산 1호선 라인도 곳곳에 공동화 현상이 생겨 인구가 줄고 있는데, 여기라고 다를까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드라이브였다. 사실 서부산에 이렇게 큰 주거 단지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덕천까지 젊은 인구가 북적거리는 게 좋았다. 김해와 양산의 출퇴근 인구가 전세(매매) 수요를 꾸준히 받치고 있기에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도 않겠다. 도로와 대중교통이 잘 돼있고 교육시설, 편의시설, 병원과 상가도 많아 실거주성이 양호했다. 장기적으로는 에코델타시티 준공이나 지하철 연장과 같은 호재로, 서부산에 일자리나 인구가 증가한다면 매매 수요도 높아질 수 있겠다. 부동산 몇 군데를 돌아서 3억 전후로 소형 평수를 찾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30만 원대 코트 한 벌을 살 때보다 1000배는 더 꼼꼼하게 따져 3억 초반대 집을 발견했다. 방 3개, 화장실 2개인 내실 있는 2군 브랜드의 소형 평수 아파트로, 평면 구조가 잘 빠졌고, 2004년에 준공했지만 관리가 잘돼 구옥처럼 보이진 않았다. 초역세권은 아니었지만 지하철까지 평지로 걸어 다닐만했다. 1600세대로 규모가 있는 편인 데다, 바로 옆에 5200세대 대단지 아파트와 붙어 있어, 인프라적인 낙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깔끔한 단지 계획, 주차장 규모, 침수 염려 없는 토목 구조, 상가와의 동선이 마음에 들었다. 조망이 멋진 남향 대신, 단지 앞 동을 바라보는 동향 구조인 게 아주 조금 아쉬웠지만 이만하면 훌륭하다.


[ 미리 따질수록 후회는 없다 ]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이 될 수 있는 첫 자가 매수, 철저하게 따지고 비교하고 신중하게 결정하자.


- 입지: 역세권, 지하철 연장 계획, 출퇴근 거리, 접근성

- 인프라: 상가, 병원, 도로 및 대중교통, 일자리, 공원

- 수요: 유동인구, 젊은 인구, 출퇴근 인구, 전세수요 등

- 성능: 누수, 단열, 층간소음, 수압, 장애인 동선(BF)

- 단지 계획: 보차 분리, 입면 디자인, 주차 편의

- 안전: 토목 구조(침수 대비), 내진 설계, 소방 설비

- 서비스: 놀이터, 헬스장, 맘스테이션, 치안, 보안

- 기타: 브랜드, 지대, 세대수, 평면 구조, 일조, 조망, 향

- 연식, 노후도, 재개발, 재건축 가능성, 주변 개발 계획

- 학군: 단지 유치원, 초등학교 배정, 주변 사교육 시설


낮 임장과는 다른 밤 임장의 분위기


[ 철저하게 내 기준으로 고른 집 ]

두 달 동안 갈고닦은 부동산 이론과 실전 경험으로 결정한 최선의 집이었다. 꼭두새벽에 한 번, 퇴근길에 한 번, 하루에 두 번씩 2주간 발도장을 찍었다. 실거주하는 주민들과 얘기도 나눠봤다. 나는 저평가를 확신했지만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까 봐, 가족들에게는 고민 중인 것처럼 연기하며 반응을 떠봤다.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언니는 A급지 1군 브랜드가 아니면 가격 상승이 미미하다 했고, 동생은 목돈이 없는데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과거에 조울증 증상으로 내가 부동산에 욕심을 낸 적이 있어서 부모님은 조증 재발을 의심했고, 돈을 더 모아 신혼집을 사라며 안타까워하셨다. 친척들은 조심스러워하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조력자는 없었기에, 이번에는 목돈이 어느 정도 있는 것처럼 연기하며 형식적인 설득을 했다. 그리고 집을 산 경험이 많은 직장 선배들과 스터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저평가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내 기준에 주변 매매 경험자들의 동의를 더해, 확신을 가지고 계약을 준비했다. 계약이 성사된 21년 9월 초에는 극도의 부담감과 긴장감이 무너지면서 열이 39도까지 오르는 몸살을 앓았다.


[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줘라 ]

부동산 거래는 양질의 인맥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 비즈니스다. 그런데 가끔 시장에서 흥정하듯이, 매매가를 후려치는 사람들이 있다. 계약 당일에 “1000만 원을 깎아주지 않으면 거래를 못한다.”며 완강하게 버티기도 한다. 순식간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신뢰가 깨져 계약이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억지로 계약이 성사돼도 잔금일까지 모두가 살얼음판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중개인은 다시는 매수자에게 좋은 정보를 주지 않기로 결심할 것이다. 애초에 매수자는 손해라고 생각하는 가격을 억지로 깎기보다, 이득이라고 생각되는 다른 거래를 찾는 편이 좋다. 수천만 원, 수억 원의 차익을 예측하고 움직이는 전문가들은 고작 몇 백만 원 깎느라, 거래와 관계를 망치지 않는다. 나 역시 현재의 저평가와 미래의 가격 상승을 확신했기에 매매가를 깎는데 목숨 걸기보다는, 매수인이나 중개인을 배려하면서 세부 조건을 타협했다. 웃으면서 관계자 분들에게 명함을 먼저 드리고 과일 선물을 했다. 또 매도인이 목돈이 급해 보여 계약금을 빨리 넉넉하게 붙여드렸다. 그리고 매도인 가족의 일정을 감안해 입주를 넉 달 미루는데 동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배려하니 거래 내내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중개인께서 벽지, 장판이 낡아 새로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500만 원을 깎자고 먼저 얘기를 꺼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 철거할 부분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현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내게는 반가운 협상이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다짜고짜 처음부터 500만 원을 깎아 달라했다면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살다 보면 상대에게 손해를 입혀야 내게 이익이 된다는 착각이 들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 친절과 감사를 잊기 쉽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상대가 원하는 걸 먼저 주는 것은 꽤 효과적인 관계 요령이다.


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 상환 스케줄

[ 3억 1500만 원을 어떻게 구하지 ]

※ 글쓴이는 무리한 대출로 이후 1년 간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절대 영끌을 따라 하지 마세요.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 안정적인 상환 계획을 수립하세요. ※

계약할 때쯤에 나는 고작 몇 백만 원 정도의 계약금 밖에 없었다. 여러 은행에서 상담을 받아보니, 회사 주거래 은행의 금리나 한도가 가장 유리했다. 전셋집을 얻을 때 받았던 신용대출이 2960만 원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추가로 집단 신용대출 2140만 원을 받았다. 전세 원룸을 퇴거하면 보증금 4000만 원이 생길 예정이었다. 그리고 보금자리론으로 2억 2000만 원을 일찍이 신청했는데, 계약은 21년 9월에 했으나 잔금과 입주가 22년 1월이라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청약 담보 대출과 보험 담보 대출도 1000만 원 정도 받았다. 사내 대출로 2000만 원을 여러 번 신청했지만 번번이 탈락했고, 부모님께 1500만 원 정도를 급하게 빌렸다. 그러고도 잔금일 새벽까지 돈이 모자라 발을 동동 굴렸다. 결국 모바일 비상금 대출을 급하게 여러 건 받았다. 무리한 영 끌이었음을 인정한다. 석 달 넘게 속이 바짝 타들어갔고, 정말 기적적으로 잔금을 겨우 맞췄다. 매수액의 70%를 주택담보 대출하는 것 외에, 무리한 대출은 심신에 해롭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3000만 원이라도 모으고 시작할 걸 후회도 잠시 했지만, 3년 이상 앞 당긴 내 집 마련이었기에, 극한의 고통은 조용히 혼자 견뎠다.


[ 대출은 하되 영끌은 하지 말자 ]

물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은행에 넣어둔 돈의 가치는 점점 하락한다. 1억은 20년 전에는 집을 살 정도로 큰돈이었을지 모르나 20년 후에는 그저 월세 보증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출이라는 제도를 똑똑히 알고 이용해야 한다. '5억을 모아서 집을 사야지'라고 생각하고, 차곡차곡 현금을 모으면, 다 모은 시점에 집 값은 배가 넘게 뛸 것이다. 한편 부부가 2억을 모은 상태에서, 주택을 담보로 3억을 대출내서, 5억짜리 집을 사고, 매월 90만 원씩 30년을 착실하게 값는다면 어떨까. 수입과 지출 계획만 잘 통제한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재테크다.

다만 영끌은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주택가의 70% 이내에서, 합산 연봉의 10배 이내에서, 최악의 변수를 감안하여 여유를 둔 대출 실행을 하길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화자는 주택가 70%의 보금자리론 외에 다른 많은 대출을 실행시키는 바람에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신용대출 금리가 7%까지 폭등해 이자만 한 달에 몇만 원이 올랐고, 휴직을 계기로 일부 원금 상환을 하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주변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한시적으로 돈을 빌리고, 앱으로 소액 대출을 알아보고, 카드 결제일을 미루고, 카드값이 밀려 리볼빙을 하느라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연체에 대한 독촉 전화가 빗발치고, 자차를 비롯한 중고 물건을 팔기에 이른다. 다시 말하지만, 안전한 범위 내에서 건전한 대출만 영리하게 이용하자!


[ 잔금일 하루에 이뤄지는 많은 일 ]

유튜브에서 셀프 등기를 하면 법무사 선임비를 백만 원 이상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서류를 혼자 떼러 다녔다. 그런데 그건 완전히 위험한 이야기였다. 서류들이 어렵고 복잡한 것은 물론이고, 잔금일 당일에 여러 가지 행위가 동시에 진행되기에, 타이밍을 놓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주택금융공사에서 사전에 보금자리론 허가를 내주면, 은행에서 법무사를 섭외하고, 법무사가 며칠간 각종 서류를 준비한다. 잔금일 당일 하루 안에 법무사는 매도인의 기존 근저당을 정리하고, 매수인의 보금자리론을 실행하고, 등기를 신청하고 잔금 송금을 확인해 계약 마무리까지 해야 한다. 이 과정을 매수인이 어설프게 하다가 타이밍이 어긋나면 매도인의 엉뚱한 담보를 뒤집어쓸 수 있고, 각종 사기 사건과 사고도 빈번하다고 한다. 이런 실태를 모르고 거의 모든 서류를 준비했던 나는, 처음에는 법무사 선임을 원치 않았었다. 그러나 식사도 거른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온 법무사님과 비하인드 스토리에 너무 놀랐고, 노고에 감사하다며 붕어빵 봉지를 내밀었다. 어쨌든 긴박했던 절차가 끝이 나고, 나는 황송한 마음으로 내 집으로 들어갔다.


 [ 내 원룸에 짐이 이렇게 많았나 ]

전세 보증금을 빨리 받아 두려고 원룸 퇴거일을 새 집 입주일보다 앞당겼다. 그 바람에 이틀 정도가 붕 떠서 이사를 두 번 할 뻔했는데, 다행히 매도인과 부동산에서 내 사정을 듣고는 이삿짐을 먼저 옮기는 것을 허락해줬다. 조그만 원룸에 무슨 짐이 많을까 했는데, 자차로 옮겨서는 끝이 안 날 것 같았다. 결국 삼촌 회사의 직원 한 분이 트럭으로 많은 짐을 같이 옮겨 주셨다. 그리고도 자차로 두세 번을 더 왕복을 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내 집에 내 짐이 찬 게 믿기지가 않고 행복했다. 수세미와 걸레를 들고 낡은 부엌과 욕실을 청소해주신 엄마, 아빠와 아파트 상가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그날은 마음이 넉넉하고 푸근했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시, 다시 새로운 난관이 열렸다. 어영부영 입주까지는 성공했지만 입주 공사는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다. 사실 돈도 친구도 없던 당시의 나는, 혼자 셀프 공사를 하려고 도안을 그려 왔었다. 패기가 넘치게 유튜브로 페인트 칠하는 방법도 갓 배운 상태였다. “일단 페인트와 붓을 사자.”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전쟁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 영화 ‘소공녀’와 집에 대한 생각 ]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청소 일을 하며 월세 방에 살지만 담배와 위스키는 포기할 수 없는 미소는, 물가가 오르자 셋방을 먼저 포기하고 옛 친구들의 집을 전전한다. 미소에게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공간이다. 그녀는 집에 대한 욕구나 애착이 없다. 삶의 민낯을 공유하는 불편을 겪더라도 자기 다운 모습으로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럼 내게 집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면. 낡은 집에 여럿이 살 때는 독립의 꿈. 아파트 매수를 준비했던 내게는 자산. 짐과 물건이 널부러 졌을 때는 창고. 빈 곳을 채워나갈 때는 덧칠하는 감성. 힘든 시간을 보낼 당시에는 안식처. 누군가에게는 적과의 동침.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흔적. 누군가에게는 욕망의 나열. 누군가에게는 폭력의 인내. 누군가에게는 빌려 쓴 사치. 어쨌든 거대한 뿌리의 공간. 삶이 전개되는 무대.


[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된 여유 ]

대중교통을 타기 어려웠던 동네, 모텔이 둘러싼 블록, 3중 주차로 새벽에도 차를 빼주러 나가던 낡은 빌라, 겨울에는 온수가 미지근했던 원룸, 소중한 자취방이었지만, 항상 상쾌하지는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창문을 열면 아저씨들의 담배 냄새와 욕설이 난무했다.

왜 여태 돈을 모아두지 못하고 허투루 썼을까? 이렇게 벌어서 평생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까? 돈을 얼마나 더 벌어야 할까? 위험하더라도 잘 모르는 주식이나 코인에 손을 벌려야 하나? 부업이라도 해야 하나?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하고 있는데, 나는 누구랑 어디서 살아야 하나?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감정은 뭘까? 내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집을 사기 전 나는 온통 과거에 대한 후회와 현재에 대한 불만족,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하루를 반복했다. 집도 결혼도 돈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정처 없이 떠도는 기분이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간절해 빨리 독립을 하긴 했지만, 내 집 마련은 또 다른 용기와 지혜가 필요했기에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실제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자, 그 꿈은 불과 몇 달 만에 거짓말처럼 이뤄졌다. 밥을 먹지 않아도 든든한 느낌, 쾌적한 공간이 주는 상쾌함, 누군가의 영향력이 없는 힐링의 공간, 나의 취향이 가득한 직접 꾸민 인테리어, 집이 주는 안정감에 나는 더 이상 결혼이나 돈 문제로 초조해하지도 않게 됐다. 결혼은 인연이 닿고 때가 되면 할 것이고, 돈은 지금 이대로 벌면서 절약만 하면 충분하니 조급해할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다음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다음 행보. 내가 꾸릴 가정. 남편과 아이를 위한 공간. 다음에 살게 될 집. 답 없는 걱정이 아닌 행복한 고민.

1995년 가족 사진과 2022년 가족 사진

10년 뒤 우리 가족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지향해야할 친환경 도시, 스마트 시티

[ 나의 다음 정착지는 어디일까 ]

유튜브에서 EBS 다큐를 보는데, 독일 프라이부르크와 같은 친환경 도시, 핀란드 칼라사타마와 같은 스마트 시티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도시 지하를 관통하는 쓰레기 처리 시설이나 재난 방지 토목 구조, 지상으로 다니는 전기차와 전철, 생활화된 공공 자전거, 태양열 패시브 하우스, 건물 입면 녹화,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물들의 조화에 감탄이 나왔다. 지속 가능한 도시와 다양한 주거 형태는 시민 대수가 바라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한 때 건축 디자인을 공부했던 학생으로서, 도시의 획일적인 개발을 우려했던 졸업생으로서, 건축 실무에 5년을 종사한 회사원으로서, 아름다운 도시 부산의 시민으로서 많은 생각이 스쳤다. 자산 가치와 편의성 때문에 아파트를 첫 집으로 택했지만, 그러한 주거 형태가 집에 대한 유일한 모범 답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평생을 이곳에서 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주 상상에 빠진다. 도시와 조금 떨어진 녹색이 가득한 근교를, 강아지 뚜비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을, 상추와 바질이 자라는 마당을, 아이가 쿵쿵 뛸 수 있는 마루 바닥을, 가끔 쓰는 남편의 자율주행 차가 주차된 차고를, 직접 만든 나무 가구를, 손님이 자고 갈 수 있는 게스트룸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2층 집을. 나는 벌써 다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실현하지 못한 공간에 대한 꿈과 열정이 내 안에 가득 남아있는 것 같다.


유현준 건축가의 책 3종

[ 시즌2, 시즌3에 대한 설레발 ]

아파트 형태의 자산도 좋지만 건축을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서울이라는 도시와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표준이 되는 것이 안타깝다. 나는 건축학과 졸업작품으로, 부산 서동이라는 노후 도시를 블록 단위로 개발하는 설계안을 만들기도 했었다. 아파트라는 공간을 누리고 있는 요즘은, 근교의 전원주택이나 한옥마을, 마당이 있는 땅콩집, 쉐어하우스를 눈여겨 보고 있다. 현대인의 삶의 형태,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만큼 주거의 형태도 다양해질 때가 올 것이다. 재택근무와 디지털 노마드의 확산은 도심에 대한 집착과 구속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지금이야 강남과 아파트가 최선 또는 표준이라는 심리가 팽배하니, 부르는 게 가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도시를 숨막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후속작을 결정했다. 다소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예시는 아래와 같다.


1편: 휴직 백수와 아파트 갉아먹는 불독 (지금 읽고 계신 책)

2편: 주부 목수와 한옥 뜯어먹는 불독 (10년 내 출간될 후속작)

3편: 퇴직 백수와 세계 일주하는 불독(20년 내 출간될 후속작)


건축학과 졸업 작품 '부산 서동의 블록 단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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