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잖아. 그 선생님은 대학생이래. 이번 주에는 노란 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오셨는데, 얼마나 환했는지 해바라기 같았어. 선생님은 화장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예배 시간에 자꾸 뒤에 앉은 선생님을 쳐다봤어.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목소리가 낮고 느려. 그리고 자꾸 나랑 눈이 마주쳐. 오늘은 나한테 질문을 했는데 말이야. 내가 대답하는 동안 입가에 미소를 띠고 내 눈을 계속 봐주셨어. 물론 내 말에 이렇게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어서, 그 순간이 너무나 좋았지만 말이야. 선생님이 자꾸 나를 보니까, 나는 선생님을 볼 수가 없었어. 그래서 아쉽기도 해. 혹시 눈이 마주치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되더라고. ―
석관동에서 선생님이 사는 이문동까지 뛰어갔다. 선생님의 집은 이문동 시장 옆에 있었는데, 좁은 골목 안쪽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올해 여름성경학교 때였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선생님은 주일학교 선생님을 그만두신다고 했다.
대문은 집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컸다. 짙은 남색 문 위쪽은 꼬챙이 같은 것들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용기를 내 선생님하고 불렀다. 다시 크게 ***선생님하고 이름을 넣어 부른다. 끼익 소리와 함께 천천히 문이 열렸고 나이 든 여자분이 나오셨다. 그 뒤로 선생님이 보였다.
“엄마, 주일학교 우리 반 친구예요. ”
선생님은 말을 마치고 이내 웃는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얼른 방에 들어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선생님의 방은 마루를 지나 왼쪽으로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있었다.
“밖에 춥지? 뛰어온 거야? 얼굴이 빨갛다. 얼른 여기 앉아.”
방에 깔린 담요를 걷어내며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말한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편하게 앉아도 괜찮다며 웃었다. 담요를 무릎까지 끌어 덮었지만,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천천히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담요 한쪽을 끌어 나와 똑같이 무릎에 덮었다. 담요 아래 있던 따뜻한 온기가 나를 지나 선생님에게로 간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에는 책상과 작은 서랍장, 옷걸이가 전부였다. 특히 책상은 작은 방을 반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귤이 담긴 바구니를 내 옆에 내려놓으셨다.
“뭐 할까?” 선생님은 주위를 살피더니 벽에 있는 달력을 보며 말했다. 달력엔 하얀 눈에 쌓인 멋진 건물 사진이 있었다. “우리 학교 구경할래?” 날짜가 적힌 부분 아래에는 고려대학교라고 적혀있었다. 12월에서 시작해서 앞으로 달력을 한 장씩 넘기며, 선생님은 사진에 나오는 건물을 설명해 주었다. “여기 우리나라 맞아요? 다른 나라 건물 같아요.” 나의 말을 듣고 선생님은 웃으셨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음…….”선생님은 갑자기 생각이 났다며 작은 서랍장 안에서 프로스펙스 운동화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작고 다양한 모양의 성냥갑들이 있었다. “이거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거 아닌데, 너한테만 특별히 보여주는 거야. 봐봐. 선생님이 모으고 있는 건데, 귀엽지?” 이번에도 선생님은 성냥갑 하나하나를 들어 꼼꼼하게 설명한다. 나는 선생님의 눈을 바라본다. 선생님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 눈을 감으면 아직도 내가 그 방에 있는 것 같아. 선생님이 나에게 비밀을 말해준 거야. 그렇지? 나는 선생님과 특별한 사이가 된 거야. 내일은 선생님에게 편지를 쓸 거야. 나도 내 비밀을 말해야지. 이제는 선생님이 날 쳐다보면 나도 선생님 눈을 쳐다볼 거야. 있잖아. 너무 행복해서 잠이 오지 않아. ―
멀리서 선생님이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며칠째 쓰고 지우길 반복해서 완성한 편지였다. 나는 선생님과 둘만 있을 때 편지를 주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벌써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일부러 천천히 걸어갔다. 선생님은 걸어오는 나를 보고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선생님께 가까이 갔을 때, 나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카드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은 나에게도 카드를 주었다. 카드 그림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같은 캐릭터가 그려진 같은 종류의 카드였다. 선생님은 거기에 있는 우리를 한 명씩 안아주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끼운 채 선생님에게 안겼다. 선생님은 일이 있어 빨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버렸다. 옆에 있던 아이가 카드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다. 슬쩍 옆으로 가 카드 내용을 보았다. ‘ **아, 너희들을 만나서 선생님은 정말 즐겁고 행복했어. 앞으로도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렴. 선생님이 응원할게.’
나는 교회를 나오면서 편지와 카드를 휴지통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