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산

by 강아지똥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막 교문을 나선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후두둑’ 또 빗방울이 떨어진다. 순간 머릿속에서 ‘오빠도 우산이 없겠지’라는 말이 들려온다. 머릿속 말이 들리자마자 나는 집을 향해 뛰어간다. 학교 앞 문방구를 지날 때 ‘후두둑’ 내리던 비는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며 석관동 시장을 가로지른다. 갑자기 내린 비에 시장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사람들 사이로 좁은 틈이 보인다. 틈 사이를 아슬아슬 미끄러지며 통과한다.


어느새 내 발엔 롤러스케이트가 신겨져 있었다. 나는 속도감을 느끼며 달려 나간다. 속도는 계속 빨라져서 이제는 빗방울 사이를 통과한다. 신이 나서 달린다. 사거리 교차로 신호등이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뀐다. 나는 급하게 발을 앞뒤로 흔들었다. 내 발에서 벗겨진 롤러스케이트는 신나게 하늘로 날아갔다. 나는 신호등 앞에 간신히 멈춰 선다.


헐떡이는 숨. 머리카락을 따라 빗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물이 가득 찬 신발에서 ‘찌익찌익’ 소리가 났다. 슬며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빨간색 우산을 쓴 아이가 나를 흘낏거린다. 아이 옆에 커다란 우산을 쓴 여자가 아이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신호등 빨간 불빛을 흘끔거리며 다리를 움찔거렸다.


안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이 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다리가 있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계단은 오늘따라 더욱 미끄러웠다. 난간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한 계단씩 올라간다. 허리는 구부리고 몸은 난간에 가까이 붙인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서둘러 우산을 찾았다. 상태가 좋아 보이는 우산과 낡은 우산 두 개뿐이었다.


우산을 집어 들고 후다닥 몸을 돌린다. ‘이제 반환점을 돌았어’라는 머릿속 말이 들리자마자 나는 다시 힘이 솟았다. 그러나 철제 계단 앞에서, 아래를 보며 잠시 머뭇거린다.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 고민 없이 낡은 우산을 아래로 던졌다. 오빠에게 줄 우산을 옆구리에 끼운 채 최대한 손잡이를 부여잡고 내려온다. 계단이 몇 개 남았을 때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옆구리에서 우산이 빠져나간다. 당황한 나는 중심을 잃고 엉덩이로 피아노 치듯 계단을 내려온다.


벌떡 일어나 우산을 챙긴다. 혹시 오빠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불안했다. ‘빨리 가야 해’ 내 머릿속에 말이 들린다. 나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양손에 우산을 들고 달린다. 내 앞에 긴 트랙이 펼쳐졌고 나는 계주 선수가 된다. 두 개의 바톤을 힘차게 앞뒤로 휘저으며 학교를 향해 달려 나간다.


다행히 오빠는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 교문에서 오빠를 기다리며 낡은 우산을 폈다. 우산은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머릿속에서‘이번 주가 오전반이라서 다행이야’라는 말이 들렸다. 멀리 오빠가 보였다. 나는 달려가 우산을 주고 다시 교문 쪽으로 돌아왔다. 오빠는 친구와 함께 우산을 썼다. 나는 친구와 걸어가는 오빠 뒤를 멀찌감치 따라간다. 기분이 좋아서 자꾸 웃음이 난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가 나라면, 나에게 우산을 갖다줄까?’ 나는 얼른 목소리를 지우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keyword
이전 03화공중목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