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자격

by 새보꾸

꽤 오랫동안 일기를 써 왔다.


지금은 안 쓴 지가 오래됐는데

내가 일기를 쓴 다는 건 한마디로

'기분이 매우 안 좋다'거나

'정리가 필요할 정도로 생각이 복잡하다'는 뜻이었다.


말 못 할 고민이 활자로 옮겨질 때

비로소 무언가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한 글자도 쓰기 싫어지는 날에는

지난 일기를 들춰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낯 뜨거운 흑역사의 향연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언젠가부터 언젠가까지-

내 일기의 마지막 문장은 늘 한결같았다.


'날 좀 더 사랑해야겠다.'


지독한 완벽주의에 끊임없는

자기혐오에 빠졌던 나는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사이

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며

일기를 끝마치곤 했다.


(이것도 정말 나중에야 내가

저 문장을 반복했단 걸 알게 됐다.)




20년 가까이 된 나의 습관이라면 습관인

'일기 쓰기'를 서두에 길게 들먹인 이유가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

남편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에너지가 남다른 아이가 날 보고 따라오라는 듯

괴성(?)을 지르며 앞질러 기어가는 걸

따라 쫓아가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그 평범한 순간.


아이의 자지러지는 해맑은 웃음에

그만 긴장이 확 풀려 버렸고,

난데없이 흐느낄 정도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쌓이고 쌓이는 감정선도 없이

그냥 그 순간 아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벅찬 감정이 주체가 안 된 거였다.


'대체 저 아이는 왜 저렇게

사랑스러운 거지?'라는

주책없는 생각을 되뇌면서.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남편을 사랑할 때도

무조건적일 수는 없었고,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사랑도

'당연함'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것 같은데


아이를 향한 사랑은 뭐랄까,

존재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마저 깃들어서

그것만으로도 '벅참'이 완성되는 기분이랄까.


그러다 곧바로 못난 생각이 따라왔다.


나 자신조차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내가

누군가를 잘 사랑해 낼 수 있을까.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그만 스스로에게 물음표가 생겨 버린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려면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데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엄마로

한 사람을 사랑하며 키워낼 자격을

감히 가져도 되는 걸까,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 된 걸까.



아이를 키우면 나를 돌아보게 되는 날들이 참 많다.


이런 걸 보고 배우면 어떡하지?

나의 이런 점을 닮으면 어떡하지?


좀 더 잘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이미 미안하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까 봐 벌써 두렵다.


언젠가는 아이가 마냥 미운 짓을 할 때가 오겠지.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러니 좀 더 단단해져야겠지.

저 예쁜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이 문장을 써 본다.


'날 좀 더 사랑해야겠다.'



덧)

말도 없이 한 달이나 쉬어갔던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한 편 퉁쳐 볼까 생각도 하였으나...

아무래도 구차해질 것 같아 간단하게 말하자면,

허리 통증이 심해졌고 그 핑계로 깊은 사유를

잠시 멈추고 싶었습니다.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 상기했으니, 열심히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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