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 아이의 증세가 다시 도졌다. 무언가 쿵 내려앉았다. 재작년, 우리의 일상이 삐걱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 아이의 세상도 어딘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수가 없다, 고 했다. 불안함이 시도 때도 없이 그 아이의 몸을 잠식했고, 급기야 마르고 흰 팔에 가느다란 붉은 선을 새기고 말았다. 언니 말고 다른 사람의 ‘그런 흔적’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뻗은 손으로 상처를 보듬어주려 했는지, 보이지 않도록 상처를 가려버리려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숨이 턱 막혔다.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그것을 보았을 때 들었던 감정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보다 예민한 사람이 있다. 타고난 기질과 주변의 환경이 만든 결과물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안다. 우울과 불안은 한 몸이고, 물들기는 지극히 쉬울 뿐더러 쉽사리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팠다.
점심 밥상을 두고 받은 짤막한 메시지가 입속 밥알을 딱딱하게 굳혔다. 전처럼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서로에게 유리 같은 위안을 건넸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안은 쉽게 그 아이를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200km를 건너 내게도 와버린 듯했다. 끝없이 가라앉았고, 또 침식했다. 이럴 때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와 닿았다.
더 깊숙이 파고들지 않도록 애쓰는 것만이 전부였다. 고작 이렇게 끄적이기만 하는 것이 다였다.
네가 힘들지 않길 바란다.
그것조차 욕심이라면 할 말 없겠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숨 막히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면 너무 잔인한 세상이지 않을까. 당장이라도 다 버리고 세상을 등지고 싶은 나도 이렇게 하루하루 넘기며 살아간다. 어떻게 해서든,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너도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