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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pr 11. 2024

(단편소설) 국밥 한 그릇(完)

정신없는 곳에 와버렸다. 한 쪽에서는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고객이 물건의 값을 깎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애초에 나는 전통시장이 싫었다. 고기, 생선, 채소, 야채가 어우러 만드는 특유의 향, 시장을 빠르게 오고가는 배달원들의 땀 냄새, 생선 대가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시장 고양이들의 사냥의 눈매, 제일 싫었던 것은 정리되지 않은 더러운 거리와 내가 가야하는 길을 막고 선 천천히 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답답하고 지저분한 이 거리를 와버리고 만 것이다.      

--     

 여자친구와 거실에 누워 TV를 보는데, 우연히 전통시장 속 국밥집이 나왔다. 나는 애초에 국밥도, 전통시장도 좋아하지 않았기에 채널을 돌리려고 했지만, 여자친구는 TV속 국밥이 맛있어 보였는지 내게서 리모컨을 빼앗았다.      

 “오빠, 계속 보자 정겨워 보이잖아”     

 여자친구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받아 쳤다.     

 “저게 뭐가 정겨워? 나는 더러워 보이는데”     

 나는 내 표정을 볼 수 없으니, 최대한 그 곳과 그 곳의 음식을 싫어한다는 표정을 지어내려고 노력했고, 여자친구에게 내 표정을 최대한 보여주려고 목을 앞으로 쭉 내밀어 여자친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내 얼굴을 밀치며 TV가 보이지 않는다고 핀잔했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TV에 빨려들어 갈 것처럼 한참을 넋을 놓고 프로그램을 봤다. 나는 그런 그녀가 못마땅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내 등뒤에서 그녀의 짧막한 외침이 들렸다. 


 “오빠! 우리도 저기 가자, 지금 2시니까, 4시 쯤 이면 도착해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자친구의 부탁에 손사례를 치며 말렸다.     

 “저런데서 잘 못 먹으면, 바로 식중동 걸리는 거야. 국밥은 다른데에서 먹자”

 “싫어. 저기가 아니면 안돼!”     


 이미 그녀는 TV 속 국밥을 눈으로 먹고 있었다. 그녀의 등살에 마지못해 나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TV속 전통시장이 집과 그리 멀지 않은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것이 그나마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녀는 곧 TV에서 본 그 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부풀었는지 얼굴에 홍조를 띄고, 기분은 상기되어있었다. 여전히 나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짖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니 딱히 더 이상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시장에 도착하고, 두 세 걸음 걷자. 그 온 갖 잡스러운 냄새들이 내 콧구멍을 강타했다. 그리고 TV에 나온 밥집을 가기 위해서는 시장의 가장 안 쪽까지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어째서 그녀를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후회하며, 울면서 시장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뭐가 그렇게 기쁜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웃어댔다. 그렇게 나에게는 최악에 그녀에게는 최고의 300걸음을 걷고는 드디어 국밥집에 도착했다.      


 국밥집은 의외로 한산했다. 오전에 TV에 나왔다면 지금쯤 사람들로 인산인해여야 했을 텐데 다행해 그러지는 않았다.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쯤 되었기 때문에 밥시간이 아니라 그랬을 수 있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국밥집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잠깐이지만 시장의 정신없는 분위기 때문에 잠깐 얼이 나가있었는데 손님 없는 국밥집이 그나마 안식처가 되었다. 정신을 잠시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작은 국밥집에 할머니 한 분이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여기는 요리도, 서빙도, 그리고 계산도 허리가 약간 구분 할머니가 하시는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들어온 것을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주방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었다. 분명 들어올 때, 미닫이문에 붙어있는 방울이 크게 울리는 것을 들었지만, 저 노인은 그게 들리지 않았나 보다. 나는 주방 쪽을 향해 크게 외쳤다.  

   

 “사장님!”     

 그제 서야 주방에서 할머니가 나왔다.     

 “아이고 손님이 오셨네, 미안해요, 내 귀가 잘 안 들려서, 종을 더 큰 걸로 바꾸던지 해야지. 지금은 식사시간 때가 아니라 손님이 잘 안와서 내가 늦었네요”

 “아니에요. 할머님! 여기는 뭐가 제일 맛있나요?”     

 그녀는 큰소리로 할머니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여기는 다 맛있지. 그 중에서도 내장국밥이 제일 맛있어”

 “음... 그럼 저는 내장 주시고요. 오빠는 뭐 먹을래?”

 “나는.....”     

 나는 국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메뉴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밀려왔지만, 이미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나는 돼지국밥 먹을게”

 “할머니! 여기 내장국밥 하나랑, 돼지국밥 하나 주세요”

 “내장이랑 돼지? 알았어. 후딱 만들어 줄게”     

 할머니는 주문을 받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목이 말라 대충 눈 앞에 보이는 냉장고에서 꺼내 마셨다.     

 “오빠, 우리 소주도 마시자!”

 “차가지고 왔잖아”

 “대리 부르면 되지!”     


 이런 곳에서 먹는 술은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많이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거절하려고 했으나, 절규하며 부탁하는 여자친구의 눈빛을 나는 뿌리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눈 앞에 보이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가져왔다. 다행히 잔도 냉장고에 있어서 같이 가져올 수 있었다. 우리는 음식이 나오기 전에 소주를 한 잔씩 따르고는 마셨다. 시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내 모든 오감을 곤두세워서 그랬는지 소주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그런 그녀의 볼은 더 빨개졌다.      


 “너 그런데, 원래 국밥을 좋아했어? 우리 만나는 중에 국밥은 한 번도 먹은 적 없잖아?”

 “그거야 오빠가 우리 소개팅 하는 그 날부터 싫어한다고 했으니까 내가 먹자는 소리를 안 한 거지.”     

 그 때 생각났다. 2년 전 친구의 소개로 만난 그녀가 쭈뼛거리는 나를 위해서 처음으로 물어본 말.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당황하면서, 좋아하는 건 별로 없고, 국밥은 엄청 싫어합니다. 라고 답했었다.      


 “오빠가 국밥을 싫어하니까 먹자는 소리를 못했지, 나는 원래 국밥 엄청 좋아해. 오빠 만나기 전에는 이틀에 한 번씩 먹었을 정도 였어”

 “그럼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아무리 내가 싫어해도 네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냥 먹었을 텐데” 

 “어떻게 그래? 오빠도 내가 싫다는 건 웬만하면 안하잖아”     

 그녀는 아무렇지 안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자기 국밥 그릇에 깍두기를 넣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빈 잔을 채웠다.     

 “고맙다. 우리 건배나 하자”


 그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술잔을 들고선 내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나는 소주를 내 입에 다 털어 놓고선, 숟가락을 들고, 국밥을 휘저었다. 뜨거운 김이 나는 국밥 안에는 뽀얀 돼지고기살이 흩뿌려져있었다. 수저로 두 어번 저어 준 다음에 그녀가 했듯이 깍두기 국물을 조금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크게 떠서 입에 넣자, 뜨거운 국물과 고소한 고기 그리고 시원한 깍두기가 내 입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뜨거운 나머지 얼른 소주를 잔에 따라 입에 넣었다. 그녀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앞에서 깔깔대며 웃었다. 밉지 않은 웃음이었다. 웃는 그녀를 보고는 덩달아 나까지 웃음이 났다. 할머니는 뭐가 그리 재밌나 우리를 힐끔 보시더니, 냉장고에서 머릿고기 몇 점을 서비스로 내어주며 맛있게 먹으라고 이야기 하신다. 머릿고기는 마치 따듯한 국밥에 고기 한 점처럼, 할머니와 그녀의 정이 느껴지는 따스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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