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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pr 04. 2024

(단편소설) 분홍색 우산 (完)

 “얘, 오늘 비 온다니까 우산 들고 가”     


 등교 준비로 바쁜 아침시간, 막 집을 나서려는 그 때, 태수는 등 뒤에서 울리는 어머니의 외침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채 집을 나섰다. 지각이 무서워, 걸어서 20분 거리를 단숨에 뛰기로 결심하고, 운동화 끈을 고쳐 묶기 위해 허리를 숙였을 때, 굵은 면발과도 같은 장대비가 예고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수는 집에 다시 들어가기 보다는 그대로 뛰기로 결정했다. 어제 선생님이 태수에게 오늘도 지각하면, 벌로 몽둥이찜질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그는 뛰고 또 뛰어 가까스로 수업 시작종이 울리기 전에 자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차례 소낙비를 온 몸으로 맞은 그였기에 물에 빠진 생쥐 꼴 이었다. 그나마 우산을 챙기지 않은 몇 명의 친구들도 각자가 교문 앞, 버스정류장 등에서 비를 맞아 자리에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기에 태수는 자신만 물에 빠진 생쥐 꼴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창문을 바라 본 태수는 검은 구름이 끝도 없이 이어진 하늘과 마주하고는 하교를 걱정했다.      


--     


 미진은 어제 시장에 가서 ‘분홍색 우산’을 하나 샀다. 처음부터 미진이 우산을 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집에 있는 아들의 우산이 낡아보였던 것이 생각나, 마침 장을 보러 나온 길에 ‘아이의 우산도 같이 사줘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산을 파는 잡화점에 들려, 긴 장우산이 꽂혀있는 매대를 봤다. 매대에는 검은색, 비늘, 하얀색 그리고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꽂혀 있었다. 그 잡화점의 주인은 미진에게 다가와 우산을 살 것이냐 물었다.      


“네, 저희 아들 우산 하나 사주려구요”

 “혹시, 아드님이 좋아하는 색이 있을까요?”

 “우리 아들은....”     


 미진은 잠시 생각에 잠겨, 아주 오래전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그려온 분홍색 바다를 떠올렸다. 미진은 분홍색 바다를 그려온 아들에게 ‘왜, 파란색이 아닌 분홍색 바다를 그렸어?’라고 묻자, 아들은 시큰둥하듯이 ‘그야 분홍색을 가장 좋아하니까’라고 대답한 일화가 떠올랐다.      


 “우리 아들은 분홍색을 가장 좋아해요”

 “남자아이가 특이하게 분홍색을 좋아하네요. 여기 분홍색 장우산 가져가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미진은 분홍색 우산을 사서, 아들이 우산을 보고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에 신발장 옆 가장 잘 보이는 곳이 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비 소식에 우산을 가져가라고 일렀지만, 아들은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한참을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우산을 챙기지 않은 아들이 야속하기는 했지만, 혹여나 비를 맞고 감기에는 걸리지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에 하굣길에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      


 미진은 아들이 다니는 학교 앞에서 한 손에는 자신이 쓰는 우산을 또 다른 손에는 어제 산 분홍색 우산을 들고 선, 하교하는 아들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미진이 한참을 기다렸을 때, 손으로 대충 머리를 감싼 채 앞을 보고 뛰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크게 불렀다.     


 “야, 태수야!”     


 아들 태수는 예고 없는 미진의 방문에 놀라 그 자리에 서버렸다. 그러자 미진은 다시 자신의 아들을 불렀다.      

 “야, 태수야! 얼른 이 쪽으로 와! 비 다 맞지 말고”     


 아들 태수는 약간 놀라기는 했으나, 일단은 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엄마 미진의 우산으로 들어갔다. 미진은 태수에게 자신이 어제 산 분홍색 우산을 건냈다. 태수는 말없이 미진에게 우산을 받아 펼치고는 둘은 어색한 침묵만 계속 된 채, 집으로 향했다. 그 때, 침묵을 깨고 미진이 태수에게 조심히 물었다.     

  

 “아들, 아들은 왜 분홍색을 좋아해?”     


미진은 자신이 물어보고도, 최근 사춘기로 인해 부쩍 내향적인 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거야, 엄마가 좋아하는 색이니까, 빨리 가자 춥다”     


태수는 미진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앞서 걷기 시작했다.      


--     


 어린 태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해?’ 그러자 엄마는 태수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는 진달래를 제일 좋아해’, 태수가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진달래를 좋아해?’, 그러자 엄마는 다시 웃으며 태수에게 대답했다. ‘그야, 엄마가 분홍색을 가장 좋아하니까’. 어린 태수는 엄마가 좋아한다는 밖에 핀 진달래를 보며 엄마와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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