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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Oct 12. 2023


<단편소설>내 착한 남자친구


'아, 늦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다. 둘 다 직장인이 된 뒤로는 시간이 맞지 않아 자주 만나지 못했기에 좀 더 신경썼어야 했는데, 그만 늦어버렸다. 나는 약속장소를 향해 최대한 뛰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남자친구가 보이자 멎쩍게 인사했다.


"태수야,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늦잠 자는 바람에 미안해"

"왜, 뛰어왔어? 천천히 와도 됐는데, 괜찮아. 너도 일 하느라 피곤할 텐데 좀 늦을 수도 있지"


많이 기다렸음에도 날 달래주려는 그의 모습이 날 더 부끄럽게 한다. 내 남자친구는 너무 착하다. 그런 모습에 반해서 3년 동안 만나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어느 호프집이었다. 나는 당시 핸드폰 베터리가 없어서 호프집에 충전을 맡겼었는데, 한 참있다가 돌려받은 핸드폰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워서, 암호가 걸려있는 남의 핸드폰을 들고 발을 동동구르는 찰라, 그 핸드폰에서 전화가 울리기 시작해서 받았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지금 들고 계신 핸드폰이 제 핸드폰인 것 같은데.. 혹시 OO호프집이신가요?

"네, 네 맞아요"

-그럼 금방 찾으러 가겠습니다. 저도 근처에요.


그는 한달음에 달려와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 3년의 소중한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오늘도 늦을 나를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배려하는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처음 만난 그날이 떠오른다. 내가 멍하니 그 날을 기억하고 있자, 나의 맹한 표정을 바라본 그가 나를 툭 치면서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해?"

"응? 아니야. 배고프다 우리 밥먹으러 가자"

"그래, 내가 봐둔데가 있어"


그가 내 손을 잡고 날 이끌고 가는 중에 노숙자가 아무 것도 없는 빨간 소쿠리를 자신의 발 밑에 둔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는 그 노숙자를 가엾이 쳐다보며, 평소처럼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1,450원을 소쿠리에 넣어주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 노숙자를 보면 그냥 넘어 가지 못하고, 얼마간 돈을 넣어주었다.


"오늘도 착한일 했네? 멋지다. 내 남자친구!"


나는 그를 치켜세우며 칭찬했다. 그는 얼굴이 빨개지며 내 쪽을 보고 손사례를 쳤다. 


"그러지마,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런데 문득 그가 오늘은 노숙자에게 1,450원을 넣어준 것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평소였으면 1,200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1,450원을 넣었네? 평소에는 1,200원 넣지 않았어? 오늘은 250원이 더 있었던 거야?"

"응? 아니야, 1,450원 딱 맞춰서 가지고 나왔지, 적선하려고"

"근데 자기야, 왜 계속 애매한 금액을 적선하는 지 물어봐도 돼?"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미소띈 얼굴로 대답했다.


"그거야, 소주값이 올랐으니까"

"소주 값?"

"응, 저번 주에 소주값이 1,200원에서 1,450원으로 올랐거든 그래서 적선 금액도 늘렸어"

"그럼 이제것 노숙자들한테 소주사먹으라고 돈 준거야? 왜?"

"노숙자들은 사회 암 덩어리들이잖아. 쓸모없는 사람들은 빨리 없어져야해. 술이라도 먹고 다들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 것 적선한 거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별일 아닌 듯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오늘 악마를 보았다. 낮설게 느껴지는 그와의 만남을 진지하게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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