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2월의 12시 (完)

by 길거리 소설가


그의 질문에 나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두 시간의 쳇바퀴 같은 대화가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내게 쉴 새 없이 말들을 쏟아낸다. 지쳐버린 나는 내 앞에 놓인 커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의미 없이 컵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는 허리를 쭉 편채 손부채질을 했다. 내 나름대로 ‘더 이상 대화를 듣고 싶지 않다’라는 정중한 거절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내 모습본 그는 깜짝 놀라며 자신이 하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내게 말했다.


“김 선생님 혹시 더우십니까?”

“네? 아. 네 조금 답답하네요”

“아, 김 선생님은 더위를 많이 타시나 보네요. 지금 12월인데 손부채질을 하시는 것 보면요”


그에게 그만한 눈치를 바란 것은 내 잘 못이었다. 나는 내 말에 책임이라도 지듯이 외투를 벗어 옆 의자에 놓았다. 덕분에 사람들이 문으로 드나들 때마다, 온몸을 떨었다. 차라리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추위에 신경 쓰는 편이 나았다. 다시 그의 입이 열리던 그때, 그를 알아보는 이가 인사를 하며 우리 테이블로 걸어왔다.


“오사장님 아닙니까?”

“아이고, 박 선생님 여기서 다 뵙고, 너무 반갑습니다”


그도 일어나서 그의 지인인 ‘박 선생’ 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계셨습니까?”

“왜 제가 일전에 박 선생님께 해주었던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아, 기억나지요”

“혹시, 바쁜 일이 없으시다면 그때 제가 했던 얘기에서 내용이 조금 추가가 되었는데 같이 들어보시겠습니까? 지금 한참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박 선생’이라는 자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이고, 저도 오사장님 이야기 듣고 싶은데, 오늘은 지인이랑 와서 제가 그만 가봐야 합니다.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그러지 말고, 그 지인분도 같이 와서 들으면 재밌을 텐데....”


그가 아쉬운 듯 말을 흐렸다. 하지만 ‘박 선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떠났다. 어쩌면 나처럼 몇 시간 동안 고문에 가깝게 시달렸음을 짐작했다. 지금 내가 제일 부러운 사람은 ‘박 선생’이다.


‘박 선생’이라는 자가 떠나자, 그도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들을 자신이 없어 그에게 정중히 말했다.

“저기 선생님,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 그만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은데요. 혹시 나머지 이야기는 다른 날 들으면 안 될까요?”


그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는 없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듣다가는 정신병에 걸려버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아이고, 곧 이야기가 끝나는데 우리 20분만 더 이야기하면 안 됩니까?”

“저도 약속이 조금 늦어서요. 죄송합니다. 집에서 갑자기 연락이 오는 바람에 꼭 가봐야 하는 상황 같아서. 애가 아픈가 봐요”


나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해댔다. 사실 애는 건강하게 잘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가 내게 다시 만날 약속을 정하자고 했다.

“그러면 우리 다음에 만날 약속을 정하시죠? 어떠신가요”

“네, 약속은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일정 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래도 여기서 잡고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가 일정 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도 아까의 ‘박사장’처럼 외투를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그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본다면 마음이 약해져서 아마 더 붙잡혀있을 노릇이다. 나는 피곤함에 지쳐 걸음을 최대한 재촉해서 택시에 올랐다. 지금 내게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기에 나는 기사에게 정중히 라디오를 꺼주기를 요청했고, 조용한 가운데에 눈을 감았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카페에서 나올 때 너무 매몰차가 나온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좀 더 그에게 살갑게 인사하고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자식을 팔아 위기를 모면한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외면한채, 마음 한 편의 멍울을 이고 무거운 발검을으로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 아이 엄마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부산스럽게 굴었다. 내가 집에 온지도 모르는 눈치다. 그녀를 불러세우고는 물었다.

“태수엄마 왜 그래?”

“어 여보 왔어요.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왜 무슨 일이야?”


아내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었고, 손에는 아동용 물약이 들려있다.

“애가 갑자기 열이 펄펄 끓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애가?”


아내는 거의 울먹거리며 대답했고, 나도 덩달아 당황했다. 집에 오면 조용히 쉴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한 실망감도 약간은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119에 연락해서 구급차를 부르고, 아내와 아이를 먼저 내보냈다. 그리곤 집에서 간단히 씻은 후, 아내가 문자로 넣어준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이지만 걷기에는 너무 추웠기에,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또 택시를 탔다. 이번 택시는 타자마자 적막했다. 나는 그 적막함을 한 껏 느끼며, 차창으로 고개를 돌려, 네온사인 조명이 형형색색이 수 놓인 바깥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울긋불긋한 조명들이 차창에 맺힌 둥그런 물방울에 의해 번지자 강렬한 색감의 한 폭의 추상화가 나를 사로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끝-

작가의 이전글(단편소설) 이야기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