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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y 02. 2024

(단편소설) 12월의 12시 (完)


 그의 질문에 나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두 시간의 챗바퀴 같은 대화가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내게 계속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커피를 연거푸 마시고, 주변을 살피며 손부채질을 했다. 내 나름대로 ‘더 이상 그 대화는 듣고 싶지 않다’라는 정중한 거절이었다. 내 모습을 보자 그는 깜짝 놀라며 자신이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내게 말했다.      


 “김선생님 혹시 더우십니까?”

 “네? 아. 네 조금 답답하네요”

 “아, 김선생님은 더위를 많이 타시나 보네요. 지금 12월인데 손부채질을 하시는 것 보면요”     


 그에게 그만한 눈치를 바란 것은 내 잘 못이었다. 나는 적당히 둘러대고는 내 말에 책임이라도 지듯이 외투를 벗어 옆 의자에 놓았다. 덕분에 문 앞에 앉아있던 나는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온 몸을 떨어야 했다. 차라리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보다 추위에 신경 쓰는 편이 나았다. 한 참을 그렇게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때, 그를 알아보는 이가 그에게 인사를 하며 우리 테이블로 걸어왔다.      


 “오사장님 아닙니까?”

 “아이고, 박선생님 여기서 다 뵙고, 너무 반갑습니다”     


 그도 일어나서 그의 지인인 ‘박선생’ 에게 반갑게 인사하고는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잠시 소개하자, 나도 일어나 악수를 했다. 그 때 박선생이라는 자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계셨습니까?”

 “왜 제가 일전에 박선생님께 해주었던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아, 기억나지요”

 “혹시, 바쁜 일이 없으시다면 그 때 제가 했던 이야기에서 내용이 조금 업데이트가 되었는데 같이 들어보시겠습니까? 지금 한참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박선생’이라는 자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이고, 저도 오사장님 이야기 듣고 싶은데, 오늘은 지인이랑 와서 제가 그만 가봐야합니다.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그러지 말고, 그 지인분도 같이 와서 들으면 재밌을 텐데....”     


 그가 아쉬운 듯 말을 흐렸다. 하지만 ‘박선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떠났다. 어쩌면 나처럼 몇 시간 동안 고문에 가깝게 시달렸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지금 내가 제일 부러운 사람은 ‘박선생’이었다.   

   

 ‘박선생’이라는 자가 그렇게 자리를 떠나자, 그도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들을 자신이 없어서 그에게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저기 선생님,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 그만 일어나봐야 할 것 같은데요. 혹시 나머지 이야기는 다른 날 들으면 안 될까요?”


 그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듣다가는 정신병에 걸려버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아이고, 곧 이야기가 끝나는데 우리 20분 만 더 이야기하면 안됩니까?”

 “저도 약속이 조금 늦어서요. 죄송합니다. 집에서 갑자기 연락이 오는 바람에 꼭 가봐야하는 상황 같아서. 애가 아픈가 봐요”     


 나는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해댔다. 사실 애는 건강하게 잘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가 내게 다시 만날 약속을 정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우리 다음에 만날 약속을 정하시죠? 어떠신가요”

 “네, 약속은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스케줄체크해서 말씀 드릴게요”

 “그래도 여기서 잡고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가 스케줄 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도 아까의 ‘박사장’처럼 외투를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그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본다면 마음이 약해져서 아마 더 붙잡혀 있었어야 할 것이었다. 나는 피곤함에 지쳐 걸음을 최대한 재촉했다. 집에 가는 방법도 지하철이나 버스가 아닌 택시를 선택했다. 지금 내게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 나는 기사아저씨에게 정중하게 라디오를 꺼달라고 부탁드렸고, 조용한 가운데에 집에 갈 수 있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카페에서 나올 때 너무 매몰차가 나온 나 자신에 대해 후회했다. 좀 더 그에게 살갑게 인사하고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자식을 팔아 위기를 모면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자 금방 집근처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자, 아이 엄마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부산스럽게 굴었다. 내가 집에 온지도 모르는 눈치다.      

 “태수엄마 왜 그래?”

 “어 여보 왔어요.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왜 무슨 일이야?”     

 아이 엄마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었고, 손에는 아동용 빨간 시럽을 들고 있었다.     

 “애가 갑자기 열이 펄펄 끓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애가?”     


 아이 엄마는 거의 울먹거리며 대답했고, 나도 덩달아 당황했다. 집에 오면 조용히 쉴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한 실망감도 약간은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119에 연락해서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긴급호송 시스템에 대해서 또 한 번 감탄했다. 나는 아이와 아이 엄마를 먼저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내고, 집에서 샤워를 하고는 옷을 다시 갈아입고, 아이 엄마가 문자로 넣어준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 멀지는 않는 곳이지만 걷기에는 너무 추웠기에,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또 택시를 탔다. 원래 나는 택시를 자주 타는 것을 싫어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두 번이나 타면서 자기변호를 했다. 이번 택시는 타자마자 적막했다. 나는 그 적막함을 느끼며, 아이가 아픈 것은 내가 아이의 핑계를 대서라고 생각하며 약간의 자책을 하고는 이내 차창으로 고개를 돌려, 형형색색의 거리의 네온사인을 바라봤다.


그 네온사인은 차창에 맺힌 물에 의해 번져보이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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