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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Jul 09. 2024

(에세이)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생각

시지프신화를 통해 보는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단상

 「시지프스 신화」를 통해 보는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단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상주의자다. 늘 환상에 젖어 산다. 그들의 현실은 지금이 아니다. 내가 가야할 꿈과 미래 그 곳이 현실이고, 실제는 그저 과거로 치부한다. 이상주의자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현실을 가기위한 과거일 뿐이다. 그 속에서 그들은 아무 것도 찾지 못한다. 아니, 내게 올 현실(사실은 미래)을 쫒기 위해 수많은 과거를 짓밟는다. 


 알베르트 카뮈는 미래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부류의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 ‘부조리’로 명명했다. '부조리'란, 언뜻 들어도 부정적인 표현이다. 카뮈는 이상주의자들을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접근했고, 묘사했다. 그리고 그의 책을 넘기다 보면,  '인간이 '부조리'에 순응하며, 현실을 열심히 사는 것이 잘 못된 것인지?'에 대해 사례를 바꿔가며 질문한다. 그리고 ‘무의미하고 무용한 삶이 살아갈 이유가 없다면, 반대로 그런 삶이라고 한 들 딱히 죽을 이유도 없지 않느냐’는 결론으로 책을 마쳤다. 즉, 카뮈는 삶의 원동력을 '삶의 동기(motivation)'가 아닌 '삶(life)' 그 자체의 의미를 더 중요시 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그의 책들에 녹였다.


 그의 에세이 「시지프스 신화」에는  '시지스프가 과연 그 행위에 대해 허무하게 생각할까?' 라는 질문을 한다. 일반적인 사람이면, 시지프스의 일련의 행위는 의미없는 것이기 때문에 허무하다 라고 답할 것이다. 나아가 끝없는 형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내비칠 지도 모른다. 이는 미래에 대한 예단에 따른 '부조리'한 결론이다. 오히려  카뮈는 시즈프스가 정상에서 굴러 떨어진 돌을 다시 올려놓기 위해 내려가는 휴식시간(?)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휴식은 시즈프스가 겪는 행동에 대한 보상이며, 그가 돌을 올릴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부조리'는 우리 삶 그 자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매일 마주하는 기대와 희망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습관처럼 미래를 예단하기 그 것에 대해 의식하지 못 한다. 카뮈의 다른 소설 「페스트」에는 의사 리유가 등장한다. 아픈 아내는 페스트가 발발하기 전, 먼 곳으로 요양을 떠나고, 어머니와 홀로 남은 리유는 도시에 퍼진 페스트와 싸우며 고군분투 한다. 리유는 작중 내내 시니컬하다. 그는 그의 친구가 프랑스에 여자친구를 보러가기 위해 폐쇄된 그 곳을 빠져나가려 부단히 노력할 때에도, 또 다른 친구가 밀수를 통해 큰돈을 벌 때에도 묵묵히 환자를 돌보고, 페스트를 잡기위해 노력했다. 의사 리유의 그 두 친구는 둘 다 부조리를 깨고 이상을 향해 헤엄치는 물고기와도 같이 묘사된다. 여기서 카뮈는 위 두 친구의 사례로 부조리를 깨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에 대해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자친구를 갈망한 친구는 결국 리유의 곁에 남아 환자를 돌보기로 결심 하고는 마음의 평화를 찾은 뒤, 페스트가 끝나곤 다시 재회하는 해피엔딩을 맞은 반면, 밀수를 하던 친구는 페스트가 끝나고는 현실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집에서 창 밖으로 총을 쏴대며 배드엔딩을 맞는다.   

   

 우리는 미래가 아닌 현실을 살아간다. 「페스트」의 의사 리유가 그랬고, 여자친구를 찾는 친구도 그랬고, 밀수를 하던 친구도 그랬다. 하지만 그 들이 각자가 맞이할 결말은 달랐다. 밀수를 한 친구처럼 어느 누구도 배드엔딩을 목표로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현실을 망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카뮈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우리가 '삶' 그 자체를 살아가라고 외치고 있다. 세계에는 수 많은 '삶'이 있다. 그 중에 어떻게 사는 삶이 옳고, 나쁘다라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명확한 점은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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