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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Jul 11. 2024

(단편소설)어쩐지 즐거운 날(完)

 오늘은 어쩐지 이상한 날이다. 평소에는 평범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갑자기 내게 크게 다가왔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플랫폼 가장 앞 쪽에 서서 들어오는 전철의 기관사와 눈을 마주쳤을 때 그렇게 느꼈고, 매일 앞자리 앉은 사람이 보는 책에 눈길이 가기에 그렇게 느꼈다. 평소라면, 생각 없이 지나쳤을 찰나의 순간들이 오늘 만큼은 하나하나 의미가 되어 내게 돌아온다. 내 옆자리 누군가는 작은 목소리로 노랫가사를 흥얼거린다. 평소라면 짜증이 먼저 나겠지만, 오늘 만큼은 그 어떤 가수가 불러주는 노래보다 더 달콤하고 아름다운 말씨다. 그 친구는 큰 헤드셋을 쓰고 있어서 듣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의 노래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가를 흥얼거렸다.      

 하루를 즐겁게 시작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아침부터 만원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회사에 가면 여기저기 치이다가 다시 만원 지하철로 돌아와 다시 시달리고, 이런 반복된 삶이 습관이 된다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을 이미 다 살아버린 것처럼 몸이 무겁다. 나 역시 그랬다. 어제 까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를 위해 걱정해주는 이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무의미한 일상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은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 흩어지기만을 반복했다. 내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앎에도 나는 잡으려 더욱 노력했다. 허공에 손짓을 하자 파편 하나가 내 손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그 파편을 잡기위해 다른 손으로 손짓했다. 그러자 그 파편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더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내가 잡기위해 노력하지도 않은 수 많은 파편들이 나를 감싸고 있다.     


 괜히 눈물이 난다. 매일이 오늘 같이 즐거웠다면, 허무라는 시간 속에 나를 내 던지지 않았을 텐데, 나는 왜 지금에서야 즐거운 하루를 맞이한 것일까? 후회의 탄식이 입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내, 지금이라도 찾은 ‘오늘’에 감사하기로 했다. 생각에 젖은 동안 전철은 목적지에 다 달았다.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나도 그들 틈바구니에 섞여 몸을 맡겼다. 내게 노래를 선물한 그 친구도 내 옆에 붙어 같이 나왔다. 그는 여전히 헤드셋 속에 갇혀 있었다. 개찰구를 나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갈 길을 찾아 간다. 나는 개찰구 앞에 멍하니 서서, 광고판에 눈을 두었다. 추상화로 보이는 광고판 속 그림은 무엇을 형상 했는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색채와 기다란 선들 색깔별로 줄 쳐놓은 오선지를 옆으로 세워놓은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그 강렬한 그림에 빼앗겼다. 나와 그 그림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이 멈춰 버린 듯이 주변이 천천히 흘러갔다. 선 하나하나가 광고판을 뚫고 나와 바닥을 타고 쭉 이어져 나갔다. 나도 그 선을 따라 뛰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어깨에 체인다. 그러나 아랑 곳 하지 않고, 선을 따라 뛰고 또 뛰었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몰랐다.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선이 내게 방향을 제시해 줄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달려, 어딘지 모를 옥상위 였다.    

  

 그 선도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하고 옥상 난간 언저리에 멈쳤다. 나는 그 곳에서 머리를 젖히고 아침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내 눈 앞에 들어왔다. 그리곤 다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평생을 살면서 아침 하늘을 바라봤던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이 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머릿속은 깨진 유리가 돌아다니는 것 만큼 아프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살아있음이 느껴지기에 이내 기쁘기 시작했다. 슬프고 기쁘다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이제 시작하려한다. 이 곳에서 오늘 아침 눈이 떠졌을 때 했던 그 다짐에 대한 시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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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비명이 여기저기 들리기 시작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분주히 움직이고, 뒤늦게 도착한 앰블런스 한 대가 급히 들것을 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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