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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Sep 12. 2024

(단편소설) 허수아비와 이야기(完)

 태수는 왼쪽 어금니의 통증을 얼음 팩으로 누르며, 미간을 찌푸리고 앉아있다. 추수철을 맞아 바삐 움직이다가도, 가끔씩 느껴지는 어금니 통증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보냉가방에서 아직 차가운 얼음 팩을 왼쪽 볼 따귀에 갖다 대는 것이 전부였다. 읍내와 워낙 멀고, 치과치료를 받으려면 이틀은 손을 비워야 하는데, 태수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참기만 하고 있다. 옆에서 보다 못한 미진이 바가지를 긁었다. 

   

 “여보! 그냥 치과 좀 다녀와요”

 “내가 치과를 가면 여기는 누가 한답니까?”

 “치과 가기 싫어서 핑계대는건 아니구?”     


 미진이 익살스런 눈 웃음을 치며, 태수를 놀렸다

.      

 “무슨 소리야,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 깟 치과가 무섭겠어? 추수는 다 때가 있고, 흐름이 있는 거야. 그 흐름이 끊기면 땅의 신이 노하신다고 나 같은 농사꾼은 이 깟 몸 아픈게 대수가 아니라고”

 “어련 하시 겠어”     


 미진은 태수를 흘깃 쳐다보고는 본인 일을 하러 떠났다. 태수는 아직 왼쪽 뺨을 어루만지며 논을 보고 있었다. 논은 크지는 않지만 두 명이서 관리하기에는 꽤 힘들었다. 논 중간에는 허수아비 두 개가 새들을 쫒기 위해 바람에 팔을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 허수아비 위에 10마리정도의 뱁새들이 쪼로록 앉더니 두 마리 씩 태수의 논에 들어가 포식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저 새들이 또 와서 처먹고 있네”     


 태수는 탄식을 하면서 얼음 팩을 보냉가방에 넣고는 새들이 앉아있는 허수아비로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뱁새들은 그가 오는 것을 봤음에도 더 빠른 속도로 벼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태수가 더 다가가자 각기 흩어져서 농작물을 쪼아먹고 있는 뱁새들이 세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래도 통통하던 것들이 얼마나 먹어댔으면, 아주 뚱뚱해져서 제대로 날지도 못할 정도였다. 태수가 들고 있는 기다란 몽둥이로 새들이 모여 있는 곳을 수차례 내려치기 시작하니 그제야 새들은 눈치를 보다가 날라갔다.      


 태수는 작년에 메뚜기 같은 벌래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그래서 벌레가 안 생기도록 농약을 팍팍 뿌리며 조치를 취해났는데, 이제는 새가 말썽이다. 생각해보니 작년에 새가 없었던 이유는 벌레들이 곡식을 다 쪼아서 먹을게 없어서 안 나타 난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태수는 애꿎은 허수아비만 주먹으로 몇 대 치며 분을 삭혔다.      


 “영수 아빠! 거기서 뭐해요?”     


 미진이 먼발치에서 태수를 불렀다. 태수는 화가 가시지 않은 채로 논에서 나오며 씩씩거리며 미진에게 말했다.     


 “또, 새들이야 이거 원, 추수가 끝날 때 까지는 저기 평상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관리를 해야겠어”

 “아이고, 그냥 좀 먹으라고 냅둡시다. 또 뱁새였을 텐데, 그 새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당신이 못 봐서 그래 엄청 먹는다고, 작년에 메뚜기들 때문에 농사 망친거 기억안나?”

 “그거야 당신이 메뚜기 잡겠다고 온 논을 그냥 헤집고 다녀서 그런거 아니에요”

 “조용히 해, 나는 메뚜기 든 뱁새든 조금이라도 내 곡식에 손대게 할 수 없어”


 미진은 고개를 좌우로 몇 차례 흔들고는 태수에게 치통약을 물과 건냈다.   

  

 “알겠으니까, 이거나 좀 먹어요. 치통약이에요”

 “나는 남자야 이런거 안 먹어도 된다고”

 “그게 남자랑 무슨 상관이에요? 얼른 먹어요”     


미진이 버럭하며 말하자, 태수는 그제야 약을 받아먹었다. 태수는 약을 먹은 자신이 머쓱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우리 집에 새총있지?”

 “있을 거에요. 지난 번에 애들 왔을 때 갖고 놀던 거 안 버리고 광에다 보관해놨으니까요”

 “그 것 좀 챙겨줘, 내가 오늘은 새들의 씨를 말리고 말겠어”

 “에휴... 그냥 좀 냅 두지”


 미진은 한 숨을 크게 쉬며,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태수는 약을 먹고는 왼쪽 뺨이 덜 아프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진이 가져온 차가운 물을 벌컥거리며 속에 들이 부으며, 미진이 빨리 새총을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영수 아빠 여기 새총이랑, 쇠구슬 10개에요. 애들이 두고 간 게 이것 밖에 없으니, 쇠구슬은 알아서 잘 주워서 쓰세요”     


 태수는 미진에게 새총을 받아 또 허수아비 위에 올라있는 새에게 조준을 하며 이리저리 고무줄을 늘였다 줄였다 했다.      


 “근데, 영수 아빠 새총 잘 쏘기는 해요? 당신 군대에서 총도 제대로 못 쏴봤다면서요. 취사병이라”

 “취사병도 할 건 다했어. 쓸 때 없는 소리 말어”


 태수가 미진에게 버럭 하고는 새총을 들고 호기롭게 논으로 들어가, 쇠구슬을 새총에 걸어 첫 발을 쐈다. 그의 첫 발은 허수아비의 눈에 맞았다. 새들은 갑작스레 흔들리는 허수아비에 잠시 놀라 날았지만, 이내 허수아비의 길게 뻗은 팔에 앉았다. 태수는 한 발자국 더 이동해 두 번째 쇠구슬을 발사했다. 쇠구슬은 이번에 허수아비를 지나 허공으로 날라 갔다. 세 번째 구슬도 허공으로 갔다. 태수는 흥분이 가시지 않아, 순식간에 남은 쇠구슬을 난사하며 허무하게 날렸다. 하지만 새는 단 한발도 맞지 않았다. 새는 태수를 비웃는 듯이 허수아비의 팔을 날아올라 그의 머리를 뱅글뱅글 돌았다. 화가 난 태수는 논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쇠구슬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태수가 찾은 쇠구슬은 10개에 절반도 안 되는 4개였다. 태수는 그나마 수거한 4개의 쇠구슬을 자신의 안 주머니에 넣고, 근처에 깔려있는 돌을 찾기 시작했다. 적당한 돌 몇 개를 찾아 손에 쥐고, 새총을 들어 허공을 날고 있는 새들에게 쏘기 시작했다. 이번에 새들은 태수를 더 비웃는 듯이 태수가 새총을 쏘면 쏠수록 그의 머리와 가까이 날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몇 몇 새들은 벼를 쪼고 있었다.       


 태수가 새를 잡기위해 새총을 들고 날 뛴 지 2시 간이 지났다. 하지만 새는커녕 태수가 흩어진 쇠구슬을 찾고, 돌을 줍기 위해 논의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 논이 일부 망가졌다. 그 때, 마침 진통제 효과가 잦아들며 태수가 다시 왼쪽 뺨을 어루만지며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과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하지만 새들은 여전히 그의 머리 위를 빙글거리며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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