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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Oct 10. 2024

(단편소설) 암자와 노승 그리고 오솔길(完)

 태수는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산속을 헤맸다. 8월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의 한 복판에서 애꿎은 태양만 바라보며 더운 여름을 한탄하는 태수였다. 손수건이 땀으로 젖어 물이 떨어 찔 때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둔 돌무덤과, 거칠어 보이는 오솔길이 태수의 눈에 띄었다. 산속을 돌아다닌 지 꼬박 5시간이 흐른 뒤였다.      


 태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기가 거긴가?’라고 생각했다. 태수는 옷을 고쳐 입고는 무언가에 이끌리 듯 그 오솔길을 걸었다. 오솔길은 정비가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인 남성 두 사람 정도가 걸을 수 있었고, 바닥에는 평평한 돌들이 제법 규칙적으로 놓여있었다. 태수는 자신이 잘 찾아왔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향했다.      

 태수가 오솔길에 들어서고도 20분의 시간을 더 걸어서야 작은 암자가 나왔다. 사실, 오솔길 끝 무렵 ‘OO사’라는 푯말이 없었다면, 그곳은 그냥 낡고, 허름한 초가집이나 다름없었다. 태수는 이상한 마음에 푯말과 그 초가집을 연신 확인했다. 미심쩍었으나 일단 그 초가집의 마당으로 들어온 태수는 천천히 그곳을 살폈다. 그 초가집은 초입에서 봤던 것보다 더 낡았다. 지붕의 초가는 색이 바랬고,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아 처마 끝은 들쭉날쭉했다.      


 낡은 초가집 감상도 잠시, 태수는 지친 나머지 초가집 마루에 털썩 앉았다. 자리에 앉자 마당이 태수의 눈에 비쳤다. 태수의 정면에는 작은 오솔길이 곧게 뻗쳐 있고, 그 주변으로 나무가 빽빽이 자라 있었다. 태수가 넋을 놓고 빽빽한 나무 풍경을 감상할 때, 초가집 옆에 딸린 작은 부엌에서 위아래 회색 승복을 입고, 허리가 약간 굽은 노승이 나오며 태수와 눈이 마주쳤다.     


 “거 누구요?”     


 노승은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작은 공간을 압도했다.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벌리고 있던 다리를 오므리고,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노승을 바라봤다. 그러자 노승은 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다시 말했다.     


 “거 누군가?”     


 노승이 태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고, 태수는 아직 답을 하지 못했다. 노승은 그제야 태수의 행색을 유심히 봤고, 그가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알아보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큰 사발에 물을 한 잔 내어와 그에게 주었다. 태수는 노승에게 사발을 건 내 받고, 허겁지겁 마셨다.     


 “감사합니다. 스님”

 “이제 말을 하시는 구만, 말도 못 할 정도로 힘든 길을 어찌 올라왔소?”


 태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노승에게 답했다.     


 “미진 씨 추천으로 왔습니다. 이곳에 오면 스님께서 정답을 주신다고 하셔서요”

 “아, 미진 보살님 소개로 오신 거구나, 미리 이야기했으면 읍내에 나가 다과라도 사 오는 건데, 지금은 대접할게 물 밖에 없어서 미안합니다”


 노승은 태수에게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딱히 미안한 표정을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이방인에 대한 약간 비꼬는 말 같았다. 눈치가 빠른 태수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고, 태수는 노승에게 더 압도당하고 있었다. 태수가 주눅 든 것을 알아챈 노승은 한 술 더 떠서 태수에게 물었다.     


 “오늘 자고 갈 거요? 여기 빈방이 없어서, 자려면 마루에서 자야 하는데 괜찮겠소?”

 “아닙니다. 해지기 전에는 내려갈 생각입니다” 

 “먼 길 오셨는데, 손님 대접이 누추해서 다시 미안합니다”     

 이번에도 노승에게서는 미안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그럼, 여기는 왜 올라온 거요? 무슨 고민이 있다고 한 거 같은데, 들어줄 수야 있지만 그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 그런 기대를 했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소”

 “네, 스님”

 “그럼 말해보게 무슨 고민인지”     


 태수는 담담히 스님에게 고민을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자네가 노력한 만큼 회사가 성장하지 못한 것이 고민이라 이건가?”

 “그런 부분도 있지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저는 어느 정도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직 그것을 몰라주니 답답할 뿐입니다”

 “의수와 의족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건 맞는구먼, 그런데 왜 주변에서 자네를 몰라준다는 것인가?”

 “처음에는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어서 판매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까 회사에 경영난이 생길 것 같아, 가격을 몇 차례 올렸더니 주변에서 제게 돈 벌려고 장애인을 이용한다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곳 보다 30%는 싸게 팔고 있는데,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는 정말 장애인들을 위해 노력하는데 고작 몇 차례 가격을 올렸다고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태수는 울분을 토하며 노스님에게 말했다.      


 “나랑 같이 저 오솔길을 좀 걷겠나?”


 노스님은 훙분한 태수에게 걸을 것을 제안했고, 태수는 그의 말에 응했다. 태수는 노스님과 오솔길을 걸으며, 아까와는 달리 성인남성 둘이 걷기에는 약간 좁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스님은 옆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 답답해진 태수는 노스님께 물었다.     


 “저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자네는 ‘무소유’라는 책을 알고 있나?”

 “아, 법정스님이 집필하신 ‘무소유’ 요?”

 “맞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10번도 넘게 봤습니다. 그 책을 보고 감명받아서, 저도 실천하려고 제가 아끼는 것들을 버릴 정도였습니다. 덜어냄의 미학이라.... 너무 멋진 말 같습니다”  

   

 태수는 다른 의미로 흥분해서 노스님에게 주저리 떠들었다. 노스님은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다가 갑작스레 크게 웃기 시작했다. 태수는 자신이 뭔가 재밌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고 노스님을 바라봤다. 태수가 멈추자 노스님도 같이 멈췄다.      


 “미안하네, 자네 말이 하도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네”

 “제 말에 어디가 그렇게 재밌으셨나요?”

 “처음부터 모두 다 웃겼네”     

 태수는 뜻 모를 노스님의 말에 계속 의아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노스님이 태수에게 질문했다.     

 “그럼, 자네가 의수와 의족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정말로 장애인들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함이었나?‘


 태수는 노스님의 말을 듣고 손사래를 치고, 펄쩍 뛰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스님, 저는 정말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좀 더 저렴하고 좋은 의수를 만들어 줄 수 없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겁니다”     


 노스님을 태수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태수는 계속 말했다.     


 “절대로 장애인들 상대로 돈을 벌거나 그런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태수의 항변이 끝나서야 노스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충분히 알았네, 그런데 자네는 ‘무소유’라는 책을 글로만 읽은 것 같네”

 “그게 또 무슨 소리십니까?”     


 태수는 계속되는 노스님의 동문서답에 지쳐가고 있었다.   

  

 “자네 그 책을 읽고, 좋아하던 물건들을 다 버렸다고 했지?”

 “네, 그랬습니다”

 “왜 그랬나?”

 “그거야.....”     


 태수는 왜 당연한 것을 묻는 노스님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정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노스님은 태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그럼 질문을 바꿔야겠군, 좋아하는 물건을 버렸을 때 자네의 심정은 어땠나?”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무소유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버린 겁니다”

 “내가 볼 때에는 자네는 ‘무소유’를 읽기만 했구먼...”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말 그대로네, 그냥 단지 책을 10번 읽었을 뿐이야. 다른 소설책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태수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아 골똘한 표정으로 노스님을 바라봤다.     

 “아직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나 보고만, 무소유라는 것은 말이지 뭘 버린다고 실천되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건가요?”

 “무소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네, 능력이 있으면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사치품도 사고, 자네처럼 좋아하는 물건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자네가 샀던 그 물건들이 온전히 ‘내 거’라는 그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네, 자네가 산 물건이지만, 자네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     


 태수가 조용히 노스님의 말을 들었다. 노스님은 태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즉, 무소유의 실천은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소유했다는 내 마음속 ‘집착’을 덜어내는 일이라네, 자네가 물건을 버렸을지는 몰라도, 그 물건에 대한 집착은 못 버린 것 같구먼”     

 태수는 이번에도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긴 침묵을 깨고 물었다.     

 “네, 스님 제가 지금 무소유를 깨닫지 못해서 힘들다는 말씀이하고 싶으신 건가요?”

 “맞네”     


 태수는 자신이 노스님을 찾기 위해 5시간이나 걸어온 산길이 생각나자 화가 나기 시작해서 다그치듯 물었다.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워서 여쭤본 거였습니다. 제가 무소유를 실천하지 못한 건 차차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태수의 반응에 노스님은 또 웃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태수도 날카롭게 받아쳤다.     


 “또 왜 웃으시는 거죠?”


  노스님은 태수의 질타에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자네 지금 날 보기 위해 등산하면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지 않았나?”


 태수는 뜨끔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집착이야 자네가 여기 오기까지 걸었던 그 수고를 잊지 못했다는 것이 집착이네”     


 이번에도 태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 그러면, 자네의 고민이 왜 발생했는지 알겠나?”

 “집착일까요?”

 “맞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공명심’ 그게 ‘집착’이야, 내가 볼 때 자네는 나쁘지 않은 사람 같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어찌 100% 순수한 사람만 있겠는가? 나쁘지 않은 사람도 그 정도 집착을 충분히 할 수 있지, 그러나 그것을 벗어 내야지만 본인이 겪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야, 그 집착을 털어버리게”     


 노스님의 말이 끝나자 오솔길 초입에 도착했다. 그제야 태수는 자기가 노스님과 20분 넘게 걸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태수가 뒤를 돌아보자 그 작고 초라한 초가집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자네, 돌 하나 주워 오겠나?”

 “네, 스님”     


 태수는 노스님의 말에 따라 편편한 돌 하나를 주어왔다.      


 “그 돌을 앞에 돌무덤에 올리게”     


 노스님의 말에 따른 태수는 돌무덤 꼭대기에 자기의 돌을 더했다.     


 “아주 이쁘게 잘 쌓는 구만, 내가 해줄 이야기는 여기까지네 앞으로도 그렇게 나쁘지 않게 살게나, 조심히 들어가게”     


 짧은 인사를 끝으로 노스님은 다시 오솔길에 들어갔다. 태수는 돌무덤 앞에 서서 자신이 쌓은 돌과 사라져 가는 노스님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해는 곧 저물어 가는지 태양은 더 붉어지고 있었다. 태수는 노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쌓은 ‘돌’만 떠오를 뿐이었다. 결국 태수는 ‘돌’을 뒤로한 채 산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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