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타인의 기억(1/9)

by 길거리 소설가

지금부터 쓰려는 글은 한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곳은 OO 협회에서 주최한 '문인의 밤' 행사 자리였다. 당시 신인 작가였던 나는 소심하고 말주변이 없는 성격이라 다른 작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내게 말을 건넸다


"명일 씨? 모임에서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이번에 등단하셨나요?"


재빨리 말을 건 사내의 명찰을 확인했다.


"네, 김종수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등단한 이명일이라고 합니다"

"역시 신인 작가셨군요. 어쩐지, 처음 뵙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작가분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모임에 참여했는데, 소심하고 말주변이 없다 보니 겉돌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말을 안 걸어 주셨다면 저는 3시간 내내 혼자 서있다가 집에 갔을 겁니다"


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자, 그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미소에 긴장이 풀려 한참을 떠들었다. 대화는 내가 글을 쓰는 방법에 관해 물으면 그가 답하는 식이였다. 그러던 중 그가 시계를 보더니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명일 씨 오늘 이야기 즐거웠어요. 제가 인사드려야 하는 분이 계셔서 곧 가봐야 해요. 다음에도 대화 나눴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계속 그렇게 혼자 서있으면 아무도 명일 씨에게 말을 걸지 않을 거예요.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세요"


그는 헤어지는 말미에 오른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했다. 그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서 나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작가들 무리에 얼굴을 비췄다. 한참을 이곳저곳 다니며 나를 알리다 보니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샴페인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쓰러지기 전에 모임은 끝나서 곧장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뒷좌석에 앉아 머리를 푹 내리고 한숨을 쉬는데 문득 내게 처음 말을 걸어준 그가 생각났다. 곧장 핸드폰을 열어 그의 이름을 검색하자 그의 간략한 이력과 작품 목록이 나왔다. 그리고 취기와 호기심이 반씩 섞인 마음으로 그의 책 '우리들 이야기'를 구매했다.


그 뒤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고시원 침대 위였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떴지만, 숙취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겨우 핸드폰을 확인하니 어젯밤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방문을 열어 도착한 책을 집어 들고 책상에 앉아 펼쳤다. 책의 내용은 가족을 잃은 형제가 오해로 인해 잠시 헤어졌다가 화해 후 부모님을 찾아 잘 지낸다는 내용이었고, 분량은 300페이지 정도로 장편이었지만, 글이 흡입력이 있고, 구성이 탄탄하여 금세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바로 그가 쓴 다른 책들도 주문했다. 몇 주간 그의 소설을 다 읽으니, 소설에 '고아'와 '자식을 버린 어머니'가 반드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왜 자주 등장하는지 그에게 꼭 물어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한동안 그를 만나지 못해 내 기억 속의 그는 점점 옅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