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타인의 기억(2/9)

by 길거리 소설가

옅어진 기억속에서 김종수 작가를 다시 만난 건 5년이 지난 후 어느 카페였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자주 가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내 쪽으로 오더니 인사를 했다.


"혹시, 명일 씨 아니에요?"


수염이 덥수룩한 그를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움찔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명일 씨, 저 기억 못 하겠어요? 저 김종수예요"


그제야 그를 기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죄송합니다.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쪽 자리에 앉으시죠"


그를 내 쪽으로 오게 한 뒤 그가 마실 커피도 새로 주문했다.


"아이스 커피로 주문했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좋아해요. 잘 마실게요"

"제가 작가님을 참 뵙고 싶었습니다. 5년 전에 먼저 다가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계속 만날 날 만 고대했는데, 통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는 자신은 잘 지냈고, 그저 조금 바쁜 일이 있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내가 말했다.


"작가님 소설을 읽었습니다"

"어떤 작품을 읽으셨어요?"

"다섯 권 모두 읽었습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꽤 놀란 모양이었다.


"제 작품을 다 읽으셨어요? 어땠나요?"

"너무 재밌었습니다. 특히 '우리들 이야기' 결말은 며칠이나 여운이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작가님 소설들 속에는 왜 '고아'와 '자식을 버린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나요?"

"궁금해요?"


그가 반문하며,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고아였어요. 고아원에서 쭉 자랐죠. 고아원 원장님 말로는 제가 다섯 살 무렵 장터에 덩그러니 있는 걸 경찰이 데리고 왔다고 했어요. 다행히 고아원 생활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아이들을 착취하거나 하지는 않았죠. 정규교육도 다 받았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죠. 당시에는 아이들을 이용해서 무임금 노동으로 착취하는 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늘 마음속 한편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춘기 무렵에는 심하게 방황했어요. 중학생 때 학교에 갔는데, 누가 제 책상에 '고아새끼'라고 크게 써놨죠. 범인은 알고 있었어요. 공부를 잘했던 저를 시기하는 놈이었죠. 저는 참지 않았어요. 바로 그놈의 얼굴을 때렸죠. 학교는 발칵 뒤집혔고, 그놈 어머님과 우리 원장님이 학교에 불려 오셨어요. 다행히 그놈 어머니는 제 자식보다는 제 자식의 허물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아는 분이셨어요. 연신 원장님께 자기 아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고, 자기 아들이 맞은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거든요. 학교 안에서 일은 잘 풀렸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놈 어머니는 불쌍한 나를 위해 값싼 동정을 베푸는 걸로밖에 안 보였거든요. 그런데 웃긴 건 제가 때린 그놈이 엄청 부러웠다는 거예요. 고작 어머니 등 뒤에서 훌쩍거리기나 하는 그놈이 말이죠."


그가 말을 잠시 끊고는 생각에 잠긴듯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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