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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죄를 지은 사람의 몸부림

도스토앱스키 '죄와 벌'을 읽고

by 길거리 소설가

도스토앱스키 '죄와 벌'을 읽고


어릴 때, 집에는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동전이 생기면, 그 저금통에 저금을 했다. 어느 날 과자가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몰래 그 저금통 밑부분을 째고, 동전 몇 개를 훔쳤다. 그리고 목적대로 과자를 사 먹었다. 물론, 가족 누구도 내가 돼지저금통을 째서 과자를 먹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동전을 많이 꺼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칼로 짼 부위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이유 모를 고열에 시달린 나는 그 원인이 양심의 가책임을 느끼고, 지은 죄를 모두 실토했다. 그러자 말끔히 병이 낫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당시 내 나이는 8살이었고, 내가 아는 단어에 '양심'과 '가책'은 없었다. 저금통을 째는 순간에도, 훔친 돈으로 과자를 사 먹는 동안에도, 마지막으로 내 범죄를 모두가 모른다는 사실에 잠깐이나마 안도했을 때도, 가슴 한편에 느껴지는 멍울만이 형용할 수 없는 죄의식을 대변할 뿐이었다.


지금 집에도 동전을 모아두는 큰 통이 있다. 요즘에는 카드를 더 많이 사용하다 보니, 동전을 저금하는 일이 거의 월례 행사처럼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며칠 전에도 300원가량 동전이 생기는 바람에 통에 던져 넣는데 어릴 적, 동전을 몰래 빼고는 혹시나 걸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며칠을 전전긍긍하다가 아팠던 일이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착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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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을 회상하다 보니 1년 전쯤 읽은 도스토앱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책이 불현듯 떠올랐다. 러시아의 대문호의 5대 비극 중 하나인 이 책은 익숙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전개임에도 국내에서 열열한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주인공 라스콜리코프(이하 로자)가 살인을 하고, 시베리아 형무소에 수감될 때까지의 이야기로 죄를 지은 로쟈가 범죄사실을 자백할지 말지 하는 그의 이중적인 심리묘사가 글로 잘 풀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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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는 왜 사람을 죽였나?

로쟈는 같은 동네 살고 있는 노파 알료나(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연히 들른 호프집 옆자리 남자 손님들로부터 알노랴를 죽여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농담을 듣고 자신만이 그 일에 대한 적임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현장답사를 통해 알료나의 동생 리자베타가 특정일에는 집을 비운다(알료나는 리자베티와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동생이 집에 없는 날을 이용해 알료나를 도끼로 죽인다. 그러나 하필 동생 리자베타가 집에 일찍 도착해 로쟈를 마주했고, 로쟈는 자신의 완전범죄를 위해 리자베타 마저 죽인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도주한다.


사람을 죽인 로쟈는 심리적으로 어떤 상황을 겪는가?

로쟈가 처음 알료나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을 때까지만 해 그에게는 '정의'라는 명분이 있었다. 부정으로 부를 축척한 알료나를 죽여 그녀가 모은 돈을 사회가 재분배하면 훨씬 더 이득이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단편적인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최소한 그가 행한 살인행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를 위한 헌신과 봉사의 또 다른 행위 었다. 그러나 아무 잘 못도 없는 알료나의 동생 리자베타를 죽이며, 그의 당위성은 백지화가 된다. 리자베타는 알료냐의 이복동생으로 그녀의 폭압에 순응하는 불쌍한 인물이다. 로쟈의 입장에서는 지켜줘야 하는 인물임에도 순간적으로 자신의 죄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죽인 것이다. 아마, 로쟈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리자베타를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선과 악을 모두 죽인 그는 계속 갈등한다. 자수를 하려는 마음과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계속 공존하며 점차 무너졌다. 특히, 자살하려는 마음 와중에도 그의 범죄를 눈치채고 그에게 자수를 권하는 예심판사의 추궁에 오히려 자신을 더 닫아버리는 모습을 보이며 철저히 이중적인 잣대를 드러낸다.


결국 로쟈의 범죄는 어떻게 발각되는가?

소냐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계모 믿에서 가계를 위해 몸을 팔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인데, 자신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죽어갔을 적, 로쟈의 도움을 받는다(그 당시 로쟈는 이미 살인자였다. 아마, 자신의 죄에 대한 반대급부로 선행을 해서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기 위해 소냐의 아버지를 도와준 것으로 추측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계기로 부쩍 가까워진 소냐에게 로쟈는 모든 것을 고백하고, 소냐는 로쟈를 설득해 결국 자수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형을 살기 위해 시베리아로 떠나는 로쟈를 위해 소냐는 기꺼이 그를 따라 시베리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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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는 로쟈의 또 다른 양심이다. 로쟈는 자신의 죄를 자수하겠노라 소냐에게 고백하고, 경찰서에 가서까지 망설이이다가 경찰서에서 나오지만, 그가 내려오는 층계에서 소냐를 발견하고는 다시 올라가 자수라는 대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로쟈는 끝까지 자신의 죄에 대한 일말의 정의감에 사로잡힘과 동시에 우발적인 살인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관대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소냐의 바람대로 그는 자수하고 말았으며, 그녀는 그가 양심을 외면치 않도록 도왔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고백한 로쟈가 자신의 살인에 대해 진정으로 뉘우쳤는 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소설 말미에 그와 소냐의 청사진이 펼쳐질 것처럼 묘사됐지만 그가 진정으로 살인에 대해 뉘우치는 표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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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은 남자의 감정변화를 잘 풀어낸 '죄와 벌'은 결국 그 남자가 정말로 죄를 회개했는지에 대한 물음은 남겨두었다. 소냐라는 양심 때문에 행동에 대한 책임을 졌을 뿐이지, 살인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간직한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하지만 도스토앱스키는 한 남자의 반쪽짜리 고백을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뉘우침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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