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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우연히 마주한 기억(完)

by 길거리 소설가

"형? 태수 형아니예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마주 오던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오며 말했다. 세차게 손을 흔드는 그를 나는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주춤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나 기억 안 나요? 나 민수예요. 김민수"


이름을 듣자 내 기억 저편에 흩어졌던 조각들이 맞춰지며 그가 누구인지 또렷이 기억났다. 나는 민망함에 그를 와락 안으며 말했다.


"어떻게 지냈어? 지금 건강은 괜찮은 거야?"


그가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제는 아주 건강합니다"


다시 그를 마주한 채,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자 너무 달랐다. 유약하고 깡마른 민수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라는 사실을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내 손은 잡자 그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

3년 전, 나는 사정상 지방에 있는 고시원에 잠시 머물러야 했다. 그 고시원은 꽤 높은 곳에 위치했는데, 무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꽤 시원했다. 짐을 다 옮기고, 고시원 옥상에 올라 땀을 식히며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민수가 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사 오셨나 보네요?"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경계가 심했던 나는 그의 인사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기에 조금 떨떠름하게 답했다. "예, 방금 짐을 모두 옮겼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마디 더 나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에는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었었기에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옥상을 빠르게 내려갔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난 건 이틀 뒤, 식당에서였다. 나는 당시 고시원에 잠시 머무를 목적이었기 때문에 주방도구 같이 보관도 힘들고, 부피도 많이 차지하는 짐들은 져오지 않아서 식사는 모두 밖에서 해결해야 했었다. 그날도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렸는데 내게 옥상에서 말을 걸었던 그가 자리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그가 나를 보지 못했기에 나는 들어가자마자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그를 등지고 앉았다. 그리고 식사를 거의 끝마칠 때쯤에 계산대에서 작은 소란이 들렸다. 잠시 수저를 내려놓고, 계산대 쪽으로 귀를 기울이자 그의 목소리가 들리며 난처한 듯이 식당주인에게 사정하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같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이 곤란해졌다는 사실은 확실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저기, 무슨 일인가요?"


뒤에서 나타난 내가 입을 떼자, 반사적으로 뒤 돌아본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에게 가볍게 목례하고는 점원에게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점원이 손님 카드가 안 돼서 외상이 되는지 물어보고 있던 참이라 답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변명했다.


"며칠 전에 입주하신 고시원 분이시죠? 제가 카드를 착각해서 잘 못 들고 나왔어요. 고시원에 다른 카드가 있어서 잠시 나갔다 온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네요"


충분히 짐작했던 상황이라, 나는 지갑을 꺼내 그의 식대까지 지불했다. 연신 내게 미안하다고 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다독이며 우리는 어색하게 고시원까지 걸었다. 아무 말 없이 걷던 중 그가 내게 몇 호에서 사냐고 물었고, 내방 호수를 대답하자, 그가 놀라며 자신의 옆방이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사실은 나도 조금 놀라 물었다.


"내가 이사한 날에 꽤 시끄러웠을 텐데? 몰랐어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거의 낮에는 고시원 지하에 있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해서 방에 잘 없고, 밖에도 잘 안 돌아다니는 성격이라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그가 공부를 한다는 말에 내가 물었다.


"무슨 공부하세요?"

"공무원 준비 하고 있습니다"


그 나이대 청년들이 으레 그렇듯 그도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나이를 물었다.


"실례지만 나이가 몇 살이에요?"

"저는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그의 대답에 적잖이 놀라 움찔했다. 그도 내 반응을 의식했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나이에 비해 조금 어려 보이죠?"


나는 솔직히 답했다.


"솔직히 저보다 10살은 어려 보이셔서, 아직 학생인 줄 알았어요. 정말 동안이시네요"


그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이래 봬도 저는 군대까지 다녀왔습니다. 행정병이기는 했지만요"


그의 농담에 나도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단순히 옆방에 살아서라기보다는 그와 나의 취미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가끔 술이라도 한잔 기우는 날에는 같이 영화나 책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타지의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고시원에 입주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를 즈음 일을 마치고 들어온 나는 무료함을 달랠 요량으로 그의 방을 두드렸는데, 방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분명 그 시간 대에는 늘 있던 친구라 조금 의아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내 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 흐를 때,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려 나갔다. 그였다.


"형"


평소보다 얼굴이 더 핼쑥하고 창백한 그가 서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형"


계속 말을 잇지 못한 그가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의 울음소리는 어딘가 처연했다.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물을 한 잔 건네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조금 진정이 된 그가 차분히 말했다.


"제가 많이 아프데요"


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나도 소중한 사람을 병으로 잃어본 입장에서 그와의 친분을 떠나 내 주변사람이 다시 병에 걸려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가 아프다고 한 뒤의 말들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내 방 앞에 선 채로 10분이 넘는 동안 대화했다. 나는 주로 위로하고, 그는 자신의 비극에 대해 토로했다. 그와 지낸 지 오랜 기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속으로 그가 얼마나 비관하는지에 대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등을 몇 번 토닥이고 그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과 마찬가지로 일을 마치고 고시원에 도착해서 그의 방을 먼저 두드렸다. 그가 초췌한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문틈으로 책상 위에 쌓여있는 소주병이 보이고, 그에게서 술냄새가 진동했다.


"형, 왔어요"


그가 힘없이 내게 말했다.


"너, 술 마셨어? 몸도 안 좋은데 술을 마시면 어떻게?"


타박하듯이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실소와 함께 조롱으로 답했다.


"어차피 죽을 거 술이나 실컷 먹고 죽으려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단 해보는데 까지 해봐야지 않겠니?".


나는 그의 문을 활짝 열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방에서 담배도 태웠는지 창문 근처에 연기가 자욱했다.


"민수야, 너 몸 아픈 거 어머님께 말씀은 드렸어?" 그는 체념이라도 한 듯,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인 채 좌우로 흔들었다.


"우선, 어머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살 길을 찾아보자"그가 한 번 더 실소를 지으며 소리를 빽 질렀다.


"살 길 같은 건 없어요 형.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죽는 거라고요 고시원도 곧 정리하고 나갈 거예요. 그간 모든 돈이나 원 없이 쓰고 죽을래요. 이제 형도 나가세요".


그는 없는 힘을 쥐어 짜내어 나를 밀쳤고, 그를 더 자극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떠밀리듯 방을 빠져나갔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회사에 연차를 내고, 지방으로 향했다. 민수의 어머님이 지방의 어느 시장노점에서 생선을 팔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언듯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의 어머님 사진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와 닮은 그녀의 어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생선을 손질 중에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내가 손님인 줄 알고, 빠르게 내게 이것저것 권했지만, 나는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어머님, 저는 이민수 군 옆 방에 살고 있는 지인입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갑작스레 찾아온 낯선 이방인의 입에서 소중한 자신의 아들 이름이 흘러나옴에 따른 경계로 보였다.


"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죠?"

"민수가 많이 아픕니다. 어머님 걱정 끼치실 까봐 연락도 못 드리고 있나 봐요. 지금 많이 힘들어합니다"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들고 있던 칼을 떨어트리고는 내 앞으로 불쑥 다가오며 말했다.


"많이 아픈가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가요?"

"저도 의사가 아니라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 병명을 얘기해주기는 했지만 처음 듣는 병이라서요. 제가 여기 온 목적은 민수가 지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있기에 어머님이 가셔서 다독여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선채로 눈물을 흘리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급하게 앞치마를 푸르고, 검은 봉지에 쌓여있는 돈을 주섬주섬 챙겨 나를 따랐다. 터미널에서 맥이 풀린 채로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가 풍기는 생선냄새에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서려있다. 가장 빠른 버스를 예매했음에도 저녁이 다 돼서야 고시원에 도착했다. 그녀와 고시원까지 오는 동안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아들걱정에 가끔 눈물만 훔칠 뿐 꽤나 냉정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고시원 앞에 도착한 우리는 옥상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민수를 마주했다. 고시원 주인은 밖에서 옥상을 올려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몇몇 입주자들도 그 광경을 구경했다. 나는 고시원 주인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여쭙자, 주인은 내게 삼십 분 전에 술에 잔뜩 취한 민수가 옥상에서 자살할 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뒤, 소동을 일으켰고, 그에 놀라서 바로 경찰에 연락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고시원 주인과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민수의 어머님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끊을 놓아버리고 그 자리에서 민수 쪽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얘 민수야. 이 어미가 왔다. 왜 그러니. 이리 내려와서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민수야"


그녀의 절규는 그곳에 있던 모두를 숙연히 만들었다. 하지만 위에까지는 소리가 닿지 않았는지 옥상에서 민수는 여전히 경찰과 실랑이 중이었고, 끝 모를 절규를 하던 어머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한걸음에 고시원 옥상으로 달려가, 경찰과 대치하는 민수에게 소리쳤다.


"야, 이게 도대체 뭐 하는 행동이야? 너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됐어?"


내 외침과 함께 일순간 정적이 흐르며 내게 시선이 고정됐다. 옥상에 올라보니, 민수는 난간에 걸터있고 경찰은 그를 어떻게 하지 못한 채 말로써 설득 중에 있었다. 나는 경찰에게로 다가가 다시 차분히 말했다.


"민수야, 지금 아래 어머님 와 계셔" 민수의 눈이 커지더니 고개를 후렉 돌려 아래를 확인했다.


그의 시선은 이내 땅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고 우는 어머님에 고정됐다. 아래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그곳에 주저앉았다. 바닥만 쳐다본 채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힘을 빼고 앉았다. 경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양 어깨에 팔을 넣어 그를 제압하고, 힘이 빠져버린 그를 들어 1층으로 안내했다. 경찰에 끌려 내려오던 그가 주저앉아 울고 계신 어머니와 마주했고, 그의 어머니는 경찰을 밀치고 그를 껴안고, 목 놓아 울음으로서 아픔을 공감했다. 내가 그의 모습을 본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 소동 이후,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고, 가끔 민수의 소식이 궁금해 전화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나는 다시 고시원을 찾아 주인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으나, 소동이 있던 그날 떠난 뒤로 다시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짐을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그의 어머니 동의를 받아 자신이 처분했노라 답했다. 그리고 그가 기억에서 옅어질 때쯤, 나는 해외로 파견을 나갔다가 최근에서야 한국에 돌아온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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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잡은 그의 손에서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에게 많은 것을 묻지는 않고, 간단히 번호만 교환 한 채 그와 헤어졌다. 그가 내게 연락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날의 소동에 대한 미안함이라 생각한다. 나는 비록 그를 마주해서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약간의 섭섭한 감정도 있었지만, 떠나며 내게 보인 미소로 눈 녹듯 사르륵 사라졌다. 그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정말 힘들일이 있을 때, 주저 말고 내게 연락 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앞날을 축복하며 그에 대한 짧은 소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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