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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봉사의 이유(完)

by 길거리 소설가

과거 친구의 소개로 참석하게 된 작은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그 모임의 회원은 아니었지만, 친구를 비롯해 회원 몇 명과 도안면을 터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참석할 수 있었다. 그 모임은 정기적으로 고아원에 찾아가 청소와 빨래를 하거나, 티 없이 맑은 눈망울을 가진 귀여운 아이들의 선생님이나 친구가 되어주는 봉사 모임이었다. 회원은 약 30명 정도로, 비영리단체치고는 규모가 꽤 컸으며, 그곳 회원 중에는 이름을 알만한 사람도 몇 있었다. 그리고 회원들은 일체 자신들의 선행에 대해 외부에 알리거나, 기사화하는 데에 거부감이 있었다. 나도 친구로부터 그 단체에 가입해 보라고 몇 번을 권유받았으나 그때마다 남을 도울 여유가 없었기에 고사했다. 물론, 당시에는 거의 백수에 가까웠고, 시간이나 충분히 만들어서 낼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애초에 나는 누군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삶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특히 이 모임에 가입하면 노란색 스마일 배지를 받았는데 어디를 가든지 뺏지를 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 뺏지가너무 우스꽝스러웠지만 회원들은 자신들의 선행에 대한 자부심을 뺏지에 투영이라도 하듯이 그 큼지막한 노랗고 둥그런 것를 오른쪽 가슴팍에 달고 다녔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뺏지를 달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는 점도 그 모임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들은 매월 마지막주 주말에 고아원봉사를 마치면, 근처 고깃집에서 월말 회식을 진행했고, 나도 친구의 권유로 참석했다. 다행인 점은 나 말고도 비회원이 몇 명 있었는데, 나처럼 친구 따라온 사람도 있었고, 대게는 회원의 배우자였다. 그럼에도 30명의 회원 중 식사에 참석하는 회원은 그 절반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총 12명이 기다란 식탁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소소하게 그날의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다였다. 그때의 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내 앞에 놓인 고기 더미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가 게걸스레 식사를 비우고 있는데 나와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약간의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내가 수저를 내려놓고 소란스러운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최근에 가입했다는 마흔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저씨와 스무 살 후반의 젊은 모임 회장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러자 그들의 이야기가 좀 더 선명히 들렸다. 그 아저씨의 주장은 명색이 봉사 모임인데, 어째서 이토록 좋은 일들을 외부에 알리려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미 술에 거나하게 취한 그는 젊은 여자 회장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회장이 상처 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회장을 쳐다봤는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봉사는 우리 스스로 남을 가여워하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하는 것이지 남들에게 알리는 게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당신은 이제까지 공명심 때문에 우리를 따라다녔던 겁니까?" 그녀의 갑작스러운 일갈에 그의 표정은 울그락붉그락거리더니 앞에 놓인 잔을 단숨히 들이켜고는 말했다. "나도 좋은 마음으로 봉사한 겁니다. 다만, 그 좋은 마음을 남들도 알면 더 좋지 않겠냐는 말이지요? 제 말이 어디 틀렸습니까?" 별안간 그는 다른 회원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일부 회원은 동요하는 듯 보였지만, 젊은 회장이 이를 눈치채고 그의 질문에 답했다. "여기에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모두가 선하고 좋은 마음만 있지, 당신처럼 추악한 의도로 아이들을 보러 가는 사람은 없다고요!"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회식 자리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논쟁은 그가 노란 배지를 탁상에 집어던지며 '이깟 모임 때려치우면 그만입니다. 나는 내 선행을 충분히 알릴 수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어디 평생 그 깟좋은 마음이나 가지면서 잘 사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몇 달이 지나고 나는 그 사건을 까맣게 있은 채, 학업과 아르바이트에 하루도 쉴 틈이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점심이나 먹자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배도 고팠던 참이라 흔쾌히 친구가 있다는 식당으로 갔다. 친구는 이미 도착해서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그와 같은 메뉴로 주문하고, 그와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중에 불현듯 그날의 일이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그때, 네가 다니는 봉사모임은 아직도 하고 있어?". 국을 뜨던 친구의 손이 멈추고는 사뭇 진지한 투로 말했다. "응, 하고 있지". 친구는 무심하게 말했다. 나도 더 물을 게 없었기에 다시 식사하려는 중에 친구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 봉사 모임 만들었더라". 친구의 그 한마디에 흥미를 느끼고 캐물었다. "봉사 모임?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뉴스에 났던데? 우리처럼 고아원에 가서 봉사하는 모임인가 봐, 알고 봤더니 그 아저씨는 대학교 교수인데 정계에 진출하려고 여기저기 줄을 대나 봐 봉사도 그것 때문에 시작한 거고 말이야.". "그런 내용도 뉴스에 나와?". "아니, 방금 한 말은 우리 회장이 말해줬어. 그 아저씨는 회장 지인 소개로 우리 모임에 들어왔던 거였는데, 그날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회장이 분해서 그 지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나 봐. 지인이 얘기해 줬데." 나는 그 아저씨의 추진력과 실행력에 감탄하며 친구와의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나는 학업을 마치고 잠시 해외에서 공부한 뒤에 기자가 되어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햇수로는 9년 만이었다. 시간이 오래 흘러 그런지, 살던 곳은 많이 변해있었다. 추억은 뒤로하고, 직장에 출근해서 내 첫 업무를 받았다. 보통 신참들은 연예나 사회면의 재미없는 뉴스들을 주로 맞기지만 다행히 나는 해외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정치부를 담당하게 됐다. 내 선임은 내게 '강민성'이라는 인물에 대해 인터뷰를 해오라 지시했고, 나는 첫 인터뷰 상대에게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대망의 인터뷰 날이 오고, 그가 있다던 커피숍으로 향했다. 나는 커피숍 문간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가 받으며, 통창 근처의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서 그랬는지 카페 안은 나처럼 비에 젖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를 보고 그는 자신의 손수건을 내어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강민성입니다. 백제일보 기자님이시죠.?". 나는 그에게서 손수건을 건네받고 이리저리 묻은 비를 털어내며 말했다. "네,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희 선배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태성이라고 합니다". 나는 준비해 간 명함을 주머니에서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도 속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그의 명함을 받고, 천천히 그를 올려 보았다. 그런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10년 전에 젊은 회장과 쌍수를 들고 싸운 그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대번에 알아봤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그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 정치에 대해서는 해외에 있을 때도 뉴스를 통해 틈틈이 챙겨봤기에 그와 대화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인터뷰가 순조롭게 끝날 무렵에 그가 갑자기 분주해지더니 갈색 서류 가방에서 프린트한 뉴스 기사 몇 개를 내게 보여줬다." 아 기자님, 제가 이 얘기를 안 드렸네요" 나는 호기심에 뉴스들을 받아 든 채 찬찬히 살폈다. "이 뉴스들은 제가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봉사단체에 관한 기사입니다" 나는 속으로 그가 참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 봉사라는 게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데 말이죠. 제가 그렇게 회원들한테 떠벌리고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누군지 모르겠는데 꼭 기자들이 이렇게 와서 기사화하네요" 그의 말을 거의 흘려듣고 나는 그가 준 기사에 집중했다. 내용 중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그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일도 남이 알아야 좋은 일이 되는 거죠. 봉사하신 내용도 제가 기사에 잘 녹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닙니다. 이 뉴스는 그냥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리는 겁니다. 굳이 기사에 안 넣으셔도 되는데, 꼭 넣어야 하신다면 제가 굳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씁쓸한 뒷맛만 남긴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고,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빠져나갔다. 카페를 지나려 발걸음을 옮기자, 카페 밖 통창 건너로 보이는 그가 내게 보인 기사들을 하나씩 정성스레 모으며 구겨질세라 천천히 가방에 넣고 있었다. 나는 그를 한 참을 쳐다보다 고개를 몇 번 내젓고는 앞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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