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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고수레(完)

by 길거리 소설가

친구 세명과 야외테이블에서 고기와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던 중, 친구 한놈이 갑자기 ‘고수레’라고 소리를 치더니 고기를 집어 멀리 던졌다. 술도 많이 먹지 않았기에 그 친구의 기행이 하도 이상해서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왜 그래?"


그러자 그 친구가 소주를 큰 잔에 따라 마시더니 웃으며 답했다.


"너네 들이 봐도 조금 그렇지?"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앞선 친구를 따라 고기를 멀리 던져버리고, 술도 잔에 가득 따라 같은 방향으로 던지며 '고수레'라고 크게 외쳤다. 나는 이따위 민간신앙에 질색했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테이블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친구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마에 차갑고, 뜨거운 무언가가 '탁'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내가 흡연하는 광경을 멀찍이 지켜보던 친구 놈들이 가게가 떠나갈세라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 친구들이 왜 웃는지 몰랐다. 하지만, 곧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이마에서 콧등으로, 콧등에서 인중을 지나 내 입술로 내려와 입맛을 다시던 내 혀에 닿은 액체가 새똥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제야 친구들이 나를 보고 박장대소하는 이유를 알았다. 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화장실로 달려가 비누로 얼굴을 문지르고, 만족할 때까지 입을 헹군 뒤에야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친구 한 놈이 놀리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고수레를 무시한 대가다"


그러자 옆에 앉은 친구는 실실 웃으며 내 술잔에 술을 따랐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역정을 내고는 친구가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그러자 내게 술을 따라준 그 친구가 다시 실실 거리며 ‘고수레’에 관한 경험담을 말했다.


# 도깨비밥

1994년, 어느 날 나의 조부는 여느 때와 같이 출근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다른 날과 다르게 그날은 더 정신없고 바빴는데 그날 새벽에 회사로부터 오후에 예정되었던 미팅이 오전으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던 새벽 5시에 벌떡 눈이 뜬 조부는 짜증 낼 틈도 없이 거실 의자에 앉아 꼼짝없이 관련서류를 빠르게 숙지했고, 조부와 같이 일어난 조모는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식사준비에 허둥지둥거렸다. 그 와중에 어렸던 우리 엄마(약 5살에서 6살 때)는 그날따라 조부에게 안기며 칭얼거렸다고 한다. 어린 딸의 귀여운 투정도 평소와 같으면 넘어갔을 일을 그날따라 곤두선 신경 탓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고 했다. 딸아이를 물리고, 다시 서류뭉치에 시선을 고정하자 괜스런 짜증이 몰렸는데 마침 조모가 아침준비를 끝내고 남편을 불렀다. 조부는 뭐라도 먹자는 심정으로 6시도 안 돼서 식탁에 앉았다. 평소라면 7시쯤 일어나 여유 있게 식사했겠지만 오늘은 부릴 여유가 없어서 국그릇에 코를 박고 대충 밥을 말아먹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싱크대 옆에 작은 그릇 위에 반찬 몇 가지가 놓여있음을 발견했다. 조부는 자신의 아내가 또 도깨비밥인지 뭔지를 떼어놓았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역정을 냈다. 평소 교회를 다녔던 조부였기에 아무 의미도 없는 아내의 행동에 대해 평소에도 못 마땅했으나 그냥 참고 살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당겨진 미팅, 숙지해야 할 많은 내용들, 늦지 않아야 하는 부담감, 칭얼거리는 딸, 거기다 평소에 탐탁지 않았던 이상한 민간신앙까지, 그가 감당해야 할 짜증들이 모두 그날 아침에 일어났던 것이다. 조모는 그의 그런 모습에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며 접시를 그가 보이지 않은 곳에 치워두었고, 화내지 말고 출근하라고 다독였다. 조모의 반응에 괜히 미안해진 그는 머쓱해하며 자동차에 올라 출발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회사에 가려면 한강을 건너야 했기에 그곳이 막히기 전에 서두르기 위해 자동차를 밟았다. 차를 타고 20분쯤 달렸을 때, 자동차 앞 유리창을 가득 채운 도깨비 얼굴이 갑자기 번쩍 하고 나타나더니 1~2초 후에 사라지곤 차가 그대로 멈춰 버렸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차가 멈춰 당황한 그는 시동을 걸기 위해 애꿎은 열쇠만 돌리고 또 돌렸다. 그렇게 15분쯤 자동차와 씨름했지만 답이 보이지 않자 결국 차를 그대로 둔 채로 근처 공중전화를 찾아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도로 한복판인데요. 갑자기 차가 멈춰서 가지를 않네요. 보험 부르고 하면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직장상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조부였기에 한없이 수그리고는 지금 상황을 토로했는데, 상대방은 오히려 당황을 하더니 전화 건너로 급하게 그에게 말했다.


-“오대리, 자네 출근을 OO대교로 하지 않나?”. 상대의 이상한 물음에 조금 의아했지만 조부는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과장님. OO대교로 출근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거기 가기 전에 차가 멈춰버렸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상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네 아직 뉴스를 못 들은 모양이구만, 오늘 미팅은 취소됐고, 오대리도 일단 집에 가서 쉬면서 대기하게, 아주 큰일 날뻔했어” 조부는 아직도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반문했다.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아니, 일은 회사가 아니라 오대리가 매일 같이 넘어오던 그 OO대교에 생겼어, 거기가 5분 전에 무너졌네”. 상대는 담담히 OO대교가 무너졌다고 답했다.


조부는 깜짝 놀라 그에게 반문했다. “거기가 무너졌다고요?”

-“그래, 지금 뉴스에서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왔다고 하더군, 아무튼 사장님도 출근 안 한 직원들은 집에서 대기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니 오대리도 집에서 대기하고 있게”.


조부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고, 차로 돌아와 라디오를 켜자 어느 채널을 돌려도 OO대교 붕괴사고만 뉴스에 나왔다. 그는 가만히 차에 앉아 라디오에 귀 기울이는데 그의 차 옆으로 수십대의 엠블런스와 소방차가 지나갔다. 그제야 그는 사고를 실감했다. 그런데 좀 전까지만 해도 걸리지 않던 시동이 덜컥 걸렸다. 차가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바로 차 머리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그의 아내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OO대교 붕괴 사고 뉴스를 봤던 것이다. 조모는 멀쩡히 살아 돌아온 조부를 보며 눈이 휭둥그레 한 채로 그를 꽉 껴안았다. 그날 이후, 도깨비밥은 조부가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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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른 친구는 자신도 그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며 말했다.


#고수레

땅꾼이었던, 증조부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산타기를 즐겨하셔서 그대로 땅꾼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약초를 캐러 갔을 때, 그와 동행한 옆집 아저씨로부터 약초를 길러준 땅에 대해 늘 예의를 갖추고 가진 것이 없어도 꼭 얼마큼은 산에 나누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증조부는 점심식사 할 때, 주먹밥 일부를 늘 산에 떼어주며 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조부가 제법 땅꾼 티가 날 때쯤이었다. 그날은 가을과 겨울의 어느 중간쯤 머물던 쌀쌀한 날씨였다. 증조부는 늘 하던 대로 옆집 아저씨에게 약초를 캐러 가자고 말했지만, 아저씨는 날씨가 좋지 않다며 거절하고, 증조부에게도 쉬라고 권했다. 하지만 산타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고, 왠지 그날만큼은 꼭 산에 올라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있었기에 아저씨의 걱정 어린 조언을 무시한 채 홀로 산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예상이 적중한 냥 비싼 약초들을 연거푸 발견하며, 내심 따라오지 않은 옆집 아저씨를 조소했다. 증조부는 날이 어둑해지는 것도 까맣게 잊고 산을 더 올랐다. 그가 산을 오를수록 그의 망태기에는 값비싼 약초들이 쌓여만 갔다. 그가 망태기를 보며 뿌듯해하기도 잠시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은 베테랑이라 자부하던 증조부를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밝았을 때까지만 해도 거침없이 올라왔던 길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날씨는 점점 쌀쌀해지다 못해 추워지고 있었다. 무서운 마음에 망태기를 고쳐 메고 올라온 길을 더듬어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같은 곳만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시간을 오르락내리락했는지 그의 등뒤에는 이제 식은땀마저 흐르며 떨어졌던 체온이 더 떨어지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건, 어둠 속에서 들리는 온갖 동물들 소리와 꼭 귀신이 나올 것 만 같은 분위기였다. 결국, 증조부는 더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낙엽을 샅샅이 모아 무덤처럼 쌓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추위를 이기려는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바람까지 불며 애써 모은 낙엽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춥고, 배고픈 증조부는 자신이 여기서 곧 죽겠구나 싶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망태기를 끌어안고 몇 개 남지 안은 낙엽에 의지하며 누웠다. 그리고 점점 옅어가는 의식을 붙잡을 틈도 없이 잠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다시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해가 중천에 뜬 뒤였다. 비몽사몽 한 채로 눈을 뜨자 옆집 아저씨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어이, 김 씨 괜찮아? 어제 여기서 잔 거야?”


증조부는 힘겹게 답했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거죠?”


아저씨는 증조부께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전날 아저씨는 증조부를 그렇게 보내고, 막걸리를 마시고 낮잠을 잤다고고 한다. 그런데 꿈에서 웬 산짐승들이 증조부를 둘러앉아 자신의 체온을 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가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어둑해져 증조부가 당연히 하산했을 거라고 보고, 집으로 찾아갔는데 증조부의 노모만 덩그러니 평상에 앉아 오지 않는 아들을 울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자 당장 산에 올라 증조부를 찾으려 했지만, 노모가 ‘산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냐’며 울면서 말렸다고 했다. 그렇게 증조부 집에서 노모와 함께 뜬눈으로 지새운 아저씨는 새벽 동이 트자마자 그를 찾기 위해 산에 올랐다. 하지만 오전 내내 그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시선이 닿은 곳에 이상하게 산짐승들이 모여있어서, 어제 꿈을 상기하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오자 산짐승들은 인기척에 놀라 달아났고, 그 아래 증조부가 웅크리고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증조부는 하염없이 울며, 동물들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연거푸 말한 뒤, 정상을 향해 큰 절을 두 번 올리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그날 이후 별 탈없이 산에서 약초를 캐며 살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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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이야기를 다 듣자, 더 이상 그들의 행동을 욕보일 수는 없었다. 나도 내 앞에 있는 고기를 들어 훽 던져버리고 ‘고수레’라 크게 외쳤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른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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