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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휴가가는 날(完)

by 길거리 소설가


거짓을 말하는 자의 숨소리는 동물의 사체를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의 헐떡거림과 비슷했다. 그와 내가 만난 지는 불과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말을 마칠 때마다 눈알을 굴리며 남을 살피는 버릇이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객차의 스피커에서 곧 도착할 목적지가 ‘대전’임을 알려왔다. 그러자 내 맞은편에 앉은 그 남자는 눈을 다시 번뜩이더니, 자신이 대전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업을 했는지 제멋대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침까지 튀어가며 말하는 그의 열정에 나는 두손 두발을 들고 고개만 끄덕이며 모든 대답은 함구했다. 문득, 그의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릴 때마다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홀로 기차를 탔던 나 자신을 탓하며 후회했다.


몇 달 전, 아내와 나는 휴가를 맞춰 같이 지방 휴양지로 여행을 계획하고, 오늘 날짜로 기차부터 숙소까지 모두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며칠 전, 우리의 휴가 동안 가기로 했던 휴양지 인근에 태풍이 접근 중이라는 일기예보가 연일 방송에 나왔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아내는 그러지 못했는지 상의도 없이 기차와 숙소 예약을 모두 해지하고 나에게 통보했다. 당시에 나는 휴가를 위해 일을 몰아서 하는 바람에 꽤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통보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했다. 나는 아내에게 상의 없이 예약을 취소한 행동에 대해 격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아내는 나를 달래기 위해 애썼지만, 나는 애써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휴대전화로 다시 기차를 예매하고(이때, 나는 다른 사람들도 아내처럼 태풍 때문에 기차표를 많이 취소했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대와 마주 볼 수밖에 없는 기차의 중간 자리를 예매했다), 숙소도 예약했다. 아내는 목석처럼 서서 꼼짝없이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그럼, 그날 날씨를 보고, 만약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다음 날 같이 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리고 오늘, 아내와 냉전 중이었기에 소파에서 새벽을 맞이한 나는 부리나케 씻고, 어제 싸둔 짐을 챙겨 여행길에 나섰다. 비록, 혼자 떠나는 여행이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서 빨리 시원하게 탁 트인 모래사장과 그 너머 보이는 지평선 그리고 너울지는 파도와 파도가 배달하는 약간 비릿하지만, 정감 나는 바닷냄새를 맡고 싶었다. 새벽이라고 해도, 해가 일찍 뜨는 여름이라 6시가 가까워지자, 태양 빛이오르는 것처럼 주변이 밝아졌다. 다행히 구름은 적당했고, 비가 올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태풍은 더더욱 그랬고, 말이다. 절로 나오는 콧노래에 맞춰 기차역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다. 휴가철 기차 플랫폼은 전석 매진의 위엄을 보이는 듯 나와 같은 휴가자들로 북적거렸다. 모두 기상청이 틀렸다고 배팅한 승부사들이었다. 열차가 들어오고, 내 자리에 앉았다. 아직 맞은편 상대는 오지 않았는지 자리가 깨끗했다. 이내, 손목시계를 보자, 출발까지 10분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차창 밖에는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이 서로에게 인사해 주느라 바빴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곧 해방될 이곳 지겨운 도시의 풍경이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뭉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쓸데없는 감상에 너무 취해있을 때, 내 앞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작은 키에 얼굴과 몸 그리고 팔, 다리 모두 통통했다. 옷은 여름 정장 차림이었는데, 얇은 안감이 정장 색에 비해 시원해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그의 머리에는 베이지색 중절모를 쓰고 있었지만, 머리에 꽉 끼어 답답했던 것인지 앉자마자 벗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는 중절모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객차의 모든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휴가철에 맞춰 가벼운 옷차림인 데 반해 그 남자는 혼자 다른 세상 사람인 것처럼 정장을 입고 있으니 퍽이나 우스운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마에 짓게 난 중절모 자국은 그의 풍채와 더불어 꼭 장난감 오뚜기를 연상시켰다. 나는 속으로 웃고, 시치미를 떼고는 창밖을 바라봤는데, 나와 마주 보고 앉은 그가 열차가 떠나자 감개무량한 듯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야, 드디어 기차가 떠나내요. 선생님”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청자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그의 이마를 보지 않으려고 억지로 창을 바라봤고, 내 옆에 앉은 이와 그 맞은 편에 앉은 이는 모두 핸드폰에 얼굴을 파묻은 채, 귀때기에는 뭘 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자, 조바심이 났는지 이전보다 더 큰 소리로(물론, 객차 안은 이미 왁자지껄했기 때문에 그가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한다고 해서 민폐를 끼치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까의 말을 되풀이했다. 듣다못한 내가 그의 말에 답했다.


“그러네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선생님은 어디로 가시나요? 복장이 아주 멋지십니다. 산으로 가시나요?”


나는 누가 봐도 산에 가는 복장이 아니다. 내가 등산객이었다면 최소한 바지라도 긴 바지를 입었을 것이다. 그의 말에 조금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


“아니오. 저는 바다로 갑니다”


넉살이 좋은 그는 연신 ‘헤헤’거리며, 입가에 기분 나쁜 웃음을 연발했다. 나는 다시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이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5시간 정도는 조용하게 갈 수 있다면 견딜 만했다. 아니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말문이 텄다. 내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음에도 이미 그는 나를 말동무로 간택했다.


“선생님은 휴가를 받아서 바다로 가신다고 하셨죠?”

“네” 나는 최대한 짧고, 차갑게 답했다.


하지만 상대는 오히려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시군요. 댁은 어디세요?”

“저는 OO 구에 삽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그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연신 엉덩이를 들썩거리더니 오른손을 쫙 펴서 자신 가슴팍을 두세 번 내려치고는 답했다.


“저도 OO 구에 삽니다. 여기서 같은 주민분을 만나네요”


나는 OO 구에 3만 명이 거주 중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친한척하는 그의 품행이 슬슬 짜증이 나는 참이라 한가지 꾀를 내어 물었다.


“어디 사시는데요?” 그러자 그가 OO 구의 OO 아파트에 산다고 답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그에게 말했다.


“아 저는 그 반대편인 OO 빌라에 살고 있어요”


내 의도는 어차피 같은 동네도 아니니 그만 대화하자는 의미였지만, 내가 사는 곳을 밝혀버린 게 이내 실수였음을 짐작했다.


“네? 정말 OO 빌라에 살고 계신가요?”

“네”

“이게 무슨 우연이야. 거기는 제 동생이 살고 있는 빌라입니다. 며칠 전에도 갔었는데. 그 앞에 마트 있고, 돌면 치킨집 있고 거기 맞죠? 우와 저랑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가 보네요”


대화가 진전이 되자 내 옆에 앉은 남자와 그 맞은 편에 앉은 여자까지 이쪽의 대화가 거슬렸는지 곁눈질로 힐끗 봤다. 기차는 출발한 지 30분도 되지 않았기에 빨리 그가 다음 역에서 사라지기만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아, 혹시 제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한번 맞춰보시겠어요?” 그의 물음은 빌어먹게도 정중했다. 아니 모든 대화가 정중하다 못해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만 같았다. 차오르는 짜증을 최대한 억누르고, 답했다.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실망한 그의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잠시였을 뿐 다시 그의 눈이 반짝이더니 속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 건넸다.


“저는 무역업을 조그맣게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무얼 하든지 간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명함을 받자마자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 같은 동네 주민이랑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거의 복권이 당첨되는 확률이겠죠?”


그의 말이 딱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도 5천 원에는 몇 번 당첨됐으니 말이다. 나는 그와 말하기 싫다는 의미로 더 이상 그의 말에 어떠한 동의도 하지 않았다. 그때, 대전으로 가고 있다는 객차 안내원의 안내가 나왔다. 그러자 그가 창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쓸 때 없이 목소리를 깔고 자신이 대전에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떠들기 시작했다. 그의 지겨운 무용담이 끝날 무렵, 그러니까 기차에 탄 지 꼬박 2시간이 지나고 도저히 버티고 앉아 있기 힘들어 화장실이 있는 칸으로 가볼까 생각했지만, 그곳 역시 만원이라 이내 포기하고는 다시 기계처럼 그의 말에 고개나 끄덕이고 있을 때, 그가 자신의 몸을 앞으로 쭉 내밀더니 비밀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혹시 큰돈 버실 생각 없으십니까?”


지금까지의 그의 무용담은 나를 꾀어내려는 술책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나는 대놓고 자신을 드러내는 그에게 연민이 가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자, 관심도 없는 얘기에 ‘네’라고 답했다.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지은 표정은 10년 만에 집에 돌아온 아이를 맞이하는 어미의 표정이었다. 그가 내게 비밀스러우면서도 자신 있게 소곤대던 ‘큰돈을 벌 방법’은 이랬다. 자신이 세계를 바꿀만한 아이디어가 있는 회사에 투자를 조금 해뒀는데, 최근에 실험이 성공하면서 대박이 날 예정이라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을 싸게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얼마에 사셨는데요?”

“저는 1천만 원 주고 샀습니다”

“그래서 얼마에 파실 건데요?”

“1억 원에 팔려고 합니다. 어디 가서는 10억 원, 100억 원을 준다고 해도 안 팔 테지만, 선생님은 같은 지역구에 살고, 또 내 아우와 같은 주민이며, 이렇게 우연히 기차에서 만났으니 팔겠다고 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사고 싶으셔도 못살 거예요”


그는 진지했다. 혹시나 그가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라도 있지 않겠느냐고 잠시나마 생각했던 나를 책망하며, 그에게 답했다.


“그렇게 큰돈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분께 얘기해 보세요”


그는 못내 아쉬운 듯 말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이거 정말 큰 기회인데…. 후회하실 텐데” 나는 철저히 함구했다. 그도 이제 지쳤는지 더는 말하지 않고,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가 내리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적지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조용히 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드디어 기대하던 목적지에 내렸는데, 나는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플랫폼을 지나 밖으로 나가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커먼 구름과 우렛소리였다. 그리고 가끔 번쩍대는 하늘은 이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태풍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맞았다. 기차역 플랫폼 안에는 비 때문에 나가지도, 그렇다고 다시 열차에 타지도 못하는 나 같은 패잔병들로 북적였다. 여기저기 전화 소리, 싸우는 소리, 한탄하는 소리가 섞어 들렸다. 갑작스러운 피곤함에 빨리 숙소에 들어가고자 그들을 뚫고, 나는 꿋꿋이 택시에 올랐다. 택시에 오르는 과정은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험난했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정말로 모진 풍파를 뚫고,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위해 기다렸는데, 호텔 로비 통창 넘에 밖에는 못 박힌 나무판자들이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방창문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카드키를 받아 방으로 올랐다. 방은 2층에 위치한 베란다가 딸린 원룸이었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면 바다가 펼쳐지고, 저녁에는 일몰도 볼 수 있지만 지금은 거센 태풍에 흩날리는 나뭇입 밖에 보이지 않았다. 2박 3일 휴가 내내 저 문을 열일을 없을 것 같았다. 오랜 여정 끝의 허무함은 허기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아침부터 점심, 그리고 지금 시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주린 배를 붙잡고, 호텔에 딸린 식당으로 가자, 태풍으로 인해 식자재 수급이 어려워 휴업한다고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그 휴업일도 딱 2박 3일이다. 나는 프런트로 가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는지 물었고, 건네받은 몇 군데 식당 중 지금 실제로 배달이 되는 곳은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자장면만 파는 중국집뿐이었다. 다행히 고량주도 팔았기에 짜장면에 고량주를 주문하고, 답답한 숙소에서 처량히 앉아 홀로 잔을 기울였다. 평소에 술을 즐겨하지 않기에 술 몇 잔에 금방 취기가 올라 아내 생각이 났다. 갑작스레 울컥한 마음에 전화를 들어 아내에게 걸었다. 그러고는 기억 나지 않는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누군가 방문을 시끄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골이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방문을 열자 아내가 서 있었다. 술이 확 깼다. 아내는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짜증을 내거나 구박하지도 않았다. 덤덤히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더니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러게, 내 말 들었으면 좋았잖아. 이제 비는 그쳤어. 나가자” 아내가 베란다 문을 활짝 열자 정말로 바다에 비친 자글거리는 햇살이 눈부시게 내게 들어왔다. 갈매기는 여기저기 날아들며 행락객의 간식을 받아먹고, 파도는 너울을 타고 내게 향기를 선물했다. 그리고 아내는 만족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이 맑아지며, 들뜬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내 몸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베란다 전체가 보일 정도로 내 몸이 떠올랐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나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불을 켜둔 탓에 주변은 밝았지만,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오른손에는 휴대전화를 꼭 쥔 채로 바닥에 딱 붙어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자 마침 아내가 문자를 보냈다. ‘내일 아침 기차로 갈게, 정말 못 말려’ 술에 취해 아내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온다는 걸로 보아 싸우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다 불어 터진 절반이나 남은 자장면을 대충 밖에 치워 놓고, 침대에 올라 아직 남은 취기의 힘을 빌려 잠을 청했다. 그리고 비록 비는 오지만, 아내와 함께 보낼 행복할 날만 있을 휴가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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