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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매미 알아요?

by 길거리 소설가


"매미 알아요?"

"매미요?"


상대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길래 나는 그의 질문을 그대로 반문했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해서 그랬는지 그 남자는 다시 내 눈치만 보며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연거푸 마신다. 이곳 카페에는 우리 테이블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날씨가 덥다면 덥고, 춥다면 추운 환절기라 카페에서는 냉방을 하지 않는지 손님들의 열기로 후끈거린다. 나는 결국 숨 막히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담배라도 필 요량으로 밖으로 나서며, 그에게 꼼짝 말고 있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나온 밖의 공기는 신선했다. 내 기분이 좀 더 좋았다면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을 것이다.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한대 물고, 길 모퉁이를 돌아 전봇대에 기대듯이 서서 불을 붙이고는 '후'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그렇게 나를 빠져나간 연기는 정말 연기처럼 사라졌다. 흰 연기가 순식간에 없어지는 모습을 보니, 답답함이 나를 다시 집어삼켰다. 몇 번 더 내 눈으로 사라지는 연기를 보고는 담배를 눌러 끄고 다시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는 여전히 답답했다. 자리로 돌아가자 남자는 두 번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를 다시 내려보며 천천히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겉옷을 벗어 옆 자리에 걸어두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자리에 있는 두 잔의 커피 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아마, 자신만 마시기 미안했는지 내 것도 산 모양이다. 나는 거절하지 않고, 고맙단 말 없이 그가 건넨 커피잔을 받아 절반을 마셨다. 속에 시원한 무언가가 꽉 차는 느낌이 들자 성가셨던 답답한 느낌이 조금 풀리며,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나는 그 남자의 물음을 상기하고는 퉁명스레 다시 물었다.


"아까, 매미 어쩌고 했는데 뭔 말하려는 거예요?"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어지간히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고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러자 남자도 커피 한 모금하더니 씰룩거리던 입을 뗐다.


"영선 씨, 매미의 수명을 알고 계세요?"

"나야 모르죠. 말 돌리지 말고 빨리 해요"


그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시는군요. 매미의 수명은 7년입니다. 정확히는 7년 하고도 5주를 더 살지요. 제가 왜 매미의 수명을 7년과 5주로 나눴는지 모르시겠죠? 매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꼬박 7년이 걸린다. 아, 그러니까 매미는 7년 동안 유충의 형태로 빛 하나 들지 않는 땅 속에서 살다가, 성충이 되면 딱 5주 동안 밝은 세상에서 살고, 죽습니다. 그래서 7년 하고도 5주라는 말을 썼던 겁니다. 매미들은 7년을 기다려 세상에 나옵니다. 어쩌면 우리들 인생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영선 씨도 저도 모두 매미 유충처럼 빛 하나 없는 흙과도 같은 삶 속에서 헤매며 기다리면 결국 매미처럼 세상의 빛을 볼 날이 있다고 봅니다"


기가차는 그의 말에 헛웃음이 나와 그를 노려보며 답했다.


"아씨, 당신 때문에 하마터면 웃을 뻔했네. 지금 그게 할 소리예요?"

"네?"


남자가 당황하며 물었지만, 나는 그를 쏘아붙였다.


"지금 자기만 믿고 투자하라고 해서 1억 원이나 당신이 말한 주식에 샀는데 지금 반에 반토막이 났어요. 그런데 뭐? 매미유충? 그럼 나보고 매미 유충처럼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예요? 말 갖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계시네 지금 내가 분명 투자 안 한다고 했죠? 그런데 뭐? 빠지면 원금 돌려줄 테니까 투자하라고? 나는 오늘 내 원금 받으러 온 거예요. 당신 헛소리 들으러 온 게 아니라"


내가 점점 목소리를 높이자, 그뿐만 아니라 우리 테이블 주위의 사람들 까지도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핏대를 세워 그를 몰아갔다. 그는 이 상황을 모면할 말을 생각하는지 눈알만 굴려댔다. 내 얘기가 끝났음에도 그가 답이 없자 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 돈은 언제 줄 거예요?"

"저 그게.."


그는 당황했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들어 땀을 닦았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흥분을 가라앉히려 남자 앞에 있는 커피를 들어 벌컥 들이켰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진정됐다. 나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다 필요 없고, 내 돈 손실 본 7천만 원 언제 줄 건지 약속 정하고 가요"

"저 그게..."


그는 고장 난 장난감처럼 같은 말과 같은 행동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미안합니다' 한 마디를 남긴 채 테이블을 내 쪽으로 확 밀더니 카페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가 밀어버린 테이블 덕분에 나는 바로 일어서자마자 다시 주저앉는 우스운 꼴을 반복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앉아버렸다. 앉은 채로 천장을 보며 한 숨을 푹 쉬자, 다시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보자 나와 눈이 마주친 몇 명이 화들짝 고개를 숙였다. 나는 지금 이곳 카페에서 최고의 광대였다. 나를 꽉 잡고 있던 테이블을 다시 앞으로 밀고,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콧 속에 다시 신선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울분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길거리 한복판에서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아, 다시 길모퉁이로 돌아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애꿎은 전봇대만 발로 몇 번 차며 화를 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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