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산은 하나가 아니다
“부장님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까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그래 주면 좋지. 좀 찍어줘. 나도 김 대리 찍어줄 테니까”
남이 봤으면 흡사 장인과 사위의 모습으로 비쳤을 테다. 그래도 정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봤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내려가서 점심만 먹으면, 저녁은 집에서 푹 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부장을 따로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가방에 가져온 짐과 쓰레기를 한데 넣고 어깨에 멘다. 부장은 그런 나를 슬쩍 보더니, 슬슬 내려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바로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분명 부장은 아쉬워 보였지만, 정상에서 40분이나 있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산 직전에 시계를 보니 10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대충 내려가는데 2시간이면 될 것이고, 점심 먹는데 1시간이면 될 테니, 오후 4시 전에는 집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부장과 말없이 한 시간쯤 내려가는데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올라올 때도 산 중턱에 식당은 없었다.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다른 길이 있겠거니 하고 부장을 따라 내려가는 데 집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려오다 보니 벌써 산 초입부에 당도했다. 내가 부장에게 물었다.
“부장님, 산 중턱에 식당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 예약했다던 식당이요”
앞서 걷던 부장이 멈춰서 뒤를 힐끗 보고는 답했다.
“그랬지” 부장의 무심한 대답에 내가 다시 의아해서 물었다.
“그러면 저희 지나쳐 오지 않았을까요? 벌써 산초 입인데 말이죠”
부장이 이제야 내 질문에 의도를 파악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자리에 선 채로 반문했다,
“무슨 말씀인가요?”
부장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김 대리, 아까 산 정상에서 건너에 보이는 돌산 봤지?”
“네, 봤죠”
“우리 거기도 올라갈 거야. 내가 정말 말 안 했던가?”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부장은 내 눈치를 쓱 한번 보더니 다시 걸었다. 애초부터 부장은 산을 하나만 탈 생각이 없었다. 젠장,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거짓말해서라도 부장과 등산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나와버린걸, 나는 차분히 몇 시쯤이면 집에 갈지 계산했다. 저 거지 같은 옆 산을 다시 오르고, 밥 먹고, 내려오면 최소한 대여섯 시간은 걸릴 것이다. 이딴, 예상이 다 무슨 소용일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부장 뒤꽁무니만 쫓아가기로 했다. 유비는 일전에 노인을 강에 세 번이나 엎어 날랐다더니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부장은 내려가다 어느 지점에서 왼쪽으로 길을 틀었다. 부장을 무시하고, 그냥 내려가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으나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틀었다. 다시 시작된 산행은 아직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내 숨통을 조여왔다. 고개를 들어 내가 올라가야 할 길을 확인했다. 앞선 산보다 험하면 험했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망했다’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부장은 통통하고 작은 몸뚱어리로 잘도 올라갔다. 그에 반해 나는 헉헉거리며 힘들어했다. 가끔 부장이 뒤를 돌아보며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한 눈길을 주곤 했다. 하기도 싫은 산행에 따라와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숨이 쌓였다. 내뱉은 한숨으로 열기구 하나를 띄울 때쯤, 정말 산 중턱에 ‘산장식당’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오랜 목조로 지어진 식당이 있었다. 부장은 그 앞에서 잠시 멈추더니 내게 말했다.
“여기야 이따가 우리가 식사할 식당. 꽤 근사하지? 내가 닭백숙으로 예약했으니까 기대하라고” 내 이해심이 원망을 조금이나마 앞서고 있을 때, 부장은 다시 자신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제는 대놓고 요청했다. 나와 함께 하루 만에 정상을 두 번이나 정복하다 보니, 나에게 어떤 동지애와 약간의 부하로서의 책무를 강요하는 듯 보였다. 사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정상에 올랐다는 감동은 이내 더 큰 허기짐으로 다가왔다. 다행스럽게도 부장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사진 몇 장 찍자 급속도로 수척해 보였다. 그는 최대한 정상에 오래 머물러 풍광을 눈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으나. 무거워지는 눈커플은 어쩔 수 없었는지, 자주 완만한 돌을 찾아 앉았다. 그럼에도 그가 입을 열어 내려가자고 할 때까지는 도착한 지 15분이나 흐른 뒤였다. 나는 다시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돌산을 내려갔다. 오를 때보다 몇 곱절은 난이도가 올랐다. 올라올 때, 거슬렸던 돌가루들은 이제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부장은 돌 위를 미끄러지듯 잘만 내려갔다. 나도 그의 모습을 따라 자세를 고쳐 비스듬히 내려갔다. 겨우 돌산을 벗어나 흙을 밟았을 때에는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쌓다. 부장은 이미 저만치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그 산장식당 까지는 족히 1시간은 내려가리라 봤지만, 의외로 30분 만에 도착했다. 부장도 배가 많이 고팠는지, 더 빨리 내려간 게 그 이유였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가 모두 지나 오후 4시에 가까워졌다. 다행히 산장에는 아까와는 달리 사람이 많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미리 주문했다던 요리를 기다렸다. 요리는 미리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20분이나 지나서 나왔다. 뒷다리를 최대한 겹쳐 동여맨 큰 하얀 닭이 절하듯 뉘어 타원형 접시에 오른 채, 식탁에 놓였다. 백숙 주변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함께했다. 부장은 자기 앞에 놓인 백숙을 바로보고 입맛을 다시고 갑자기 ‘참을 수 없구먼’이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막걸리를 시켰다. 내가 알기로 부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몇 년째 술을 안 먹는다고 알고 있었기에 놀라 물었다.
나는 가쁜 숨을 헐떡거리느라 부장의 말을 모두 흘려들었다. 대충 이따 저곳에서 식사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식당은 크지 않았지만,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쪽에서는 닭을 직접 잡는 건지, 계속 닭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산 중턱 나무들 사이에 자리한 데다 닭 모가지 따는 소리까지 울리니 어쩐지 서늘한 게 정이 안 가는 곳이다. 잠시 그곳에서 목을 축인 우리는 다시 거름을 산 정상 쪽으로 옮겼다. 해는 이미 내 정수리를 비추고 있다. 한참 동안 오르자, 정상이 제법 가깝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30분은 더 올라야 했다. 챙겨 온 물도 과일도 모두 떨어지고, 정신력 하나로 돌산을 올랐다. 아내가 호들갑 떨며 챙겨준 등산화가 아니었다면, 벌써 절벽 아래로 나뒹굴었을 것이다. 여전히 앞서가는 부장은 어쩐지 혈기 왕성해져서는 원숭이처럼 돌산을 올랐다. 30년 만의 자유가 그에게 윤활유로 작용했으리라 싶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처져있었다. 산을 싫어하는 기질적인 요인도 있으나, 좀 더 본격적인 이유로는 두 번째 산행 소식을 듣자마자 꺾인 의욕과 말 못 할 허기였다. 분명, 산 중턱에서 식당을 볼 때까지만 해도 입맛이 싹 가셔, 밥이고 뭐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제발 좀 식당에서 뭐라도 입에 욱여넣고 싶은 마음만 남았다. 지금은 산행에 따른 다리의 통증보다 주린 배의 허기짐이 내게 더 크게 다가왔다. 아까보다 더 심하게 뒤뚱거리며 오르는 부장의 두 궁둥짝을 보니, 곧 정상이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돌산이 워낙 가파르다 보니, 그가 아까보다 더 심하게 다리를 위로 내디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주변머리에 맺힌 땀방울이 움직일 때마다 내게 튀었다. 기분 나쁜 물총 세례에 나는 연신 손으로 닦아내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내 시선에서 그가 드디어 우뚝 섰다.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조금 더 힘을 내서 돌가루가 즐비하게 흩뿌려져 있는 언덕을 박차고 올랐다. 가끔은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정상에 올랐다. 부장 옆에 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탁 트인 우리 도시였다. 앞선, 옆 산의 정상에서는 주위를 둘러도 지금 내가 서있는 돌산밖에 보이지 않았었는데, 여기 돌산은 그 너머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이 간사한 것이 어째서 부장이 여기도 오르자고 했는지 약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 이해심이 원망을 조금이나마 앞서고 있을 때, 부장은 다시 자신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제는 대놓고 요청했다. 나와 함께 하루 만에 정상을 두 번이나 정복하다 보니, 나에게 어떤 동지애와 약간의 부하로서의 책무를 강요하는 듯 보였다. 사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정상에 올랐다는 감동은 이내 더 큰 허기짐으로 다가왔다. 다행스럽게도 부장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사진 몇 장 찍자, 급속도로 수척해 보였다. 그는 최대한 정상에 오래 머물러 풍광을 눈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으나. 무거워지는 눈꺼풀은 어쩔 수 없었는지, 자주 완만한 돌을 찾아 앉았다. 그럼에도 그가 입을 열어 내려가자고 할 때까지는 도착한 지 15분이나 흐른 뒤였다. 나는 다시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돌산을 내려갔다. 오를 때보다 몇 곱절은 난이도가 올랐다. 올라올 때, 거슬렸던 돌가루들은 이제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부장은 돌 위를 미끄러지듯 잘만 내려갔다. 나도 그의 모습을 따라 자세를 고쳐 비스듬히 내려갔다. 겨우 돌산을 벗어나 흙을 밟았을 때는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부장은 이미 저만치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그 산장식당까지는 족히 1시간은 내려가리라 봤지만, 의외로 30분 만에 도착했다. 부장도 배가 많이 고팠는지, 더 빨리 내려간 게 그 이유였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가 모두 지나 오후 4시에 가까워졌다. 다행히 산장에는 아까와는 달리 사람이 많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미리 주문했다던 요리를 기다렸다. 요리는 미리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20분이나 지나서 나왔다. 뒷다리를 최대한 겹쳐 동여맨 큰 하얀 닭이 절하듯 뉘어 타원형 접시에 오른 채, 식탁에 놓였다. 백숙 주변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함께했다. 부장은 자기 앞에 놓인 백숙을 바로 보고 입맛을 다시고 갑자기 ‘참을 수 없구먼’이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막걸리를 시켰다. 내가 알기로 부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몇 년째 술을 안 먹는다고 알고 있었기에 놀라 물었다.
“부장님, 다시 술 드셔도 되는 겁니까?”
부장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사탕을 받을 때의 그 천진한 눈빛을 하고는 말했다.
“아니, 안 될걸? 그런데 어떻게 오늘 같은 날 안 마시면 나 같은 술꾼한테는 직무 유기라고, 마침 잔소리하는 마누라도 없고 말이야. 3년 만에 마시는 술이라고”
막걸리는 바로 나왔다. 산 중턱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항아리에 술을 꾹꾹 담아 표주박과 함께 주었다. 나는 얼른 표주박을 들어 부장에게 한 잔 크게 따랐다.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잔을 들어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금세 잔을 비웠다. 그제야 나는 내 잔에 따를 수 있었다.
“아이고, 미안하네, 너무 마시고 싶어서 자 이번 잔부터 건배하고 들지”
부장이 갑자기 눈치를 보더니 표주박을 들어 자신의 잔을 다시 가득 채우고는 잔을 내 앞에 내밀었다. 최대한 그의 장단에 맞춰 건배 후, 나도 잔을 모두 비웠다. 땀으로 빠진 수분이 걸쭉한 막걸리로 채워지는 기분이 들더니 이내 얼굴이 상기되고, 헛웃음이 나오는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부장이 손으로 백숙의 다리 부분을 쩍 하고 떼더니 내 밥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자신은 다시 잔에 막걸리를 채워놓고, 절반을 비웠다. 나는 체면이고 뭐고, 내 앞에 놓인 그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입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아마, 부장은 흐뭇하게 바라봤음이 틀림없었다. 식사는 계속됐다. 부장도 살코기 부분을, 젓가락을 떼서 입으로 가져갔지만, 나처럼 허겁지겁 먹지는 않았다. 부장을 내가 닭다리를 모두 없애자, 이번에는 가슴팍 살을 또 툭 떼서 내게 건넸다. 나는 또 그 닭가슴살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제야 배가 차는 기분이 들자, 괜한 부끄러움에 부장이 잔을 들어 입에 갖다 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 잔을 들어 건배했다. 다시 식사 자리는 차분했다. 부장은 이미 새벽녘에 내게 할 수 있는 얘기는 모두 끄집어낸 것인지 유달리 조용했다. 식사 자리는 예상치 못한 침묵이 오갔다. 직장 상사를 앉혀 두고 말 한마디 없이 먹기만 한다는 것이 어쩐지 죄스러워 내가 아무 질문이나 내키는 대로 내뱉었다.
“부장님, 여기서 산 아래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하지만, 질문하고는 이내 후회했다. 상대에게 빨리 가고 싶다는 인상을 줘버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까처럼은 아니었고, 조금 옅어진 채였다. 부장은 내 질문에도 그저 막걸리를 따라 마실 뿐이었다. 잠시의 침묵 후, 부장이 갑자기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한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는 내려가야 할걸? 여기가 이래 봬도 꽤 중턱이란 말이지”
다행히 부장이 기분 나빠하지는 않아 보였다. 부장은 꼭 기분이 나쁘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옆으로 흘기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고 잔만 쳐다보며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스러웠기에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부장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이번에 가족분들 없으실 때, 무슨 계획을 세워두셨나요?”
그러자 부장의 눈이 번뜩이더니, 생각만 해도 기쁜지 입꼬리가 올랐다. 하지만 바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 적당히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그 모습이 워낙 우스워서 속으로 ‘참 다루기 쉬운 사람이네!’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부장의 입꼬리는 올라와 있었고, 오랜만에 마시는 술 때문에 상기된 얼굴은 이제 분홍빛을 띠다 못해 붉어질 참이었다. 그 와중에 같이 시킨 해물파전이 나오자, 그는 젓가락을 들어 오징어만 골라 먹고 있었다. 몇 개의 오징어 조각이 그의 입으로 들어가서야 내 질문에 답했다.
“계획은 없어. 그냥 편안한 옷을 입고, 거실에서 TV나 보면서 캔맥주나 마시려고, 자네는 아직 자식이 없다고 했지?”
“네, 노력은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는 않네요”
나는 결혼 5년 차지만 아직 자식이 없었다. 혹시, 내게 문제가 있지는 않나 싶어서 검사를 해보았지만, 정상이었고,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내 아내는 그저 아직은 때가 아니겠거니 싶어 별로 조급하지는 않았지만, 내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아이를 안고 모임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편이 헛헛한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우리도 곧 아이가 생길 거야’ 이러면서 생글거리며 웃었다. 부장의 물음에 나는 최대한 아쉬운 듯 답했지만, 역시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따로 덧붙여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 부장이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아마, 내가 뭐라도 좀 더 말할 줄 알고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자네도 아마 아이를 가져보면 알 거야. 작은 것이 커가면서 얼마나 기쁜지를 말이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를 점점 잃어가는 느낌도 들곤 해, 아이가 있으면 가정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으니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부장은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다시 파전을 휘적였다. 나는 남은 닭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쪽 다리를 잡았다. 살짝 부장의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부장의 시선은 오로지 파전에만 꽂혀있었다. 아마 닭을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부장은 파전에 있는 오징어와 몇몇 해산물을 모두 해치우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혼자 살 때,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행동들이 너무 그리워지더라고, 그래서 가족들이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먼저 들었던 생각은 TV를 켜놓고, 파자마 바람에 맥주를 들이켜는 내 모습이었어” 부장은 웃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왜?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실망했나?”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 실망하겠습니까? 다음 주까지 다시 혼자가 되셔서 축하합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표주박에 막걸리를 크게 떠서 그의 잔에 부었다. 부장은 여전히 만족스러운 눈으로 내 일련의 행동을 보고는 종착지인 잔을 들어 단숨에 비었다. 그곳 산장식당에서는 한 시간가량 머무르며, 막걸리 두 되를 비웠다.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됐음에도 부장은 못내 아쉬운지 입맛만 다셨다. 더 지체하다가 내 온전한 토요일이 날아가리라는 두려움에 나는 부장 앞에서 보란 듯이 부산스레 가방을 챙겼다. 항아리만 쳐다보던 부장도 산장 시계를 슬쩍 보더니 주섬주섬 일어났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산장 밖은 저문해로 붉은빛이 돌고 있었다.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피곤함 때문이었을까? 졸린 눈을 비벼가며, 부장을 따라 산 아래로 향했다. 술을 마셔 걱정했으나, 우리는 무리 없이 내려왔다. 산초 입까지 지나 새벽에 만났던 곳까지 다다 들자, 나는 들뜬 마음을 최대한 내비치지 않기 위해 표정 관리를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터져 나오는 실소는 어찌할 수 없었다. 시계는 오후 7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미 날은 어둑해지고, 우리처럼 하산한 사람들이 역에는 몇 명 보였다. 부장 옆에서 걸으며 슬쩍 그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술이 부족했으리라 잠시 생각했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부장을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갔다. 이제 버스만 오면 이 지겨웠던 하루가 끝나리라. 하지만 내 부푼 기대에도 불구하고, 부장 입에선 청천벽력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김 대리, 우리 아쉬운데, 어디 가서 맥주나 한잔 더하고 갈까? 어때? 원래 산에 갔다가 내려오면 뒤풀이해야 하는 거라고!” 나는 움직이는 그의 입 모양을 보며 실성한 듯 웃어젖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