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등산(1/2)

(1부) 부장의 전화

by 길거리 소설가

내가 부장님의 연락을 받은 건,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을 때다. 휴대전화 발신인에 선명히 찍힌 그의 전화번호를 보자 내 미간은 반사적으로 찌푸려졌다. 마주 앉은 아내는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며 걱정스레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아내를 안심시키고,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부장님”

-김 대리, 내가 식사를 방해한 거는 아닌가?

“아닙니다.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부장은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다.

-그랬구먼, 다름이 아니라, 내일 바쁜가?

내일은 토요일이다. 일주일 중에 가장 기다리고, 기다렸던 휴일이다. 어디 돌아다니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주말만 되면, 아내의 성화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지 나였다. 그런 내게 내일 바쁘냐고 물어보는 전화 너머에 있는 상대의 말은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이 들렸다. 손이 떨리고, 눈이 파르르 움직였다. 갑자기 입이 무거워지며, 대답하기 싫어졌다. 원래가 둘러댈 요령도 없었기에 입은 더더욱 무거워졌다. 내가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고, 뜸을 들이자, 부장이 한 번 더 물었다.

-여보세요? 안 들리나? 김 대리? 내일 바쁜가?

“죄송합니다. 부장님 잠시 일정을 확인했습니다. 내일 별일 없습니다”

상대는 내 태도에 마뜩잖다는 듯 약간의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아무튼 자신의 부하직원이 다음날 약속이 없다는 점은 꽤 마음에 들었는지, 금세 반색하며 말했다.

-잘됐네, 내일 나랑 등산이나 가지 않을래? 원래는 아들 녀석이랑 가려고 했는데, 그놈이 대뜸 내일 등산을 못 가겠다고 하잖아. 산 중턱에 있는 음식점도 예약해 놓고, 값도 다 치른 상황이라 여간 곤란하지 않을 수 없네. 괜찮다면, 내일 나랑 같이 등산 어떤가? 김 대리 집이 어디라고 했지?


이미 내일 일정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토요일을 날려버릴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등산이라니, 이번에는 미간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아파지는 느낌이다. 나는 바로 왼손을 머리에 갖다 대고는 이마를 문질렀다. 이제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약속이 생각났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연한 얘기지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결국, 나는 힘들게 입을 뗐다.

“네, 저는 은평구 쪽입니다. 내일 등산 가능합니다”

최대한 짜증을 숨기며 대답하려고 애썼지만, 단어 말미의 한숨은 상대가 그대로 들었을 터다. 좀 더 냉정하게 대답했으면 좋았겠지만, 나로서는 이 정도의 투정이라도 부려야 마음이 놓였다. 내 대답에 흡족했는지, 부장은 흥분하며 말했다. 부장의 얼굴이 시뻘게진 채, 침을 트여가며 흥분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눈이 감겨졌다.

-이야, 잘됐네. 우리가 내일 갈산이 북한산이야. 김 대리 집 근처네? 그러면 내일 새벽 4시 30분에 만나지 그래, OO중학교 뒷길이 북한산이랑 연결 되어있는데, 그쪽으로 가면 입장료도 안 내고, 새벽부터 등반할 수 있네

나는 모든 걸 체념하고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오이랑 생수 그리고 간단히 요기할 간식거리는 내가 알아서 챙겨갈 테니까 김 대리는 몸만 오면 되네. 내일 보세.

나는 짧게 ‘네’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부장이 생색내는 걸 보니 내일은 험난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전화를 마치자, 아내가 물었다.

“부장이 내일 등산 가자고해? 어디로”

“북한산”

“그래도 가까운 데라 다행이네, 그럼 등산화 꺼내 놔야겠네. 피곤해서 어떻게?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

나는 거의 울먹거리며 답했다.


“새벽 4시 30분에 OO중학교 앞에서, 부장이 그쪽에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알고 있데.”

등산을 좋아하는 아내는 그 길이 어딘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 거기 OO중학교 옆으로 쭉 올라가면 나오는 길 말하나 보네. 고생 좀 하겠다. 거기서 정상가려면 길이 좀 험한데, 괜찮겠어?”

등산이라는 말에 작게나마 흥분하는 아내가 못마땅해서 흘겨 말했다.

“대충 올라갔다가 와야지”

나는 아직도 젓가락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밥맛이 싹 가셨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갑작스레 짜증스러운 일이 있거나 그러면, 식사하지 않았기에 아내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아내는 내일 있을 등산에 호들갑을 떨었다.

“내일 그러면 김밥이나 뭐 이런 것 좀 싸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새벽에 일어나야겠네”

“아니야, 내일 부장이 다 싸 온 데, 몸만 오라더라”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결국, 저녁을 먹지 못하고, 내일 있을 끔찍한 이벤트에 벌써 질리기라도 한 듯 침대에 쓰러져 곯아떨어졌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계는 새벽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침대에는 아내가 없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밖으로 나가자, 아내는 단정하게 앞치마를 메고, 열심히 김밥을 말고 있었다. 내가 헛기침하자 아내가 돌아보며 말했다.

“일어났어? 좀 더 자지, 4시쯤 깨우려고 했는데”

“어, 눈이 떠져서 그냥 일어났어.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퉁명스레 물었다. 아내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

“아무리 직장 상사가 김밥을 싸 온다고 해도, 아랫사람이 당연히 챙겨야지. 많이는 아니고, 세 줄만 쌌어. 한 줄은 집에서 먹고 가고, 두 줄은 산 정상에서 부장님이랑 먹어. 그리고 과일 조금 잘라 넣었어. 목마를 때마다 하나씩 먹어”

그렇게 말하며 아내는 굉장히 뿌듯한 듯 배시시 웃었다. 공연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를 보니 울컥했다. 그럼에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에 무심히 다가가 뭉툭하게 썰린 김밥을 하나 입에 넣고, 말했다. “맛있네, 부장도 좋아하겠다. 고마워 여보.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네”

아내의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가서 씻고 준비해!”

쑥스러워하는 아내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하고,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이미 다 결정된 일이라 체념했다고 하지만, 갑자기 비가 쏟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남아있기에 조금이나마 힘이 났다. 샤워를 마치고, TV를 틀었다. 마침, 일기예보가 방송 중이었는데, 오늘이 이번 달 들어 가장 맑고 쾌청한 날이라며 아나운서가 웃으며 말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내 심정은 그 반대다. 이제는 정말 어떠한 기대도 없이 받아드리기로 했다. 아내는 내게 김밥과 물, 그리고 과일이 담긴 가방을 건네며 등산화를 꺼냈다고 말했다. 나는 한없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겨우 등산화의 끈을 묶고 밖으로 나섰다. 새벽 4시 30분의 밖은 어두웠다. 회광반조라고 하던가?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 꼭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바닥을 거의 끓다시피 하며 무거운 다리를 옮겨 약속 장소에 10분 일찍 도착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학교 앞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고요했다. 잠깐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담배에 불을 붙였는데, 부장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김 대리!”

몇 년째 듣는 소리지만 참 적응 안 된다. 부장은 어디 사투리를 쓰는지 모르겠지만, ‘대리’라고 부르며 끝을 올리는데 가끔은 목소리가 갈라져서 웃기기도 했다. 아무튼, 목소리에 진중함은 없는 사람이었다. 부장이 랜턴을 들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고개를 돌리기도 했지만 이내 부장 쪽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오자마자 부장은 무슨 가방을 메고 온 거냐고 물었다.

“가방에는 아내가 오늘 등산 간다고 하니 김밥이랑 과일을 좀 넣어줬습니다. 제가 부장님께서 준비해 온다고 말했는데도, 부족할 수도 있다며 싸줬네요”

나는 머쓱해서 대화 끄트머리에 웃으며 말을 뭉갰다.

“다행이다. 사실 내가 오늘 김밥을 못 싸 왔거든, 그래서 편의점이라도 가야 하나 싶었었는데 역시 우리 김 대리가 일을 잘해. 감각이 있단 말이야. 따로 김밥은 안 사도 되겠구먼, 혹시 오이도 가지고 왔나?”

이 말라깽이 부장이 하는 밉살스러운 얘기를 가만히 듣고 보니 결국 본인은 하나도 준비를 안 했다는 것처럼 들렸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내일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참았다. 내가 분노에 이글거린 것과는 별개로 부장은 한없이 해맑았다. 주말에 아들과 가기 위해 신나서 준비했을 부장을 생각하면, 지금 나와 가는 산행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텐데도 그 마음을 부하직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부장은 지금 그 나이 때 가정에서 겉도는 아버지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불쌍해 보였다. 다행히 밖은 어두웠기에 그를 바라보는 애처로운 시선은 들키지 않았다. 부장은 핸드폰을 열어, 지도를 체크하며, 재촉했다.

“지금 4시 25분이니까, 얼른 출발하자고, 정상까지 9시 안에 가려면 바로 출발해야 해”

“네, 부장님”

나는 양손으로 가방끈을 잡고, 부장의 뒤를 따랐다. 확실히 지름길이라 그런지 더 가팔랐다. 주변은 어둑어둑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머리에 쓴(부장이 줬다) 랜턴에 의지한 채 움직이니 힘들었다. 하지만 부장은 익숙한지 나보다 다섯 걸음은 앞서 있었다. 나는 부장을 놓칠세라 최대한 그를 따라가려 노력했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는데, 부장이 딱하고 내 앞에 멈춰서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곳은 흙길과 돌길이 같이 있는 분기점이었는데, 부장은 돌길로 걸음을 옮겨 뒤따라오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부장의 손을 잡고, 돌길로 올랐다. 흙길보다 배는 어려운 길이었다. 돌에는 사람이 오를 수 있도록 정과 같은 것으로 중간중간에 파여있기는 했지만, 등산에 초심자인 내게는 어려운 임무였다. 그럼에도 어찌저찌 그곳을 오르자, 햇살이 절반 정도 비추는 은평구가 보였다. 지금까지 모든 짜증이 일소되는 광경이었다. 내가 얕은 탄성을 짖자, 부장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좋지? 내가 북한산을 오를 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들리는 장소야. 지금 시간이 아니면 이런 거 구경 못하지. 아마 아는 사람 많이 없을걸?”

“네, 정말 좋습니다. 속이 뻥 뚫립니다. 부장님”

내 소감은 진심이었다. 부장이 어째서 4시 30분에 만나자고 했으며, 나를 한참 앞서간 건 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했다. 지금 이 시간대가 아니면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평구가 한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왼쪽에서 떠오르는 해가 신이 가호를 내리듯 특정 부분만 비추고 있었다. 아직 해가 비추지 않는 곳은 살짝 어두웠는데, 비추는 부분은 확연히 밝았다. 만약, 새해 첫날 새벽에 이 장관을 봤다면, 필시 그해에는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해도 도전했을 만큼 내게 어떠한 성취욕과 자신감을 부여할 만한 광경이다. 나는 내 진심을 숨기지 않고, 떠오르는 해에 의해 각도를 달리 비추는 부분을 보며, 계속 탄생했다. 그제야 부장이 내려가자는 눈치를 줬다.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부장을 따라 내려갔다. 그때부터 부장은 나와 발을 맞춰 천천히 올랐다. 이따금 볼멘소리로 ‘빨리 가야겠는데’라고 하기는 했지만, 금세 본인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화색이 돌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부장이 꽤 달변가라 산행 중에 심심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말하는 부장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그가 계속 얘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아내 말로는 산행에서 동행인의 스타일이 참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부장은 어쩌면 산행을 위해 최적화된 인물일지도 몰랐다. 세 시간을 쉬지 않고 오른 우리는 목을 축이기 위해 잠시 쉬었다. 유일하게 부장이 조용했던 시간은 물을 마시는 시간뿐이었다. 나는 아침을 먹고 왔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부장이 배가 고플까 봐 은근히 걱정돼서 그에게 물었다.

“부장님, 아침에 식사는 하고 오셨습니까?”

부장은 입가에 남은 물을 손으로 훔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니, 안 먹었는데. 배가 좀 고프기는 하다”

나는 얼른 가방을 열며, 부장을 향해 말했다.

“김밥 좀 드릴까요? 두 줄 싸 왔습니다. 아니면 과일이라도 드시겠습니까?”

“아니야, 정상에서 먹어야 맛있지, 나는 괜찮으니, 자네나 배고프면 먹게”

“저는 아침을 좀 먹고 와서 괜찮습니다. 저도 정상에서 먹겠습니다”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아침 식사도 못 해 앞서가는 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내가 보였다. 나도 얼마 안 가 가정에서 버려져, 부하직원들에게 의지하며 살겠지? 갑작스레 왈칵 눈물이 나는 것을 애써 참으며, 이제는 내가 부장에게 물었다.

“오늘 그런데 부장님 아들은 왜 오늘 같이 산행을 못 한 건가요?”

“아, 걔”

부장은 아까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오늘 아침에 아내랑 아들 그리고 딸까지 모두 애들 엄마 친정에 갔어. 방학이라 일주일이나 이따가 온다지 아마?”

“그럼, 집에 부장님 혼자 계시겠네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부장의 초연한 모습에 삶의 무게와 가정에 짐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나 했는데, 그의 눈은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내가 오해한 것이 아닌가 부장을 다시 바라봤는데도, 눈웃음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어 물었다.

“가족분들이 모두 시골에 가버리는 바람에 많이 쓸쓸하시겠습니다”

부장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부장은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내 말이 그렇게도 우스운지 꺼이꺼이 거리다. 종국에는 기쁨의 눈물까지 훔쳤다.

“쓸쓸하기는 이 사람아. 내가 아들까지 가라고 떠밀었구먼, 사실 며칠 전에 장인어른이 손자들이 보고 싶었나 봐. 아내에게 말했는데, 아내는 내 눈치에 결정을 쉽게 못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애들도 방학했으니 다 데리고, 한 일주일 정도 푹 쉬다가 오라고 했지. 그런데 아들 녀석이 가기 싫었는지 나랑 먼저 약속한 등산을 핑계로 안 가겠다는 걸 억지로 설득해서 오늘 새벽에 보낸 거야. 사실, 새벽에 김밥 싸준다는 걸, 그냥 싸지 말고, 가라고 했지. 혹시나 마음 바뀔까 봐! 말이야”

“부장님은 가족이 없으신 게 좋으세요?” 부장의 반응에 황당해서 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 이내 후회했다. 그럼에도 부장은 계속 웃으며 답했다.

“예끼 이 사람아. 설마 내가 가족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잠시의 여유가 소중한 거지. 나는 30년을 같이 살았네, 이제야 일주일 정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거야. 나는 그걸로 족해”

“네”

부장의 말에 어떤 대답이 어울릴지 눈알을 굴렸지만, ‘네’ 이상의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부장은 내 대답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결국, 부장이 태어났던 1973년도 12월 얘기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및 운동권 시절 그리고 군대 이야기와 사모님과 소개팅한 찻집까지 듣고 나서야 정상에 올랐다. 도착하자마자, 손을 무릎에 대고, 시선은 바닥에 꽂은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나와 달리 부장은 여유 있어 보였다. 나와는 달리 허리에 손을 짚고, 최대한 뒤로 젖히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내뱉었다. 정상의 공기가 그리웠나 보다. 아니면, 1주일간 누릴 인생의 휴가에 대한 기쁨의 탄성일지도 모른다. 겨우 고개를 들고 부장을 바라보자, 약간 한심하게 나를 쳐다보는 시선과 마주했다. 그러더니 이내 내게 와서는 김밥을 먹자고 했다. 아침 9시의 정상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산 정상에서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까와의 감동은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챙겨온 신문지를 바닥에 대충 깔고, 김밥을 준비했다. 부장은 그때까지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정상에서의 식사 준비를 마치고, 부장을 불렀지만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신문지에서 내려와 부장 옆으로 가서 섰다.

“부장님, 식사 준비됐습니다”

“어어. 잠깐만 기다려봐. 자네도 앞을 보게나”

나는 부장의 시선을 따랐다. 그러자 하얀 구름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부장이 뭘 기대하는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어 물었다.

“부장님, 저쪽에 뭐가 있나요?”

부장은 대꾸하지 않은 채,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결국 포기하고, 멍청하게 부장과 같은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동풍이 불었다. 산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떨리게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옷깃을 여미는데 부장은 마치 어미가 주는 사탕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숨을 죽였다. 한차례 바람이 더 불자, 부장이 ‘됐다’ ‘나왔다’ 따위의 소리를 연신 질렀다.

“김 대리 저거 봐봐. 절경이지?”


부장의 시선이 멈춘 곳에 구름이 걷히자, 마치 고딕양식의 성의 지붕 끄트머리처럼 삐죽삐죽 쏟은 돌산의 정상이 드러났다. 세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20여 개는데 보이는돌산의 모습은 그의 말처럼 ‘절경‘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 돌산 사이사이 채 지나가지 못한 구름이 그곳을 한층 더 명관으로 만들었다. 나는 부장을 따라 한참을 바라봤다. 구름은 이제 다 가시고, 멀찍이 보이기는 하지만 새들이 그 돌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노닐고 있었다. 경치 구경이 10분이 넘어가자, 부장은 허기를 느꼈는지 배를 쓸어대며 신문지에 앉아 김밥 두 개를 입속에 넣었다.

“와, 맛있네, 제수씨가 솜씨가 좋네”

부장의 칭찬이 싫지만은 않았기에 작게나마 웃어 보이고 내 몫을 먹었다. 확실히, 아무도 없는 산 정상에서 한 폭의 명화 같은 풍경을 보며 먹는 아침은 온갖 산해진미가 즐비한 비싼 레스토랑에 비할게, 못될 정도로 훌륭했다. 부장이 어째서 이른 새벽부터 재촉했는지 이제는 확실히 이해했다. 물론, 내가 이번을 계기로, 주기적으로 등산을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오늘만큼은 평생 기억할 수 있도록 감동을 가슴 속에 꾹꾹 넣자고 다짐했다. 나는 얼른 김밥을 다 먹고, 대충 자리를 정리한 다음에 절경이 가장 잘 보이는 돌에 앉아 구경했다. 그러자 부장도 내 옆에 오더니 연신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은근히 자신을 찍어달라는 무언의 요청 같은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2부 계속-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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