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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Feb 09. 2023

<단편소설>엄마와 딸(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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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무거운 것 좀 들지마 제발, 엄마는 왜 맨날 그 모양이야"


 딸의 잔소리가 또 시작된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배달하기에는 애매해서 그냥 들고왔다가 퇴근하는 딸과 마주쳐버렸다.

시장바구니를 다리 뒤로 숨겼지만, 그게 안 보일리 없었다.

딸의 잔소리를 듣고있으면 머리가 하얘진다. 그리고 가끔은 왜 내가 얘한테 이런 말을 들어야하는 지 잘 모르겠다.

나는 누구보다 가정에 헌신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몸으로 낳지도 않은 저 딸을 키울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


 딸과 내가 처음 만난 날은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두보의 시 중 '호우지시절'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의미인데 딸을 처음 본 순간이 딱 그랬다.

종종걸음으로 지금 남편 손에 이끌려 온 아이, 너무 작고 소중해 이 아이라면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행히 아이도 내가 싫지만은 않은 모양인지 남편의 품을 떠나 내 종아리 냄새를 맡는 다던가, 내 가방을 이리저리 만지는 등 경계가 아닌 호기심으로 대해주었다.

하지만 딸의 사춘기가, 사별한 남편의 전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끄집어내며, 그녀가 자신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하루는 비가 많이 오는 어느날이었다. 나는 딸에게 '오늘은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니, 꼭 우산을 가지고 가라'고 일렀다. 그러나 딸은 대답도 없이 그냥 나가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산 꽂이에서 딸의 우산을 찾아보니 있었다. 그리고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비가 심상치 않게 많이왔다.

나는 10시 쯤에 맞춰 딸이 다니는 학원에 도착하기 위해, 그녀의 우산을 챙겨 장대 빗 속을 헤치며 10시가 넘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고, 곧 딸도 학원을 마치고 학원문으로 나오는 참이었다.

학원문을 막 나서려는 딸과 내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씨 왜 왔어?"

"여기, 우산 주려고 왔지... 아침에 안 챙겨갔었잫아"

"아...씨 그냥 비맞고 가도 되는데 왜 짜증나게 학원까지 찾아오고 난리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뭐. 뭐. 됐어. 진짜 엄마도 아닌 주제 잘해주는 척 좀 하지 마요. 역겨우니까"


나는 딸의 뺨을 때렸다. 어쩔 수 없었다. 딸의 '역겹다'라는 말이 내 세상을 무너지게 했다.


"왜 때려, 왜 니가 뭔데 날 때려"


 딸은 내가 가져온 우산을 내 팽겨치고는 빗속에 뛰어 들어 그대로 사라졌다. 학생몇명이 수근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그 자리에 망부석처러 오래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11시도 넘은 시간, 집에 도착하자 딸은 이미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남편은 '무슨 일이 있었냐며' 걱정하듯 내게 물었는데,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웃어 주었다.

그일이 있고 난 후, 딸은 내게 마음의 문을 아예 닫고 생활을 하다 2~3년 후 부터 차츰 이야기 정도만 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현재는 딸이 내게 잔소리 만 한다. 처음에는 내 걱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기 스트레스를 대놓고 풀지 못하기에, 나를 이용해 푸는 느낌으 많이 받는다.


--


방금 딸의 잔소리에 우산을 가져다 주었던 오래 전의 일이 기억이 난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다. 약간의 짜증이 섞여, 눈쌀을 찌푸리는데 남편이 돌아온다.


"오늘, 종무식 하느라고 좀 일찍 끝났어"


나는 달력을 바라봤다. 12월 29일 벌써 한해가 마무리 되고 있다. 혼자 생각하는 사이 남편이 재차 말한다.


"나 한테 OO뷔페 쿠폰이 생겼는데, 오늘 저녁은 거기서 먹자, 아들한테 전화해서 일찍들어오라고 연락 좀 해줘"

"응. 알겠어요."


오랜만에 외식이다. 딸과 내 사이를 잘 아는 남편은 최대한 부딫히지 않도록 이제껏 배려를 해줬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때, 남편의 말을 듣고 방에서 딸이 나온다.


"아빠, 오늘 몇시에 갈거야?"

"아들 오면 바로 출발하자, 여보 아들은 언제 쯤 온데?"

"지금 문자 보냈는데, 5시 쯤 온다네"

"그래? 그럼 5시에 출발하지, 아들한테는 집앞에서 기다리라고해"

"알겠어요"


 나는 아들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외투를 챙기기 위해 쇼파에서 일어났는데, 무릎이 찌릿거리고, 부드럽지 못한 것이 이상했다. 이내 시작되는 무릎통증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자리에 주저앉아 쓰러졌다.

그리고 눈을 뜨니, 가족들이 걱정스럽게 날 처다보고 있고, 새하얀 천장에 햐얀 등불이 눈이 부실정도로 밝았다.


"여보 괜찮아? 여기 응급실이야. 도대체 어떻게 참은거야?"

"엄마, 괜찮아요?"


아들과 남편이 내게 재차 물었다.


"응.. 이게 어떻게 된거야?"

"기억안나? 쓰러졌었어. 집에서 무릎을 부여잡고, 무릎에 염증이 있데.. 이제까지 어떻게 버틴거야? 그렇게 아팠으면서 의사가 놀라던데, 이 정도로 아팠으면 최소한 한달 전부터는 힘들었을 거라고"


 사실 한달 전에도 이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꾸준히 무릎은 아팠었다. 어느정도 참을 수 있었기에 가족들 걱정 시키기 싫어 함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담당의사가 정밀 검사는 좀 더 해봐야하지만, 자기가 봤을 때에는 '무릎의 염증을 긁어내는 수술'을 하면 괜찮아 질 것 같다고 이야기 했어"


 남편의 말에 안도에 한숨을 쉬었다. 그제서야 응급실의 시끄러운 소리들이 내게 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 중에 훌쩍이며 나지막하게 우는 소리도 들렸다. 들어 본 적있는 울음 소리다. 나는 상체를 작게 들어, 그 울음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딸이 내 발밑에서 나를 보며 운다. 그런 딸을 아들이 진정시키고 있다.


"딸, 그만 울어 수술 하면 낫는 데잖니"

"엄마는 바보야? .... 나는 저번달 부터 봤다고, 무릎 부여잡고 있는거.. 내가 무거운거 들지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아프면 병원을 가지..."


 딸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아마 내 병을 짐작했음에도 병원가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딸, 괜찮아 나는 가족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모두들 미안해"


딸이 내 손을 잡아 준다.


 많은 말이 오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딸은 이제껏 내게 진심이었다. 막말을 쏟아내었던 사춘기 시절에도 내게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딸과의 처음 만남에서의 내가 한 다짐 처럼 나는 언제나 딸에게 먼저 다가갔어야 했다.

그런데 딸과의 관계의 문을 닫은 건 바로 나였다. 딸의 졸업식에도, 딸의 첫 출근에도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딸은 나를 싫어해'라는 망상 속에 살고 있어, 그 따듯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

5살의 딸도, 사춘기의 딸도, 지금의 딸도 그냥 내가 사랑해줘야하는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난 참 못난 엄마다.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딸이 날 위해 울어주는 모습에 그 동안 딸에게 못해주었던 일들만 생각난다. 내 손을 잡을 딸에게 나는 나지막히 말했다.


"딸, 미안해 정말로 내가 속이 좁아 니 진심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내 진심을 몰라도 돼, 그런 것 아무 상관없어, 제발 아프지마"


무릎이 아프고 시리다. 그런데 편안하고, 행복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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