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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Feb 07. 2023

<단편소설>복덕방 이야기(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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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이다, 실수를 해버렸어, 부동산 정보 사이트에 6평짜리 원룸 매매가를 1억으로 올려야하는데,  10억 원으로올랐다. 아 또 사장한테 엄청 깨지겠네’


태수는 머리를 부여잡고, 담배를 찾는다. 평소에도 실수가 잦은 그 였기에 벌써부터 혼날 걱정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태수가 사용하는 부동산 정보 사이트의 경우 매매가격은 하루에 한 번밖에 올릴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하니 태수는 오늘이 지나갈 때까지 사장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사장이 10시 쯤 출근한다. 사장은 평소에도 태수의 실수들을 못 마땅해 하고 있어서, 작은 건수가 있으면 득달같이 화를 내는 스타일이었다. 혼을 나는 것에 이골이 난 태수였지만, 그럼에도 사장이 불같이 화를 내면 여전히 적응을 하지 못했다. 다행이 사장은 출근하자마자, 골프채를 잡고 퍼팅연습에 열중했다. 며칠 후 있을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골프대결에서 지난번처럼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일단, 태수는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태수가 걱정해야할 것은 우연히 ‘자신의 집이 얼마에 올라갔는지 확인하려는 집주인’이 자신이 잘 못 올린 금액을 보고 따지듯이 전화를 하는 상황뿐이라고 생각한다. 태수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본다. 아직 11시 밖에 되지 않았음에 절망하며, 평소보다 더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원망한다. 다행히 사장은 아직 골프 삼매경에 빠져있다. 사장이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태수는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저 구멍에 왜 저렇게 못넣지?’라고 한심하게 생각한다. 


“태수야, 자장면 좀 시켜라 밥 좀 빨리먹자, 나 오후에 약속있어서 2시까지는 나가봐야한다”

“네, 사장님”


태수는 시계를 본다. 11시 30분, 사장이 남은 3시간 동안 밥먹고 골프만 치면 자신은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째깍째깍, 12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린다. 그때, 부동산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온다. 


“여, 매물 하나 보고왔는데, 지금 계약이 됩니까?”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절모를 쓴 노신사다. 하지만 목소리 만큼은 우렁차다.


태수는 먹던 자장면을 내려놓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며, 노신사에게 다가갔다. 


“네, 사장님 어떤 매물 보고 오셨을까요?”

“그, 여기서 올린 매물 중에 저기 모퉁이 돌아 큰길 뒤편에 있는 그 원룸 매물 있죠? 10억 짜리”


노신사의 이야기에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사장은 젓가락을 잠시 내려두고, 태수에게 ‘미친 노인네를 빨리 보내’ 라고 입모양을 움직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태수는 노신사를 빨리 보내기 위해, 그를 앞에서 막아서고, 억지로 돌리려한다. 그러자 노신사가 스마트폰을 태수에게 들이대면서, 자신이 똑똑히 봤다고 소리를 지른다. 노신사가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에는 태수가 오전에 잘 못 올린 '그 매물'이 비추고 있었다.


 큰소리에 놀란 사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태수와 노신사가 실랑이를 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노신사에게 이야기한다.


“저 할아버지, 원룸 매물 중에 10억 짜리는 없어요. 그만 나가세요. 아니면 영업방해로 신고합니다”

“이 놈아, 내가 봤다고 했잖는가, 니 놈도 눈이 있으면 봐라”


노신사는 태수에게 하듯이 사장에게도 스마트폰을 사장 머리 가까이 들이댔다. 사장은 안경을 고쳐쓰고 마지못해 노신사의 핸드폰을 자세히 쳐다본다.


“진짜 짜증나네, 할아버지 줘보세요. 세보게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십....억?”

“봤지 이놈아”


노신사는 더 당당한 목소리로 사장에게 호통을 치고, 사장은 태수를 노려본다.


“아, 어르신 제가 보니까 저희가 가격을 잘 못 기재해서 올린 것 같습니다. 그 매물은 10억 이아니라 1억입니다. 괜찮으시면 매물 구경 하시겠습니까?”

“이 놈아, 이게 왜 1억 이냐, 여기 10억 이라고 써있지 않냐?”

“그러니까, 그게 저희 쪽에서 실수가 있어서 그런거 에요. 원래는 1억 원이에요”

“아니 여기 10억 이라고 써있다니까”


사장과 노신사의 무의미한 대화들이 계속 오간다. 그 사이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태수가 서있다.


“아니, 어르신 저희가 1억 짜리를 10억 원에 판다는 것도 아니고, 원래 10억 원으로 잘 못 기재되어있으니 살 꺼면 1억 원으로 사라는게 그게 잘 못 된 건가요? 저희가 무슨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고, 아 그만 좀 하시고 안살 거면 나가세요 제발, 야 태수야 경찰 불러”


사장은 노신사를 노려보며 쏘아 붙이듯이 이야기한다. 그런 사장을 보며 노신사는 계속 생때를 쓴다. 태수는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한다. 경찰서에 갔음에도 노신사는 자신이 그 10억 원 자리 방을 살 것이라며, 현실성 없는 소리를 한다. 경찰들도 황당해서 이 사태가 전혀 진정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때, 어렵게 노신사의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아들은 노신사가 경찰서에 붙잡혔다는 말에 놀라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들이 도착하자, 노신사는 진정되어보였다. 그리고 피곤했는지 경찰서 한 켠의 긴 갈색의자에 몸을 뉘였다. 아버지가 눕는 모습을 보자, 아들은 안도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 노신사는 과거에 잘나가 던 부동산 큰 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IMF때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다 모든 재산을 잃고, 막일을 하며 자식들을 키워냈으며, 그는 고생해도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도록 노력하는 훌륭한 가장이었다고 했다. 다행이 자식들도 노신사의 기질을 물려받아 현재에는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부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그 기쁨도 잠시 노신사는 치매에 걸려 현재의 행복도 모른 채, 과거의 영광만 쫒고 있다고 했다. 


오늘 사건도 과거의 노신사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본인이 봤을 때 값이 싸다고 생각하면, 자존심 때문에 절대 사지 않았고, 반대로 비싼 건 무슨 물건이든 샀다고 한다. 그러니 태수가 잘 못 기재한 10억 원을 보고, 다른 데보다 10배나 비싸니 자신이 꼭 사야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부동산에서 그렇게 난리를 쳤던 것이다. 


--


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사장이 기가차서 묻는다.


“아니, 치매 걸린 어르신이 어떻게 스마트폰으로 부동산을 검색해요? 영업방해 한 거 그냥 무마하려고 지어내서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까? 진단서 좀 봅시다.”

“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이 이해가 잘 안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기억이 온전치 않으셔도, 꼭 하시는 게 있습니다. 바로 부동산 매물 보는 거에요. 아버지는 핸드폰 통화도 제대로 못하시지만 저도 신기한 것이 부동산 매물 사이트는 잘 들어가서 보세요. 그리고 부동산과 관련된 일만 있다면, 예를 들어 뉴스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면 눈매부터 바뀝니다. 본인 손자들 이름은 기억 못해도 두 달전에 올라온 상가건물의 컨디션은 줄줄이 꿰시는 분이세요. 어쩌면 부동산에 대한 기억들을 위해 다른 기억들을 모두 지우고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아들의 말에 사장도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한다. 사장은 씁슬하게 웃더니, 태수에게 가자고 말을 한다. 그들과 말로 계속 싸워봤자 시간만 낭비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벌써 시계는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사장은 오늘 사건으로 모든 기운이 빠졌는지, 태수의 실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도 않고, 약속도 취소한 뒤 사우나로 향했다. 태수는 오늘 자신의 실수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장을 보며, 찝찝함을 느끼며 회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음날, 태수는 사장의 출근과 동시에 퇴근 할 때까지 잔소리를 듣고 3장이 넘는 반성문을 써야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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