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도시락을 산다. 음식 구성도 맛도 그저그렇다. 그럼에도 같은 시간에 도시락을 사러간다.
"어서오세요! 또 오셨네요"
그녀의 밝은 인사에 어색하게 대답하고는 간이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포장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뽀얀피부 그리고 큰 눈망울, 나 같은 놈한테는 과분할 정도로 밝게 빛이 나는 사람이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니 또 그날이 생각난다.
5개월 전 그날은 오늘과 달리 비가 많이 내렸다. 맑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우산을 두고 나왔다가, 긴 장대비를 만난 나는 작은 구멍가게 처마 밑에서 덜덜 떨며 지쳐가고 있었다. 그 때, 가게를 나오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개 다가와 말을 건냈다.
"어디까지 가세요? 데려다 드릴게요"
"저 기 앞에 지하철 역까지만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내가 수줍게 말하자, 그녀는 들고있던 검은 봉다리에서 캔커피 하나를 꺼내 내게 주었다.
"춥져? 이거 따듯한 거에요."
"한 여름에 따듯한 커피라... 특이한데 도움이 되네요"
"저기 구멍가게 아저씨가 찬걸 잘 못먹는데요 그래서 아주머니가 온열냉장고를 항상키고있어요. 재밌죠? 저도 찬걸 잘 못 먹어서 커피는 꼭 여기서 사먹어요"
굵은 장대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그녀의 이야기가 귓가에 또렷하게 들렸다. 한참을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역 앞에 도착하자 그녀의 목소리가 멈췄다. 속으로 '아, 좀 더 길었었으면...' 나는 탄식했다.
"저기... 연락처라도 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
내가 용기내어 말했다.
"하하. 사례는 안해두 되고요. 저기 보이시죠?"
그녀가 리모델링 중인 건물을 손으로 가르켰다.
"네 보입니다."
"저기가 곧 도시락 집이 될 거에요. 거기서 많이 사주세요!"
"아 네"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리곤 그녀는 벌게진 나를 뒤로하고 갈길을 갔다.
그로부터 나는 그녀가 가르킨 도시락집이 개업하기만을 기다렸다.
"도시락 나왔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당근을 별모양으로 만들었어요. 맛있게 드세요!"
옛날 생각에 5분이 빠르게 지나갔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잘 먹을게요"
도시락 집을 나오니 모든 것이 흙빛으로 변해있었다. 씁슬한 웃음이 나온다. 고개를 한번 흔들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점심 때가 된다. 매일같이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기에 내 얼굴이 약간 그을었다. 가끔 거울을 보면 웃음이 난다. 오늘도 옥상에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에 직장 동료가 헐래벌떡 뛰어오며 다급히 나를 찾는다.
"선생님! 의식 불명 환자에요. 방금 엠뷸타고 왔데요. 일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는데, 다행히 맥은 잡히지만 눈을 안떠요"
나는 들고있는 도시락도 팽개치고는 환자가 있다는 배드(의료용 침대)로 뛰었다.
침대와 꽤 멀리있음에도 가슴팍에 '노란도시락'이라고 써진 익숙한 앞치마가 내 눈에 들어왔다. 간호사에 가려 보이지않는 얼굴을 급히 확인해보니, 아침까지 날 반겨주던 그녀다. 방금 내팽겨친 도시락을 만들어 주던 그녀였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녀를 위해 온갖방법을 다 써서 결국 눈을 뜨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금 만들었다.
그녀를 진정시키고, 입원실로 보낸다. 내가 직접 알고 싶었던 그녀의 이름을 나는 노력 없이 알았다.
그녀의 검사결과는 암이다. 아직 희망은 있어보인다. 다만, 그 희망의 가능성이 높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다. 좋은 생각이 나지 않고, 최악의 수들만이 머리에 멤돈다. 나는 다시 머리를 흔들며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곤 정신을 차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놀란 눈치다. 그리고 매일 도시락을 사가던 사람이 의사가운을 입고있으니 재미났나 보다.
"어머, 하하 손님이 의사셨네요!"
"네, 맞아요."
"선생님 저 많이 아픈가요? 요 며칠 피곤하기는 했는데 오늘 쓰러질 줄은 몰랐어요"
"암 입니다"
나는 담담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장난기가 사라진 그녀의 입꼬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며,흐느낀다. 나는 그녀의 쳐지고있는 어깨에 손를 얹으며 말했다.
"걱정마세요. 요즘 약도 많이 좋고, 수술기술도 많이 발달했습니다. 파이팅해서 우리 같이 이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