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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Feb 14. 2023

<단편소설>딸과 엄마(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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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아줌마는 누구야?"

"아빠 친구야, 자 인사드려야지"

"안녕하세요!"

"너가, 예나구나! 안녕, 아줌마는 아빠친구야, 예나는 몇 살이야?"


나는 손가락을 다섯 개  펴 보이며 대답한다.


"6살이요."

"예나야, 손가락을 하나 더 펴야 6개지"

아빠가 이야기하면서, 아줌마와 웃는다. 뭐가 재밌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따라 웃는다.


아줌마한테 조금 더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아줌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작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아줌마는 내가 물방울에 맞지 않도록 자신의 코트 밑단을 내어준다. 덕분에 나는 젖지 않았다. 


내가 10살이 되던 해, 비 내리는 날 내게 선물 같이 온 그 분은 이제 '아줌마'가 아니라 내 '엄마'가 됐다. 


아빠입장에서는 나의 친엄마를 병으로 떠나보낸 지 8년만이다. 그간 지금 엄마가 아빠와 함께 하고 싶어 했지만, 아빠는 나의 친엄마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 질 시간이 필요 했던 것 같다. 


내 친엄마가 돌아가실 때, 나는 2살이었다. 사실 엄마란 무엇일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나의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와 엄마의 아들, 이 넷이 함께 살게 된다. 


시간이 또 흘러, 나는 이제 중학생이 된다. 그 간, 즐거운 기억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그 어떤 가족보다 끈끈했고, 화목했다.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다. 누구보다 사려 깊고, 특히 내게 신경을 많이 썼다. 나는 누구보다 지금 엄마를 우리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주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학원 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친한 친구 둘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예나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래"

"헐... 그럼 막 학대받고 그런거 아냐?? 불쌍하다 더 잘해 줘 야겠다"

상대 친구가 크게 웃는다.

"설마, 엄마 좋은 분이시겠지 물론 친엄마보다는 아니겠지만!"

이번엔 둘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학교 선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나 어머님이 친모가 아니라면서요?"

"어머 그래요? 그런 것 치고는 밝게 자랐네요. 교우관계도 좋고"


듣기 싫은 소리를 주변에서 듣다보니 집에서도 툴툴 거리는 일들이 많아졌다. 나의 엄마와 나에 대한 뒷담화가 싫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고 항변해봤자 그들 머릿속에는 이미 답은 정해져있다. 나는 항변 따위는 안하기로 한다.


이런 일들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많이 오는 날이다. 수업이 한참 일 때부터 내린 비에 우산이 없는 나는 아빠한테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데. 막상 학원 앞에는 엄마가 서있었다. 


혹시나 해서 아빠에게 보낸 문자메세지를 확인 보니, 아빠는 아직 읽지도 않으셨는지 내가 보낸 메세지 옆에 '읽지않음 표시'가 그대로 남아있다.


엄마는 아빠가 보내서 온건 아니다. 그냥 나를 위해 빗속을 뚫고 온 거다. 그런데, 그런 고마운 엄마를 보는 순간 최근 며칠간 아이들과 선생님이 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들이 떠오르며, 속으로 나쁜 생각을 한다. 


'내 앞에 서계신 분이 내 친엄마였으면, 나는 그런 소리를 내 뒤에서 안 들어도 되는데, 내가 애들 앞에서 불쌍해 보일 이유도 없었을 텐데..'


갑자기 드는 서러움에 복 바쳐 나는 엄마한테 막말을 퍼붓는다. 


"..씨 왜 왔어?"

"여기우산 주려고 왔지... 아침에 안 챙겨갔었잫아"

"...씨 그냥 비맞고 가도 되는데 왜 짜증나게 학원까지 찾아오고 난리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됐어진짜 엄마도 아닌 주제 잘해주는 척 좀 하지 마요역겨우니까"


내 스스로도 너무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엄마가 내 뺨을 때린다. 뒤에는 며칠 전 내 뒤에서 수군대던 친구들이 서있고, 내가 맞는 모습을 정면에서 봤다. 그들의 농담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어 비오는 거리를 뛰고, 또 뛰었다. 엄마는 나를 쫒아오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다. 


비를 다 맞고, 집에 들어가니 아빠가 놀라 묻는다. 


"비를 다 맞았네 집에 엄마도 안 보이길래, 너 한테 우산 가져다 준줄 알았는데?"

"아 몰라"

괜히 아빠한테도 짜증을 내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 엄마에게 사과는 해야겠다고 생각해 편지지에 이것저것 써보지만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 찢고 또 쓰고를 반복하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그날이 지나갔다. 


그 후, 엄마와 나는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 눈치만 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내가 대학생이 된다. 


긴 시간 동안 엄마와 나의 감정의 골은 많이 옅어졌다고 생각한다. 큰 계기가 있지는 않았지만, 아침식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 예전 일들을 옅게 만들어 준다고 확신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엄마에게 잘 해주자라고 생각하면서 힘을 낸다. 


그러던 중, 엄마가 쇼파에서 일어날 때, 무릎을 손으로 감싸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다.’ 나는 무릎에 좋을 만한 오렌지, 율무 등등 사서 집에 두고 엄마에게 먹으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며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 다면서 먹지 않는다. 더욱이, 며칠 전에는 무릎도 않좋은 사람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힘겹게 걷는 모습까지 봤다. 너무 화가 났다. 


"엄마, 무거운 것 좀 들지마 제발, 엄마는 왜 맨날 그 모양이야"


나는 또 엄마에게 잔소리를 한다.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다. 한숨을 삼킨다. 


집에 온 나는 방에 틀어박혀, 무릎 치료를 잘 하는 병원을 검색하고 있다가, 방 밖에서 일찍 집에 들어온 아빠가 뷔페에 가자는 소리를 듣고는 준비 후 나갔다. 내가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엄마는 쇼파에서 일어서며 쓰러진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간간히 아빠가 엄마의 뺨을 때리고 숨을 쉬는지 확인하는 소리와 119에 신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정신을 부여잡고, 쓰러진 엄마의 팔,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숨은 쉬시는데, 깨어나질 않는다. 


다행해 119 구급대원이 일찍 도착해서, 응급실로 실려 간 후 적시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일반 병상으로 옮긴 뒤 또 한참이 지나,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엄마는 눈을 뜬다. 나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엄마가 나를 찾는 것 같다. 나는 겨우 엄마와 눈을 마주쳤지만, 또 흐르는 눈물에 고개를 떨군다. 간신히 눈물을 멈추고 훌쩍 거리며 이야기한다. 


"엄마는 바보야? .... 나는 저번 달 부터 봤다고, 무릎 부여잡고 있는 거.. 내가 무거운 거 들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아프면 병원을 가지...“


나는 말을 끝내 마치지 못했다. 


"딸, 괜찮아 나는 가족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모두들 미안해"


그럼에도 엄마의 소리가 들리고,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는 나지막히 이야기한다. 


"엄마는 내 진심을 몰라도 돼, 그런 것 아무 상관없어, 제발 아프지마"


그러자 엄마는 작게 미소 짓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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