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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Feb 16. 2023

<단편소설>인터뷰(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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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너 미쳤어? 정말 일 그만두고 싶어서 작정했어?”

“아니, PD님 그런 게 아니라, 그 녀석이 먼저 저한테 시비를...”

“너, 조용히 해, 하-”

내 귀에 상사의 한 숨소리가 들린다. 


“야, 다 됐고, 너 교양국의 송PD 찾아가, 너 찾더라.”

“PD님 저 그 PD님과 사이좋지 않은 거 아시잖아요. 제발 그 쪽으로만은..”

“야, 그럼 어떻게 너 지금 완전 폭탄 됐어, 이번이 몇 번째야? 지금 인사팀에서 너 자르겠다고 계약서 들고 난리치는 거 송PD랑 나랑 겨우 말리고 오는 길이야. 잔말 말고, 송PD 찾아가”

“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국내 개울가의 생태늪지대의 교란종에 대한 다큐를 찍고 있었는데, 냇가를 따라 올라가던 중 술을 마시며 유흥을 즐기는 아저씨 무리와 시비가 붙었다. 나는 당연히 대화로서 해결하려 했으나, 그 분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나 보다. 이내 주먹이 오갔고, 나는 유치장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 분들도 술이 깨니 일을 더 키울 생각이 없었는지, ‘어차피 쌍방이니 서로의 치료비는 퉁 친 채로 합의하자’하고는 사건이 일단락 됐다. 하지만, 나는 프로그램이 펑크가 나면서 내 직급보다 위인 선배PD에게 혼이 나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수모를 당하러 가는 길이다. 


송PD는 내 사수다. 정확히는 사수였다. 하지만 성격이 맞지 않았다. 이 분한테 만큼은 어떠한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송PD님, 저 태수입니다”

“어, 왔어? 너 이번에도 유치장 갔다 왔다며? 이제는 유치장이 더 편하겠어”

만나자 마자 내 속을 긁는다. 

“아닙니다. CP님께서 그러던데 저를 좀 보자고 하셨다고”

“응, 너 짤리는 거 막느라고 고생 좀 했다. 사고 좀 제발 그만 쳐 임마”

“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 내가 힘 좀 쓴 거 CP님이 이야기 안하든?”

“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사실 부탁할 일이 좀 있어서”

“예, 어떤 부탁일까요?”

“힘든 일은 아니고, 내가 맡고 있는 프로가 책을 소개하고, 작가를 인터뷰하는 컨셉이잖아. 이번에 MZ세대 특집으로, 웹소설작가를 하나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말이지”

“네 그런데요? 그 인터뷰를 저한테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이해가 빨라서 좋네, 맞아 그 일을 너가 좀 해줬으면 좋겠다.”

“거기 작가는 뭐하고, 제가 해야 하나요?”

“그게, 이번에 섭외하려던 웹소설작가가 자기는 노출되면 안 된다고, 뻐기고 있나봐 우리 쪽 작가도 몇 차례 전화나 문자로 부탁을 했는데, 심지어 욕하면서 안 해주더라고, 지금 담당하던 여작가는 그 웹소설작가한테 욕문자를 잔뜩받고는 집에서 요양 중이야. 아주 거친 사람 인가봐”

“아니, 그러면 다른 작품과 작가를 섭외하면 되지 꼭 그 사람으로 할 필요가 있나요?”

“그게, 이번에 MZ 스페셜이라고 했잖아. 그러다 보니까 MZ들이 원하는 작가를 설문을 통해서 뽑힌 거라 어쩔 수가 없어. 야, 좀 도와주라 너는 싸움도 잘해서 경찰서도 익숙한 놈이니까 좀 깡다구 있게 해봐”

“제가 싸움 잘하는 거랑 이거랑은 상관이 없죠. 만약 제가 이 건을 거절하면 어떻게 되나요?”

“음.... 나는 국장님한테 가서 ‘우리 태수가 그냥 그만두고 싶어 하네요.‘ 라고 이야기할거야, 그리고 너가 오해하는 게 있나본데 인사과에 너 설득할 때 지금 이 건을 맡을 적임자가 너 밖에 없다고 해서 설득이 된 거야, 즉, 이건 너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인 거지, 참고로 너 가 이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넌 산 넘고 물 건널 줄 알아 다만, 너가 이 일을 멋지게 해결한다면, 너는 원래 있던 곳으로 금의환향 하는 거야, 그리고 보너스도 챙겨줄게”


기가차서 말도 않나온다. 더러워서 때려 치려해도 집에 있는 토끼같은 마누라와 여우같은 자식이 눈에 밟힌다. 아!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인가? 암튼, 비위 맞춰주면서 인터뷰를 해야 할 생각에 벌써 갑갑하고, 이 프로의 작가들은 10년차의 베테랑들인데 그런 사람들도 몸 저 누울 정도면 말 다했다. 이번일 벌써부터 앞이 보인다.


“알겠습니다. PD님 그 분 연락처 좀 줘보세요. 제가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캬. 역시 사람 패던 가닥이 있어서 그런지 시원시원 하구만, 좋아 010-OOOO-XXXX야 암튼 잘해봐”


송PD의 방을 나와, 나는 자리로 돌아가, 내 휴대폰으로 송PD가 알려준 번호를 적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우리 (고등학교 친구) 010-OOOO-XXXX」


‘??????’ 나는 내 핸드폰에 뜬 친구의 이름과 내가 송PD한테 받은 번호를 번갈아 보고는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 후 당황해서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우리는 내가 고등학생 시절 만났던, 전 애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 전 까지 6년을 만났고, 내 군대까지 기다려줬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유학을 가겠다면서 이별통보를 하고는 3개월 후, 그녀의 결혼 소식이 들렸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출산소식도 들렸다. 


그녀와의 이별 그리고 짧은 기간에 들려온 그녀의 결혼과 출산 소식을 겪은 나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망가졌었고, 1년 이상 폐인처럼 집 밖에도 나가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그 때,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준 이가 나보다 한 살 어린 후배였던 현재 내 와이프다. 



옛 추억을 넣어두고,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회사전화로 그녀에게 연락한다. 

-여보세요.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XXX방송국의 ‘책과 작가, 그리고 독자’의 조연출 이PD입니다”

-너 혹시, 태수니?

그녀가 내 목소리를 알아봤을까? 대뜸 내게 태수냐고 묻는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수 맞구나, 너의 이름으로 부재중이 찍혀있고, 너가 다닌다던 방송국에서 전화가 바로 걸려 오길래 혹시나 했는데, 맞네.

“맞아. 나 태수야, 작년 동창회 이후로는 처음이네 반갑다. 잘 지냈어?”

-너 그때, 기억 안나? 나보고 잘 지내면 죽여 버리겠다고 술 취해서 난동 피웠잖아. 그 때 얼마나 무섭던지, 애들한테 들어보니까 그 후에 정직 먹을 뻔 했다면서? 해결은 잘 됐어?

“응, 뉴스까지 나왔었는데, 어찌어찌 잘 해결됐어. 그 사건 이후로 산타면서 다큐 찍는 파트로 옮겨서 몸이 좀 고생하고는 있는데, 뭐 그럭저럭 견딜만해”

-근데 왜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거야?

“사정이 좀 있어서”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어나간다.

“이번에 우리 방송에서 너의 작품과 너를 인터뷰를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실례가 안 되면 좀 부탁해도 될까?”


나는 최대한 시니컬하게 부탁한다.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나한테 오히려 질문을 한다.

-내가 왜, 너희 프로그램 작가들이 전화했을 때마다 거절했는지 알아?

“왜 그랬는데?”

-너 때문이였어, 동창회 날 술에 잔뜩 취해서, 너 같은 년은 평생 행복하면 안 된다고, 너가 환히 웃는 사진을 본다면 다 불 질러 버리겠다고 했잖아. 혹시 내 인터뷰를 너가 보기라도 한다면, 너한테 해코지라도 당할까봐 못하겠더라. 그래서 너희 작가들한테 좀 심하게 거절했지, 그리고는 조용하더니 너한테 연락이 올 줄이야. 재밌네 이 방송국.


그녀는 지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게 한다. 그래도 참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게 결국 나 때문이다?”

-맞아, 너 때문에 그랬던 거야

“좋아, 내가 약속할게 절대 그럴 일 없어, 오히려 박수쳐줄 테니까 제발 인터뷰 좀 하자. 부탁할게”


내 모든 자존심을 화장실 변기통에 물 내리 듯 흘러 보내고, 그녀에게 부탁을 한다. 

-역시 재밌네, 1년 전 만해도 날 저주하더니, 너 혹시 또 사고치고 내 인터뷰 받아오라고 위에서 시킨 거 아냐? 이거 해결하면 용서해준다고 하면서


그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눈치가 빠르다. 

“그런 거 아니니까, 좀 부탁할게”

-좋아. 어차피 나는 너 때문에 인터뷰를 안했던 건데, 당사자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니 인터뷰 해줄게, 대신 너는 나한테 뭘 해줄래?

“음. 너 출연료 두 배 받을 수 있게 담당PD한테 이야기해 놓을게, 안되면 내 사비를 털어서라도 너에 출연료는 두 배로 만들어 줄게”

-하하하


그녀가 웃는다. 악마의 미소만큼 무섭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지 도저히 감이 안온다.

“왜? 세 배로 해줄까? 좀 봐주라, 나도 일개 직장인이다. 두 배 반까지는 어떻게든 힘써줄게”

그녀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한다.


-야, 너 뭐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나 돈 많아. 출연료 없이도 해줄 수 있어

“그래? 그럼 잘됐네”

-다만, 부탁이 있어

그녀가 뜸을 들인다.


“뭔데?”

-너의 이름으로 된 봉투에 축의금과 내 결혼을 축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줘, 축의금 액수는 30만 원이야. 나는 항상 찝찝했어. 사실 너랑 만나고 있을 때 지금 내 남편과 바람핀 것 맞고 아이도 그 때 생겼어. 근데 어차피 우리 그 때는 거의 헤어질 정도로 너가 나한테 신경을 안 써줬잖아


나는 그녀에 말에 발끈했다.

“야, 나는 그 때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어. 취업만 했으면 조금만 너가 기다렸더라면...”

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 됐건, 너도 나한테 소홀했고, 나도 너랑 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안 되는 거였지, 쌍방잘못이야.

그녀가 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 뱉는다.

“야, 말이면 다인 줄 알아?”

-암튼, 나도 너랑 헤어지고, 결혼하고, 우리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찝찝했어,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내 결혼을 너한테 완전히 인정받고 싶어. 내 조건은 딱 그거 하나야, 너의 이름으로 된 축의금과 정성어린 편지, 편지에는 ‘늦었지만 축하한다.’는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해, 그리고 편지는 인터뷰 전에 내가 읽어 볼 거야, 내용 중 나를 저주하거나, 욕하는 부분이 발견된다면 바로 없던 일이 되는 거니까 신중하게 쓰도록 해


나는 분노를 삭히며,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저 일을 할 뿐이다’ ‘까짓 거 한번 써주고 회사에서 인정받자’ 그런데 흐르는 눈물과 차오르는 분노는 어쩔 수 없나보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말한다.


“좋아. 해 줄게, 하면 되잖아. 인터뷰 장소와 날짜 시간은 문자로 찍어줄게 아니면, 혹시 편한 시간대가 있으면 말해줘 최대한 맞춰 줄 테니까 그럼 인터뷰 응한 것으로 판단하고 먼저 끊을게”

나는 이 불쾌한 대화를 바로 끊으려고 했으나, 그녀가 갑자기 제지한다.


-잠깐, 그래 고마워 뭐가 됐든 내가 너한테 도움이 좀 된 것 같아 마음이 좀 놓이네 내가 요청한 것만 잘 해주면 내가 너희 PD한테 이야기해서 ‘날 잘 설득시켜서 인터뷰에 응했으며, 출연료도 받지 않겠다.’라고 잘 말해줄게 그럼 수고해


그녀가 끊었다. 착잡한 마음을 다잡고, 편지지와 30만 원을 챙겨 집으로 향한다. 아내가 내 손에 있는 축의금이 적힌 흰 봉투를 보고는 ‘누가 결혼해?’라며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차마 아내한테는 모든 진실을 말 할 수 없어서, 회사의 막내 PD가 결혼하며, 내가 그의 축사를 써주기로 했다고 둘러댔다. 나는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방에 틀어박혀, 스댄드 불빛 아래서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야, 너의 결혼을 늦었지만 ....」


나는 펜을 내려놓고, 작게 한숨을 쉰다. 


“하... X같은 회사생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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