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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r 02. 2023

<단편소설>들리지않아도...(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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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러도 대답없는 동료와 일하는 건 웬만큼 인내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걸 오늘도 느꼈다. 나는 지금 청각장애인과 같이 일한다. 회사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사회공헌을 위해 올해부터 장애인들을 채용했다. 단순 반복 업무라 장애인들도 무리 없이 할 수는 있지만, 회사생활이 꼭 ' 일' 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대표가 장애인 채용에 대해서 말 했을 때,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우리 파트에 청각장애인 미진씨가 들어온 지 3개월이 흘렀다. 미진씨는 생글생글한 미소를 늘 띄우며, 활달하고, 예의가 발랐다. 


우리 파트에는 수화를 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주로 미진씨가 가지고 다니는 노트에 필담하거나 우리가 내는 입모양으로 대화를 하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익숙해져 보인다. 나는 아직 어렵다. 작업특성상 멀리서 이야기해야할 일도 많아서 그럴 때마다 직접 찾아가 어깨를 두드려야 했기에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나의 이런 태도를 우리 파트원이나 미진씨가 모를리 없었다. 회식자리에서도 일부러 노골적으로 미진씨를 피했으며, 그녀가 싫다는 사실을 조용히 내비쳤다. 한번은 파트장이 부르더니, '좀 더 살갑게 미진씨를 대할 수 없냐?'고 나를 타일렀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나만 불편한 3개월이 지났다.


 하루는 비가 많이 내렸다. 시원한 장맛비가 전국적으로 내리는 날이었다. 퇴근을 위해 밖으로 나서려는데 그 때서야 내 우산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도 저도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이는데 미진씨가 내 등 뒤에서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필담)을 걸었다. 


-태수씨, 우산이 없나요? 

-네, 우산이 고장 났어요.

-그럼, 제 것을 가지고 가세요. 저는 친구한테 오라고 하면 되요.


나도 급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차마 미진씨의 배려를 거절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미진씨의 우산을 들고, 그날은 무사히 퇴근했다. 다음날 나는 미진씨에게 우산을 돌려주며 캔커피를 선물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노트를 꺼내 말을 걸었다. 


-태수씨 고마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에요.

-다행이네요. 어제 우산은 정말 고맙습니다. 

-태수씨가 잘 갔다니 다행이에요. 

-네, 오늘도 수고하세요. 


나는 어제의 고마움만 전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미진씨가 가려는 나를 붙잡고, 다시 말을 걸었다. 


-태수씨? 그거 알아요? 태수씨의 목소리는 굉장히 따듯해요. 가끔 작업장에서 저에게 찾아와 급하게 말을 할때마다 느꼈어요. 우리가 아직 친하지는 않지만, 언제가는 꼭 이야기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바쁜데 시간 뺏어서 미안해요. 


나는 말을 섞어가며, 미진씨의 노트에 글을 썼다.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죠?


나는 미진씨의 칭찬도 좋게 보이지 않아 조금 공격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미진씨는 다시 생글거리는 미소로 내 질문에 답했다. 


-나 처럼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느낄 수 있어요. 누군가 말을 할 때, 내 밷는 말속의 진동이 내 몸 휘감아요. 그래서 나는 그 진동으로 사람들을 느낄 수 있답니다. 


나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저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진씨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장애인이라고 무시로 일관한 내 자신이 창피했다. 


오히려 장애는 나한테 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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