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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r 07. 2023

<단편소설>나무가 기억하는 이(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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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년이 지나도 네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매년 오늘이 되면 내 옆에 없는 네게 마음속으로 묻는다. 처음 몇년은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고, 그리고 다음 몇년은 니가 잊지는 않았을까하는 마음으로 물었고, 너와의 약속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오늘은 제발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리고 너와 만나기로 약속한 고목 앞에 손을 얹고는 또 묻는다.     


'나무야, 혹시 그녀가 오지는 않았니?'     

 말없는 고목은 대답대신 내게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로 대신한다.      


'역시 그녀는 한번도 오지 않았구나?'     

 씁쓸한 미소만 머금은 채, 그 자리에 앉아 그녀와의 추억을 되짚는데 시끄러운 굴착기 소리가 거슬리도록 가까이 들린다.      


"저기, 거기서 나가세요. 지금 나무 자르는 공사해야하니까 얼른 나가세요"     

인부 세 명과 날 거슬리게한 굴착기는 내가 있는 고목 앞으로 향하고 있다.     


"이 나무를 오늘 벤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이 일대가 개발에 들어가서요.곧 복합 쇼핑몰이 생긴다고 하네요."

"쇼핑몰이요?"     

내 물음에 더 이상 답은 없다. 


 19년의 추억이 1년를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려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무가 가는 길을 바라보며, 지금 처럼 무기력하게 널 떠나보냈 던 그날을 기억하는 것 뿐이다. 너는 그와 결혼하기 싫었지만, 가난한 내가 널 붙잡기에는 너무 이기적이었다. 울며불며 도망가자던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20년 뒤 나무앞에서 보자'는 바보같은 미련이었다.      


큰 고목이 결국 잘려나간다.  


 고목이 없어졌으니 내가 올 이유도 사라졌다. 하지만 잘 됐다. 나 따위는 잊고 잘 살고 있을 내게, 이런 미련따위는 나만 간직하고 있으면 된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이 미련을 떨치려 한다.   

   

"미진아!"     

힘껏 말했다. 속이 좀 후련해졌다.      


"응. 오빠"     

내 등 뒤에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태수 오빠"     

나는 섣불리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그러자 그녀가 내 뒤를 와락 끌어 안았다.      


"오빠 보고 싶었어. 미안해 이제 나타나서, 사실 나도 매년 왔었어.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오빠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나 이혼했어. 단 하루라도 오빠를 잊은 적이 없어. 더 일찍오지 못해 미안해. "     

그제서야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너는 그대로네, 여전히 이쁘다"     

그녀의 뺨에서 흐르는  눈물을 내 손으로 닦아주며, 나는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나무가 잘린 이유는 그 나무가 더 이상 서있지 않아도 됐음을 스스로 알았음이 아닐까? 고맙다. 나무야 다시 그녀를 만나게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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