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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r 09. 2023

<단편소설>헤어짐, 다시만남(完)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졌다. 어색하게 마주한 두 남녀, 태수와 미진은 서로를 몇 초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한다. 분명 대본에는 서로를 껴안아야 하는 장면임에도 어느 누구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이상함을 느낀 감독이 두 배우의 매니저를 부른다.      


“야, 쟤들 왜 저러냐?”     


하지만 두 매니저 역시 자신의 배우가 왜 저렇게 서있는지 잘 모르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서 있는다. 감독은 당황해하며, 첫 장면 촬영부터, 이상하게 행동하는 두 배우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는 담배를 물고 현장을 벗어났다.      

태수는 생각이라도 정리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자기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매니저를 불러 물었다.      


“왜, 저 친구가 여기 있는 거죠?”

“저도 현장 와서 알았습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 찍을 뮤직비디오의 상대 여배우는 소정씨 였거든요.”     

분명 두 사람의 사이를 잘 아는 누군가가 이 사단을 냈을 것이 분명했다. 태수는 멀찍이 앉아있는 미진을 바라보며, 10년간의 만남을 종지부 지은 그 날을 떠올렸다.     


--     


그 날은 첫눈치고는 많은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오늘도 태수는 그녀의 투정을 받아줄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최근들어 자신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그녀를 보며, 점점 주눅들었다. 그녀의 친구들의 남자친구는 대기업 다니고 몇백만원짜리 선물을 해주는데 태수, 자신은 당장 밥사먹을 돈도 없어, 카페도 가장 저렴한 곳만 찾아 다니고 있으니 어쩌면 주눅드는 것도 당연했다.     

태수는 10년의 만남 동안 돈이 없어서 트러블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서로 좋으면, 돈 따위는 없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그녀 주변이 호화롭게 변하며, 태수의 믿음도 10년이 채 가지 못하고 꺽이게 되었다.     

그녀가 카페로 들어오고, 태수는 일러서서 그녀를 반겼다, 하지만, 그녀는 싸늘했다.     


"태수야, 오늘은 긴말하지 않을게, 우리 헤어지자 나 이대로는 못 살겠어"

"......."     

태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 앞에 있는 커피만을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해, 나는 더 이상 이렇게 궁상맞게는 못살겠다. 너가 언제 성공할지도 미지수고, 나는 이번에 OO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가기로 했어, 아마 너랑은 이제 겹칠 일이 없을 거야"

"그냥 이렇게 10년을 부정하려는 거야?"

"부정하지 않아. 내게도 소중해, 하지만 그 10년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앞에 50년이 보이지 않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너의 목에 걸려있는 그 올이 다 나간 '목도리'.... 이제는 너무 답답해..."

"이 목도리는 너가 나한테 제일 처음으로 선물해준 직접 뜬 목도리잖아 나는 그 마음이 소중해서 계속하고 다니는 거야"

"나도 알아, 너의 마음 다만, 나는 그런 구질구질함이 이제는 싫어졌다는 거야"

"나는, 이 목도리의 낡음의 창피함보다, 익숙한 향기가 더 좋다. 너의 모든 걸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이별도 사랑할게 어딜 가든 꼭 성공해"

태수의 눈이 발개진 채로 카페를 나와 눈 오는 거리를 목적 없이 걸었다.      


--     


태수는 그날을 떠올리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와의 지난 추억들,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비참함 그 날의 고통이 다시 내게 비수로 꽃아 들었다. 그때, 태수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어 태수야, 선물 잘 받았어? 나 지금 감독한테 전화 받고 욕 엄청 먹었다.

“아, 형이 였어요?”     

태수가 뜨기 전부터 태수를 응원한 그의 친한 선배였다. 2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태수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태수가 속한 엔터테인먼트 사장을 겸하고 있다.   

   

“형, 미진이랑 나랑 어떤 사이인지 알면서, 왜 그러셨어요?”

-이거 사실 미진이가 부탁한 거야

“미진이가요? 왜요?”

-너의 성공을 직접 축하해주고 싶었데, 어차피 전화해도 안 받거나, 기분 나빠할 수 있으니 차라리 본인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데나. 그래서 나도 오래전 일이고 미진이가 딱히 악의가 있어보이지는 않아서 이렇게 한거다. 속인 건 미안해, 내가 술 한잔 살게!

“형.... 그럼 미리 언질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미리 말하면, 너가 거길 나갔겠냐? 암튼, 촬영 잘 하고 너무 기분나쁘게 생각말고, 미진이 말도 좀 들어줘, 걔라고 너랑 헤어질 때 편했겠냐?

“일단, 알겠어요.”     

태수는 용기를 내어 미진이가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걸어오는 태수를 보고는 미진은 깜짝 놀란 듯이 눈이 커지다가, 이내 침착함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미진아, 오랜만이다. 7년 만인가?”

“응, 그러네, 오빠는 잘 지낸 것 같아 보이더라, 업계에서 나름 성공도 하고, 따르는 팬도 많아지고”

“나야 뭐, 너도 마찬가지지, 그 때 우리가 그렇게 된 이후에 서로 더 악에 받쳐서 일을 해서 둘 다 지금의 위치에 올라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 날의 너의 선택이 옳았어. 그 이야기 해주고 싶어서 여기와서 말한다”

“다행이네, 그렇게 생각해줘서”     

미진은 무엇인가 이야기하려다 머뭇거렸다. 그 때 태수가 입을 뗀다.     


“너, 용수형 한테 부탁했다면서? 나랑 만나게 해달라고, 그래서 지금 내 앞에 있는 거고”

“응, 맞아 염치없지만 성공해서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

“고맙다.”     

태수는 고맙다는 말만 남긴 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때마침 감독이 담배를 피고 돌아오며, 현장에서 소리쳤다.     


“우리 잘 해봅시다. 어려운 것 도 아니잖아요. 다시 세팅하고, 배우분들 큐사인 준비해주세요.”     

헤어진,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태수는 미진의 귓속에 ‘사랑해’라고 말했다. 미진은 눈물을 흘리며, 태수의 귓속에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감독은 박수를 치며 컷 사인을 내렸다.     

“오케이 컷, 잘 하잖아. 이렇게 잘하는데 아까는 왜 그랬어요? 아, 태수씨네 사장님한테 괜히 뭐라고 했네, 다음 장면 찍기 전에 5분 쉬었다 가시죠.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나, 감독의 컷 사인을 줬음에도 태수와 미진은 계속 껴안고 있다. 그러자 감독이 다시 두 배우의 매니저를 소환했다.     


“야, 쟤들 또 왜 저러냐?”     

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던, 두 매니저는 또 다시 서로를 바라볼 뿐 대답하지 못하고 서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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