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거리 소설가 Feb 28. 2023

<단편소설>생각나지 않은 단어(完)


 '답답하다. 어제부터 그 단어가 생각이 안나네...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단어였는데 ... 치매가 왔나??'


 몇일 전 부터 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느정도로 생각 나지 않냐면, 생각하려는 단어에 그 느낌만 있을 뿐 그 의미나 단어가 전혀 떠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디 물어보지도 못하고있다. 오늘도 수업시간 내내 그 단어를 떠올리느라 공부는 뒷 전이 되었다.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이따금 멍한 상태로 단어를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가 멍한 상태로 있는 내게 답답한 듯이 친구가 물었다. 


"야, 너 요즘 왜 그래?? 멍하니 있고, 어제도 게임하다가 니가 갑자기 아무 것도 안해서 우리가 졌잖아"


친구의 닦달에 나는 부끄러운 고백을 했다. 


"사실은 단어 하나가 기억나지 않아"

"뭔 단어?? 영어단어?"

"아니, 한국말 내가 분명 알고 있는 단어인데, 그리고 그 의미도 분명 알고 있었을텐데 지금 단어와 의미는 기억나지 않고, 그 느낌만 있어. 그래서 더 답답해"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잠시 생각하며 말했다.


"게슈탈드 붕괴현상!"

"뭐라고?"

"특정 내용에 너무 몰입하면 오히려 더 생각나지 않는 다는의미의 용어야. 지금 너가 딱 그런 것 같네'"

"그런 단어가 있어? 처음 알았네.."


나는 여전히 생각나지 않는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기억하려는 단어의 느낌이 '이방','수청','갓에 달린 구슬' 이런 것 밖에 안 떠올라"

"도저히 감이 오지않아. 나열된 단어들만 보면, 조선시대 같기는 한데. 난 모르겠다. 혹시, 떠오르는게 있으면 연락 줄게“


친구와 헤어진 나는 다시 생각에 사로잡혔다. 별로 중요한 단어는 아니지만 왜인지 찝찝함에 당장 머리통을 열고 단어를 찾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골똘히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여자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디야?

“응, 나 지금 학교 끝나고 친구랑 밥 먹고, 집에 가려고”

-바로 집에 갈 거야?

“어, 잠시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머리도 아프고 해서, 집에 좀 일찍 가려고”

-그래 알았어, 조심히 들어가

“그래, 집에가서 연락줄게”


 여자친구의 통화도 무미건조하게 끝내곤,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머리를 창에 박은 뒤, 다시 생각나지 않은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모든 집중을 했다. 그럼에도 끝내 생각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반갑게 맞이헀다.


“어 왔니? 오늘은 일찍왔네?”


하지만 이내, 내 좋지 못한 표정을 보고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태수야, 무슨일 있어? 왜 이렇게 표정이 안좋아?”

“그게 있잖아 사실, 단어하나가 생각이 안나”

“무슨 단어? 중요한 일이니?”

“그런 건 아닌데, 생각이 안 나는게 계속 신경쓰여서”

“밥은 먹었니?”

“응, 친구랑 먹고 왔어”

“그 생각 안 난다는 단어는 간식 먹으면서 천천히 생각해봐”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내 방에 과자를 밀어 넣어 주며, 나갔다.


다시 나는 씻지도 않은 채, 단어 생각에 골똘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 까 깜빡 잠이 들었는지, 주변은 깜깜한 밤이 되어있고, 내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제법 와있었다. 가장 최근에 부재중으로 전화가 온 친구 영수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 영수야, 전화했어?”

-태수야, 너 어디야? 지금 미진이가 너 목 빼놓고 기다리는데

“미진이가? 아까 걔한테 집에 간다고 했는데, 날 왜 기달려?”

-뭔 소리야, 오늘 미진이 생일이잖아, 니 여잔치구 생일도 깜빡한거냐?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잠깐? 오늘이 미진이 생일이라고?”

-그래 임마, 지금 너가 서프라이즈 해줄 것 같다고 엄청 기대하고 있어


나는 재빠르게 휴대폰 달력을 체크하니, 오늘날짜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쳐있고, 그 밑에 ‘미진 생일’ 이라고 적혀있다. 


“야 너 지금 어디야?”

-여기? 어사또주막?

“어디라고?”

-어사또주막 우리 자주가는 술집말이야. 

“사또? 그래 사또였어, 내가 생각나지 않았던 단어가 사또였다고”

-너 미쳤냐? 헛소리 그만하고 .....


나는 친구의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기쁜 마음에 방을 나가 소리쳤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단어는 ‘사또’였어.. 그게 왜 기억이 안나는지는 몰랐지만”


거실에 모였있는 가족들은 내가 왜 이러는지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여자친구의 생일도 다시 까맣게 잊고는 들뜬 마음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또'를 소리쳤다. 그 때,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어 미진아, 생일 축하해”

-미쳤어?

“아, 지금 가고있어 너 놀래켜주려고 그랬지”

-장난해? 영수선배랑 통화하는 거 다 들었어

“응?”

-내 생일도 기억 못해? 오지마 그냥

“알겠어. 화 풀리면 연락해”


나는 여자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기억나지 않은 단어 ‘사또’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만에 편안함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브런치북 - 단편소설 모음1 보러가기

브런치북 - 단편소설  비밀 보러가기

작가의 이전글 <단편소설>동창생(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