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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r 16. 2023

<단편소설>신입사원(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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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총무 자리가 비었었다. 덕분에 내가 그 업무까지 맡아서 하느라 몇 달간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대표도 내 힘든 상황을 알기에 월급도 올려주고 또 백방으로 사람을 구해보려 했으나, 좀처럼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인터넷에 개제한 구인광고에 입사희망자가 한 명 나타났다. 기쁜 마음에 대표에게 보고하니, 대표는 바로 뽑으라며 들떴었다.      


 우리 회사는 로봇부품을 도매로 구입해서 소매로 판매하는 직원 3명(대표포함)의 소규모 회사다. 판매 및 구매 영업은 대표, 나는 로봇 부품정리 입출관리 그리고 힘쓰는 일을 도맡아 했다. 우리가 뽑으려는 총무직원은 월급지급 등 회사 전반의 자금관리 업무를 해야 했다. 얼굴도 안보고 바로 뽑으라는 이유도 업무 자체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입사지원한 지원자에게 연락했다. 목소리가 좀 작고, 이직이 많은 것이 조금 흠이지만 학력도 괜찮고, 일단 우리 회사가 사람을 가려 받을 처지가 아니기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대표와 간단한 면접을 진행했고, 바로 출근이 결정되었다.  나는 인수인계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신입사원 미진씨에게 넘겨주었다. 미진씨는 내게 질문도 없이 가이드라인을 보며 묵묵히 업무를 습득해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늘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미진씨는 완벽히 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것에 반해, 나와 대표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아침 ,저녁 퇴근 인사조차 하지 않고, 업무 이야기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했다. 처음에는 말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기 부모랑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 또 말을 잘 했다.      


 대표도 미진씨의 태도에 대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지 어제는 출근 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나는 더 이상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미진씨에게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미진씨는 나의 제안에 동공이 커지고, 머뭇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안절 부절했다.      

"미진씨, 오늘 나랑 저녁 먹는 거에요. 그렇게 아세요."     


나는 다소 강압적으로 보일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반 강제로 미진씨에 저녁약속을 강요했다.     

그래도 다행이 미진씨는 떨떨음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따라왔다. 

대표와 내가 자주 가는 중국집에 데려왔다. 탕수육과 깐풍기를 시키고 소주를 주문했다.      

"미진씨, 술 해요?"     


미진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술을 마셨다. 나는 소주잔 하나를 미진씨 앞으로 가져다 놓고는 소주를 따라주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소주를 먼저 털어 넣으며,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      

"미진씨, 너무 답답해서 바로 물어볼게요. 감정이 있는 건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물어요. 왜 대표나 나한테 말을 안 해요? 최소한 인사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요?"     


미진씨는 내 말을 다 듣더니, 한숨을 쉬고는 소주한잔을 들이켰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미진씨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저도 회사사람들이랑 재밌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작은 목소리지만 미진씨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일단 대꾸하지 않은체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요. 너무 부끄럽고, 무섭고 그래요. 그리고 대표님이나 대리님한테 괜히 인사했다가 '친하지도 않는데 친한 척 한다'라고 생각이라도 할 거 같아서 더 못 하겠어요"     


 미진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금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하게 소심하고, 대인기피증이 심해보였다. 그나마 소주가 들어가니 이정도로 이야기나 하지, 맨 정신에 카페였으면 2시간 동안 내 복장만 터지다가 끝났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학력도 좋은데 어린나이에 이직이 많은 이유가 이제 이해가 갔다.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어딜 가서도 이랬을 생각하니, 자기도 잘 해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 적잖이 답답해보였다.     

"미진씨 혹시 예전에 왕따 같은 거 당했었어요?"     


미진씨는 술을 또 혼자 마셨다.     

"아니요. 애초에 전 모든 이에 관심 밖이었어요. 친구도 절 괴롭히는 애들도 없었죠. 의외로 전 그게 편해서 적응하고 살다보니 지금처럼 이렇게 된 거 같아요."

"그래도 술 한 잔 하면, 말을 할 수 있네요?"

"저도 몰랐는데 대학 때, 알았어요. 그래서 저랑 술 한잔한 몇 명의 친구들은 다행히도 저를 이해해주었어요"

"그래도 친구가 있다니 다행이네요. 혹시, 친구들이나 전 직장상사들이 솔루션 안 해줬어요?"  

   

미진은 다시 소주를 들이 붓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루션 엄청 해줬죠.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솔루션은 ‘너가 다가가서 먼저 말을 걸어라 였어요’. 제 상황은 이해도 하지 않고, 말부터 걸라니..."     


미진씨는 씁쓸하다는 듯이 술잔을 바라봤다.     

"그러네요. 뛰지도 못하는데 날기부터 시작하라는 소리네요. 내가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정말 대인관계를 원만히 해볼 의지는 있어요?"

"네, 저도 그런게 부러워요. 사실 오늘도 저한테 밥 먹자고 하신 직장상사 분은 대리님이 처음이었어요. 애초에 제가 말이 없으니 당연히 안 갈거라고 생각해서 묻지도 않더라고요"

“사실 저도 오늘 미진씨가 안올 줄 알았어요. 일단 저도 이해했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 미진씨에게 무슨 이야기는 해야할 것 같은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충분히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은 들었을 것 같았다.      


“미진씨, 저는 어렸을 때 농구를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키가 많이 작고, 날렵하거나 민첩하지도 않았죠.”     

미진씨는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나를 보고는 도대체 왜 저런이야기를 시작했는지 모를 얼굴로 나를 빤히 보고 있다.      

“그런데, 저는 정말 농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건 다 못하겠고, 점프연습을 하자라고 마음을 먹었죠. 하루에 두 시간씩, 뛰었어요. 100번이고 1,000번이고 뛰었습니다. 내가 손을 쭉 피고 점프를 하였을 때, 우리학교에서 키가 제일 큰 아이보다 더 높이 뛸 수 있도록 죽어라 뛰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반에서 제일 키 큰 아이보다 더 높이 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리고 당당히 농구하는 친구들 틈에서 자리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죠.”     


미진씨는 내 이야기를 끝가지 듣고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고생하셨네요. 축하드려요. 대리님“     


나는 미진씨의 귀여운 반응에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한 건, 모든 것을 급하게 다 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미진씨의 인간관계는 ‘0’점입니다. 도저히 개선이 불가능할 정도죠”     


미진씨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만 하고 있다. 

“즉, 아까 상사들, 친구들이 했던 말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한테 날기부터하라는 건 스트레스 받아서 죽으라는 소리랑 똑같다고 보여 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     


나는 목이 말라 물을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하나만 합시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출근했을 때, 밝게 인사만 합시다. 그것만 해주면 내가 더 이상 말 안한다고 뭐라고 안하겠습니다. 이 내용은 대표님께도 공유할테니 아침에 출근해서 모두를 보고 인사만 해봅시다! 어때요? 이정도는 할 수 있겠죠?”     


미진씨는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는 새끼손가락을 미진씨의 앞에 두고는 약속의 고리를 걸도록 했다.      

“자 나랑 약속했습니다! 내일부터 잘 지내봅시다.”     


 날이 밝고, 대표와 나는 미진씨보다 일찍 출근해서 앉아있었다. 아직 대표에게는 보고 하지 않았다. 혹시나 미진씨가 어제의 약속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미진씨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미진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나를 빤히 보더니, 이번에는 대표를 빤히 본다. 그러더니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하고는 회사가 떠나갈 정도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흡족히 웃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를 대표는 당황한 나머지 미진씨에게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나는 이내 대표자리로 가서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고, 대표는 웃으며 오늘 미진씨의 인사에 대해 이해를 하였다.  그렇게 오늘부터 미진씨의 소심탈출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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